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쇠락한 장터에서 만나는 특별한 행운

입력 2018.01.12. 08:47 수정 2018.01.12. 08:48 댓글 0개
장터의 삶, 장터의 맛-<9>영암오일장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함께 소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운이 되는 것이 오일장이고 전통시장이다.

장터 너머로 월출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그윽했다. 미세먼지가 아침 해를 가린 탓이다. 2017년을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영암오일장도 산을 닮았다. 빨주노초파람보를 버린 산처럼 장도 흑백으로 침잠했다.

5일자와 10일자에 영암오일장이 선다. 큰달에는 31일이 장날이다. 모든 오일장이 그렇다. 미처 알지 못해 30일에 이어 다시 들린 발길이다.

새해를 열 서너 시간 시간 앞둔 납회일의 장은 생각보다 한가했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시장 상인보다 결코 많지 않았다. '소란하지 않는 장'에서 튀밥집의 뻥튀기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영암오일장은 영암읍 사거리에서 영암매일시장과 직선으로 이어진다. 오일장이 끝나는 곳에서 매일시장이 시작된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매일시장의 상가 대부분이 문을 닫거나 오일장으로 매대를 옮긴다.

영암향토문화백과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영암오일장의 상인 수가 342명(노점상 154명 포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5년 사이에 그만큼 쇠락한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장터는 스산했다.

"갈수록 사람이 없어. 젊은이는 모두 마트로 가고 이런데 안와. 더구나 오늘은 해남 오일장이 열려서 사는 사람이고, 파는 사람이고 모두 그리 가부렀어."

장터 내부의 삼거리에서 규모가 제법 큰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오순덕(58)사장의 진단이다.

영암오일장은 1980년 덕진장을 흡수하는 등 다른 면 단위 장들을 위축시킬 만큼 성황을 이뤘던 장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접한 군의 오일장으로 인해 오히려 쇠락을 면치 못하는 신세가 됐다. 과거의 영화가 현실의 애달픔을 더하는 장터의 이력이 권력의 뒤안처럼 무상타.

제철을 맞은 매생이는 낱개보다 묶음이 더 쌌다.

◆겨울 병사의 입맛을 달래던 냉이

2005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영암군에서 국비와 도비, 군비 등 35억 여원을 들여 현대화 사업을 추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주차장을 조성하고, 장옥을 신축하고,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배수구를 정비하고, 화장실을 건축했다는 실적의 기록은 무색했다.

그렇다하더라도 쇠락한 장터는 쇠락한대로, 번창한 장터는 번창한 대로 장터의 시간은 넉넉히 흐른다. 운수 좋은 날에는 쇠락한 장터에도 행운이 찾아오고, 운수 없는 날에는 번창한 장터에서도 빈손으로 일어서는 날이 다반사가 아니던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함께 소박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운이 되는 것이 오일장이고 전통시장이다. 장터는 비록 흑백의 채색이지만 장터의 삶은 저마다의 빛과 색으로 자신의 길을 간다.

시장 초입에 여든다섯 해의 나이테를 하루 앞둔 '박가' 할머니가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는 생선가게의 바람벽에 기대어 냉이를 다듬었다. 할머니의 보굿 같은 손길을 거친 냉이 뿌리가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할머니는 자신의 밭에 저절로 자란 냉이를 아픈 며느리와 함께 캤다고 했다. "눈 아프고 간지럽고 하면, 이빨 애리면 무쳐 묵으면 좋아. 냉이는 약이여 약." 할머니는 내가 그냥 가버릴까 보아 '겁나게 맛있다'며 냉이의 약성을 강조했다.

군대시절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맘때였는가 보다. 포항의 어느 야산에서 동계훈련을 하다 처음으로 냉이를 만났다. 살얼음 푸석이는 밭에서 병사들이 무슨 풀을 캐더니 함구(군대 반합)에 넣어 된장국을 끓여 가져왔다.

냉이의 그 구수하면서도 씁쓰레한 맛과 향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아직도 군대 된장을 풀어 함구에 끓인 냉이국보다 더 맛난 된장국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해가 세 번 바뀌는 군대생활 동안 '눈 아프고 간지럽거나, 이빨이 애린' 적이 없었던 이유가 냉이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한 봉지에 1만원인 깐 굴.

◆복슬이도, 토실이도 '오돌오돌'

할머니와 눈높이를 맞추며 쪼그려 앉았다. 다듬어진 냉이가 플라스틱 대야에 담겨 작은 것은 5천원, 조금 더 담긴 것은 6천원이라고 했다. 군대시절의 냉이 된장국을 생각하며 6천원 어치를 달라고 했다. 덤이 없어도 푸짐한 한 아름의 대야에 할머니가 한 움큼의 냉이를 더 얹었다.

할머니가 기댄 바람벽에는 할머니의 앉은키보다 더 큰 포대에 다듬어지지 않은 냉이가 가득 담겨 함께 기대고 있었다. 순간 '아픈 며느리와 우리 밭에서 캤다'는 할머니의 말을 의심하고 싶어졌으나 참았다. '우리 밭에서 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야박하게 일서 설 만큼 얼굴이 두껍지 못하기도 하지만 하우스 재배면 또 어떠냐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할머니가 말했다. "잡숴보고 후제 또 오시오."

