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씨줄, 날줄 엮어온 시간 얼만데···˝ 代 끊길까 걱정

입력 2024.02.27. 15:41 수정 2024.02.27. 15:57 댓글 0개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중>함평 외세마을 '왕골'
잘게 쪼갠 왕골을 확인하고 있는 정일범씨와 그의 아내 김용남씨.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여름,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항상 보이던 것이 몇 가지 있다. 튼튼한 유리 주스병에 담긴 시원한 보리차, 파리채와 모기향, 덜덜거리며 쉴 새 없이 회전하던 선풍기, 그리고 나무색의 촘촘한 자리. 습한 여름 날씨, 장판에 맨다리가 쩍쩍 달라붙지 않아 자리 위에만 앉거나 누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제야 안 거지만 여름철 집안 식구들이 모여들었던 그 자리는 왕골자리였다. 당시는 선풍기만큼이나 너무나도 당연했던 존재였는데 이제는 다시는 보지 못하고 역사에만 남을까 걱정이 따라다니는,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왕골은 당연한 일이었제"

"그냥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처럼 시작했제. 언제 시작했을까잉. 말 알아듣고 말만 할 줄 알면 어른들 옆에서 일 도우면서 시작했으니까, 한 일고여덟살에 시작했겄네."

함평 외세마을에서 왕골 돗자리를 만드는 정일범(76)씨에게 왕골 돗자리는 당연했다. 일을 시작한 것도 특별한 이유가 없단다. 5대째 내려오고 있는 가업이니 뭐니, 그에겐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다.

당시는 마을 주민 너나 할 것 없이 왕골을 재배하고 왕골 돗자리를 집마다 만들었다. 세 명이 조를 이뤄 왕골 작업을 할 때면 어른들을 보조해 왕골을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 쪼개고 자리를 짜는 것까지 복잡한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생활처럼 익혀온 그다.

당시 왕골 돗자리는 여름 필수품이었고 혼수 품목이었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들기에 당시도 비싼 가격을 자랑했으나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단다. 왕골돗자리를 파는 장이 열리면 전국의 상인들이 새벽같이 몰려들었고, 팔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왕골 돗자리를 만들어 자식들을 가르치고 시집, 장가보낼 수 있었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잘게 쪼갠 왕골을 정리하고 있는 정일범씨.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만들다 보면 옆구리 터지겄어"

왕골 돗자리 만들기는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왕골(완초)을 심는 것부터 시작한다. 3월 중순, 하우스에 씨를 뿌리는데 물을 수시로 잘 대 땅의 습도를 잘 맞춰야 한다. 습도가 잘 맞으면 땅에 파랗게 이끼가 끼는데 왕골이 잘 클 수 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이후 70일 정도 키운 후 논으로 모를 심는 것처럼 왕골을 옮겨 심는다. 모내기와 다른 것이 있다면 두세 개씩 심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심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새끼를 친단다. 자라는 동안 농약을 쳐서도 안 된다. 왕골에 농약을 치면 이파리가 노랗게 변하고 성장을 멈춘다.

왕골은 논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온 후 75일 정도 지난 7월 말~8월 초께면 수확할 수 있는데, 하우스에서부터 수확까지 약 5개월 동안 애지중지 키워야만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정일범씨 부부와 마을 주민이 돗자리를 짜는 기계에 가닥낸 왕골을 촘촘히 걸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수확한 왕골은 줄기가 마르기 전에 바로 껍질을 벗겨야 한다. 또 잘게 쪼개 실처럼 만들면서 부러지거나 하얗게 변한 것과 이물질을 골라낸다. 이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돗자리를 짜기 위해서는 각각의 두께가 일정해야 해 층을 맞춰 벗겨야 한다. 이같은 작업을 거치면 완초 1대에서 보통 7~8가닥의 실이 만들어진다.

"왕골을 심고 키워내 수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디 수확한 왕골껍질 벗기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여. 그래서 사람이 많이 필요하제. 또 껍질 벗기면서 이물질이나 실을 고를 때는 행감(양반다리) 치고 앉아서 봐야 하니 눈 아픈 건 당연하고 옆구리가 터질 것처럼 아파부러. 또 인자는 마을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서 눈도 잘 안 보이고 허리며 어깨며 좋은 사람이 없으니까 손에 익어서 빨라도 작업이 더 힘들제."

가닥 가닥으로 만든 왕골은 기계로 말린 후, 베틀에 촘촘히 걸어 돗자리로 만들어진다. 보통 120×180㎝ 크기의 돗자리 한 장을 만들려면 최소 4시간에서 최대 6시간을 꼼짝없이 매달려야 한다. 돗자리를 짜는 기계를 들였기에 이 정도 시간으로 끝나는, 힘든 수작업의 결과물이다.

정일범씨가 다 짜여진 왕골 돗자리를 손질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우리 대(代)에서 끝나겄다 싶어"

여간한 정성으로는 만들 수 없는 왕골 돗자리는 옛날, 누구나 알아주던 최고의 수공예품이다. 특히 함평에서 만든 것은 왕골 색깔이 좋고 완성도가 높아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품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왕골 돗자리는 여름철 필수품이었고 당시 외세마을은 왕골 돗자리를 만들어 내느라 주민 모두 바쁜 나날을 보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산을 시작으로 동남아 등지에서 외국산 왕골 돗자리 완제품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재료가 되는 값싼 왕골 또한 외국에서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를 국내에서 재가공, 국내산 왕골 돗자리가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재료로 만드는 국산 왕골 돗자리는 인건비 등으로 인해 이들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변화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왕골 돗자리를 사용하는 이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시장 또한 축소됐다. 매출은 크게 감소했고 생산량 또한 크게 줄었다. 90년대 말까지 한해 160t 생산되던 왕골은 현재 1t밖에 생산되지 않는 실정이다.

고된 수작업으로 만드는 데다 매출까지 적어지니 일을 배우겠다는 청년들은 전무하다. 이제는 어르신들만이 남아 왕골 돗자리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정일범씨가 방금 짜낸 왕골 돗자리를 보여주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완전한 수작업보다 시간과 인건비를 다소 줄일 수 있는 돗자리 짜는 기계 또한 3~4.5m 정도로 크기가 커 시골 가정집에 두기가 어렵고, 기계를 만든 회사도 사라져 기계화 또한 왕골 돗자리의 전통을 이어갈 방안이 되지 못한다.

"기계가 있으면 좀 낫겄다 해서 들였는디 보통 열자에서 열다섯자만 해서 방을 다 차지해부러. 또 기계 회사도 없어져서 고장나면 어쩔 것이여. 들인 거 많이 팔아버렸어. 우리들이 죽고 나면 딴 사람들이 할 수도 있겄지만 사실 우리들은 옛날부터 우리 대에서 왕골이 끝나겄다는 생각을 해왔제. 수입품 써보고 못 쓰겠는 사람들은 또 우리 것이 비싸긴 해도 품질이 좋으니께 사러는 오는디 사러 온 사람들은 우리보고 그래. '제발 오래 사시라'고."

글=김혜진기자 hj@mdilbo.com·사진=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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