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문자로 고찰한 고대 삼국 글씨의 특징

입력 2018.07.12. 09:57 수정 2018.07.12. 10:08 댓글 0개
삼국시대의 서예
정현숙 지음/일조각/6만원

고대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삼분한 고구려, 백제, 신라 글씨는 어떻게 다를까. 서예사적으로 세 나라 글씨의 특질을 뽑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서예를 총망라한 최초의 연구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현재까지 발굴된 금석과 목간 등 삼국의 문자 자료 대부분을 실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삼국 서예의 특징을 각각 살피고 삼국 글씨의 유사성과 차별성을 비교 분석했다. 또 삼국의 중국 서예의 수용과 변용, 고구려 서예와 신라 서예의 연관성, 백제 서예가 일본 서예에 미친 영향, 신라 서예가 가야와 일본 서예에 미친 영향을 통해 고대 동아시아의 서예문화가 전파되는 과정도 살폈다.

저자는 먼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해 중국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고구려 글씨를 다룬다.

고구려 글시는 광개토왕비와 충주 고구려비 같은 비석, 북한과 중국에 있는 고분, 금동불 광배(빛을 형상화한 불상 뒤쪽 장식물)와 금속 그릇에 남아 있다.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세련된 문화를 향유했다고 알려진 백제에 대해서는 글씨에서도 유려한 서풍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는 백제의 글씨는 개성적이다. 용도에 따라 서풍이 구분되는 고구려, 약 100년간 동일한 서풍을 유지한 신라와 다르게 백제는 글씨를 쓰는 사람마다 서체와 서풍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신라는 고구려 서예를 수용했지만 6세기에 이르러 독자적인 서풍을 완성했다.

저자는 삼국 글씨의 특징 뿐만 아니라 각 나라가 다른 나라에 미친 영향도 소개한다. 그는 서예사 측면에서 고구려는 신라, 백제는 일본, 신라는 가야와 일본에 영향을 줬음을 드러낸다.

삼국은 한자를 매개체로 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면서 각기 다른 역할로 고대 아시아 문자문화의 금자탑을 세웠다.

광개토왕비와 충주고구려비 등에서 나타난 비문에서도 큰 차이를 드러낸다.

광개토왕비 비문의 서체는 예서다. 예서 중에서도 파책이 약간 가미된 고예로 쓰여 서한 예서가 동한 예서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비의 크기에 걸맞은 웅강한 고예의 서풍에서 고구려의 진취적 기상이 느껴진다.

반면 국내 유일한 고구려비인 충주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를 축소한 것과 같은 자연석 사각 석주형이다. 처음에는 비의 전면과 좌우측면에서만 문자가 확인돼 삼면비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최근 후면 좌측 끝에서 판독된 글자로 인해 왕의 순수 관련 비라는 추정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이 비는 광개토왕비나 집안고구려비 보다더 6세기 신라비의 글씨와 유사하다. 예서의 필의가 있는 해서인 서체가 같고 원필의 자연스러운 풍치도 비슷하다. 이 비를 세운 지역이 후에 신라의 영토가 되면서 6세기 신라 글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자는 “고구려 글씨는 용도에 따라 서체와 서풍이 결정되는 반면, 백제 글씨는 고구려와 신라 명문과 달리 중국 한문 양식을 따르고 있어 한문 수준이 높았던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삼국의 글씨는 각기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차이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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