시장에는 갈색 털에 검정털이 몇 군데 박힌 복슬복슬한 강아지 형제도 나오고, 흰색이나 회색의 토실토실 살찐 토끼도 나왔다. 종이 상자의 복슬이도, 리어카의 토실이도 자기들끼리 '서로 몸을 맞댄 채 한 복판의 겨울 장에서 오돌오돌 떨었다.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당뇨에 좋다'며 5Kg쯤 되어 보이는 제일 큰 토끼 한 마리를 3만5천원에 샀다. 구경하던 다른 사내가 "그 정도 크기면 다른 곳의 절반 가격"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토끼를 파는 상인의 처가가 운영한다는 건너편 닭집에서 토끼를 잡아줬다. 용궁 아닌 데서 간을 잃은 토끼의 맨 몸은 생각보다 작았다.

냉이 파는 할머니.5~6천원이면 한아름이다.

◆ '어르신'이 직접 만든 손 두부

 노점의 생선가게에서는 생 복어를 팔았다. 까만 줄무늬가 있는 까치복과 연한 회색의 밀복이 함께 팔렸다. 족히 30Cm가 넘는 까치복 3마리와 밀복 3마리 등 6마리가 3만원에 거래됐다.

자칫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맹독의 복어는 반투명한 종잇장처럼 얇게 썰은 횟감과 미나리와 콩나물을 함께 넣어 끓인 탕으로 미식가와 술꾼들이 최고로 치는 생선이다. 그 유혹에 이끌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구경을 하거나 더러는 지갑을 열었다.

생선가게 젊은 사내는 복어를 팔 때마다 "손질할 줄 아느냐?"고 확인했다. 가게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손질을 해주면서도 "척추를 끊어 피를 빼내고 눈깔과 내장도 함께 제거 한 뒤 맑은 물에 이틀간 담궈 놨다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생선가게 맞은편에서 젊은 아낙이 손 두부와 청국장, 떡국사리, 누룽지 등을 파란 비닐이 깔린 탁자위에 진열해 놓고 팔았다. 아낙은 "어르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어르신'이 가리키는 대상을 가늠하지 못했다. 내 눈에 쓰인 '퀘스쳔 마크'를 보고 아낙이 "시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낙의 말이 고왔다. 손 두부와 깨 두부 한 모씩을 샀다. 설사 맛이 없다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성 싶었다.

스산한 장터에서 뻥튀기 소리가 유난히 컸다.

 ◆"낙지를 찾습니다"

영암오일장에는 인근 시군의 특산물들이 들어와 거래됐다. 장흥의 표고버섯이나 매생이도 한 몫을 하고, 강진이나 해남에 들어 온 어물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요즘 제철인 매생이는 낱개보다는 묶음이 훨씬 쌌다. 매생이 한 재기는 낱개로 4천원이었으나 3재기 한 묶음은 1만원에 팔렸고, 10재기 한 상자는 2만5천원에 거래됐다.

장터에서 낙지를 찾았다. 영암에서 낙지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영산강에 하굿둑이 들어서면서 '세발낙지의 산지'라는 명성은 잃었지만 낙지는 여전히 영암어물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영암오일장에서 낙지는 벌교의 꼬막처럼 시장의 대표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이 어물전을 구성하는 많은 어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읍내장인데다 독천시장이 낙지장으로 자리를 굳힌 탓 일게다. 영암오일장에는 세발낙지보다 더 큰 일반 낙지가 주류를 이뤘다. 낙지는 크기에 따라 마리 당 3천원에서 8천원까지 다양했다.

매일시장의 입구이자 오일장이 끝나는 영암읍 사거리에 '5·18 민중항쟁 사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980년 5월21일, 영암 청년들이 이곳에 집결하여 광주로 출발했고, 주민들이 그들에게 음료와 주먹밥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80년 5월 21일은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금남로가 피로 물들던 날이다.

조영석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행복'이 '호강'을 넘어 너울로 밀려오는 세발낙지

영암의 식도락에서 세발낙지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낙지는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고 할 만큼 강장에 탁월한 효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뻘낙지라고도 하는 세발낙지는 작고 보드라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으로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날로 먹어도 일품이고, 삶아 먹어도 일품이다. 물론 구어 먹는다 하여도 이품이기를 거부한다.

우선 날로 먹는 것으로는 통째로 먹는 방법과 잘잘하게 토막 내어 먹는 탕탕이가 있다.

통째로 먹을 때는 낙지 흡입판이 입천장에 달라붙지 않도록 다리를 손으로 훑어 낸 다음에 머리부터 먹는 것이 요령이다.

탕탕이는 아마도 산 낙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탕탕' 내리 친데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기름장을 발라 먹기도 하나 낙지의 본래 맛을 느끼려면 양념하지 않고 그냥 먹는 것이 더 좋다.

익힌 요리로는 낙지를 통째로 넣어 끓인 연포탕을 들 수 있고, 낙지볶음이나 낙지 초무침도 빼놓을 수 없다. 낙지의 연포탕에 소갈비를 더한 갈낙탕도 바다와 육지의 조합만큼이나 빼어난 궁합을 자랑한다.

마지막으로 구어 먹는 낙지호롱이 있다.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끼운 뒤 둘둘 감아 짚불에 구어낸 음식이다.

어떻게 먹든지, 무엇을 먹든지 '행복'이 너울이 되어 '호강'을 넘는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에 '독천 낙지거리'가 조성돼 있다. 영암군청 인근에서도 맛볼 수 있으나 불행히도 영암오일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