가봤더니

보물 같은 세월의 흔적·정신을 찾아서

여행/공연

사랑방·광주문화재단 공동기획
광주견문록 다시보기⑱ 역사전시관

‘광주견문록 다시보기’ 열여덟 번째 순서는 광주의 특별한 역사 전시관들이다. 버려져 가는 농촌생활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평동생활역사유물관, 카메라 300여 대와 함께 영사기로 쏘는 흑백만화영화까지 감상할 수 있는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 일제강점기 광주여고보 학생들의 식민지 철폐 구국운동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 역사관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평동생활역사유물관
손 때 묻은 농기구 ‘추억 새록’

2015년 6월26일, 광주에 새로운 유물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방치된 평동주민센터 창고를 리모델링한 평동 생활역사유물전시관이다.

 

 


예로부터 광산구 평동은 농촌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으나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로 도시화가 진행되며 농촌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는 곳이다.

2014년 9월 평동주민들은 생활역사유물전시관 추진위원회(위원장 김근수)를 구성하고, 평동지역 마을을 돌며 쓸모없이 방치되고 있는 써레, 쟁기, 베틀 등 농촌생활유물 280여 점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깨끗이 청소하고 수선해 전시품으로 내놓았다.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생활용품들이 깨끗하게 손질되어 전시관에 진열되니 전시관을 준비하는 이나 기증한 이나 보람이 컸다.

비록 수천 년 수백 년 된 유물도 아니고, 값비싼 물건 하나 없으나 평동 사람들의 살아있는 역사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평동생활역사유물전시관에는 280여 점의 농촌생활유물과 함께 1940년대 혼례식, 1960년대 배로 황룡강을 건너는 모습 등 평동 주민들이 2013년 옛 사진 전시회를 위해 모아둔 기록사진 55점도 함께 전시되었다.

 

 

이제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하나둘 마을 사람들이 전시장에 모이면 농기구 하나 생활소품 하나만으로도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유물들이니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인데, 자식 낳아 키우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농사를 포기하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도 이제는 다 추억이 되었다.

전시장에 진열된 낡고 찌그러진 농기구들을 보니 자신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성실히 일상을 꾸려온 농민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평동생활역사유물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양심카페에 들러 차 한 잔을 나눈다.

 양심카페인 만큼 값을 치르는 것도 양심, 자리를 치우는 것도 양심이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힘든 일은 서로 돕고,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던 푸근한 농촌의 정이 흠뻑 느껴진다. 별것이 보물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요것들 모두가 보물이다.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
소박하고 알찬 카메라 컬렉션

“카메라는 사실이죠. 카메라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 이수환 관장의 카메라에 대한 생각이다.

“그럼 영화는 뭔가요?”

“영화는 꿈이죠. 영화는 제게 꿈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꿈 터네요.”

카메라와 영화가 있는 꿈 터, 여기는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이다.

 

지난 2015년 5월 동구 동명동에 개관한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은 예술의 거리에서 20년 넘게 표구점을 운영해오고 있는 이수환 관장의 남다른 취미와 열정으로 탄생했다.

20대 후반 사진촬영을 즐기던 그는 렌즈나 조리개 등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 카메라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왕 수집했으니 박물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희소가치 있는 카메라와 영사기를 사 모았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카메라는 1600여 점, 그중 300점을 이곳 박물관에 전시해놓았다. 전시 기간을 고려해 전시물을 교체할 생각이라는데, 얼마나 세심히 카메라를 관리했으면 수십 년 된 전시물 대부분이 작동이 가능하다.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의 전시 구성을 살펴보면, 1관에는 사진촬영용 카메라, 2관에는 영화촬영용 카메라와 영사기, 3관에는 영사기와 환등기가 전시되어 있다.

1관에 전시된 셔터가 분리된 카메라, 렌즈가 2개인 3D카메라, 금을 입힌 카메라 등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의 백미는 2관에서 흑백만화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은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세계카메라영화박물관은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나 전시물 구성이나 내용이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알차다. 전시 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고, 월요일은 휴무다. 커피와 쿠키, 입장료가 3000원이니 나들이 삼아 들러 볼 만하다.

매주 토요일에는 필름 영사기와 환등기 시연이 있다니 이제는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을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해보시라.

학생운동 여학도 역사관
자유·주권 외친 그날의 함성 ‘오롯’

“수업중이라 할지라도 민족의 자주권과 독립을 절규하면서 용감하게 전진하는 대열이 지나가면서 나오너라 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매성언니의 나가자 하는 선동에 일제히 우르르 몰려나와 대열에 참가하고 다시 일부는 붕대와 주전자를 들고 모진 왜경의 채찍에 피 흘려 쓰러진 학도들의 간호에 전력을 다하였다. 비록 연약한 여자의 몸일망정 자유와 주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민족정신의 찬연한 발로였던 것이다.”

- 장경례 전남여자중학교 창립30년사 옥중고난 회상 中

 

 

3·1운동, 6·10 만세운동과 함께 3대 항일독립운동으로 기록된 광주학생독립운동. 일제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식민지 교육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와 전 민족적 투쟁으로 확산되었던 그 현장에 광주여고보 학생들이 있었다.

자유와 주권을 외쳤던 그녀들의 역사를 전남여고 내에 위치한 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 역사관에서 만났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고보 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박기옥의 사촌동생이 일본인 학생들의 행동에 격분해 난투극을 벌이고, 여기에 일본인 순경의 편파수사와 광주일보의 편파보도가 더해지면서 한일 학생들의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후 한국인 중등학교 휴교령과 함께 무차별 검거령이 내려지고 일제의 탄압이 이어졌으나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조선인 본위 교육제도 확립을 외치는 학생들의 투쟁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광주여고보 학생들은 소녀회를 만들어 민족문제와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이어나갔다.

목표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무산계급을 자본가 계급의 압박에서, 조선민족을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1930년 소녀회 활동으로 피검된 광주여고보 학생들은 옥고를 치러야했다. 당시 남성 중심의 조직적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에 비해 미약하긴 했으나 여성들도 역사의 주체로서 구국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옛 광주여고보 건물을 그대로 활용한 학생독립운동 여학도기념 역사관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된 유일한 사적지로 조선 여성교육의 변천사와 함께 항일 역사교육의 장소로 매우 소중하다.

광주여고보의 교무실로 사용하던 1층에는 추억의 교실과 학교 관련 유물들이 전시중이고, 교실로 사용되던 2층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와 전남여고 선배들의 활약상이 전시되어 있다.
전남여고 신입생들은 이곳 역사관에서 관람수업을 듣는 것이 학교의 전통이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