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입력 2022.08.08. 14:02 수정 2022.08.08. 14:12 댓글 0개지역여성사 발굴·아카이빙 일환
방직공장 노동자 6인 구술 담겨
광주 역사이지만 사소하게 치부되고 잊혀진 시민들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 눈길을 모은다.
방직공장 여성노동자 6인의 구술채록집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가 최근 발간됐다.
이번 발간은 광주여성가족재단이 '광주시민이 기록하는 광주여성의 역사'를 취지로 추진해온 지역여성사 발굴과 아카이빙 사업의 첫 결과물.
이 책에서 방직공장의 노동경험을 들려준 구술자 고인선, 노미례, 김옥희, 김복희, 김은경, 정미숙은 1935년생(88세)부터 1982년생(41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걸쳐 있다. 1953년 전쟁 후 방직공장에 입사한 것을 시작으로 임동 일신방직이 가동을 중단하기 직전인 2019년까지 근무하는 등 광주 방직공장의 역사와 함께 한 이들이다.
이들은 방직공장의 삼교대와 철야 작업, '내가 기계인지 기계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솜과의 전쟁을 벌였던 작업장,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가 잠깐의 휴식과 동료들과의 수다를 통해 내일을 버틸 힘을 얻었던 기숙사 생활 등 공장의 노동 경험을 가감 없이 구술하고 있다.
책가방 대신 가장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의 서러운 세월에 불쑥 젖어들기도 하고, '공순이'로 놀림받으면서도 노동을 통해 가족을 먹여 살렸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이들에게 방직공장은 가족의 생계비와 동생들의 학비가 나오는 소중한 일터이자 '지금도 온몸에 솜뭉치가 달라붙는 꿈을 꾸는'지독한 노동의 공간이었고, 내일을 위해 버티고 인내해야 하는 곳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광주여성들이 감내해온 노동의 시간들과 가족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했던 어머니와 자매들을 만날 수 있다. 또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이 수행해온 주체적인 역할과 그에 대해 여전히 충분한 의미부여가 이뤄지지 못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광주여성의 역사이고 광주의 역사인 만큼 잊혀지고 사소화된 기억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면 광주공동체의 역사쓰기는 보다 풍부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방직공장 노동자들의 구술채록과 집필은 지난해 구술채록학교를 통해 광주여성구술채록단으로 위촉된 12명의 광주시민이 참여했다.
광주여성구술채록단으로서 이 작업에 참여한 김유정 씨는 "구술생애사 작업은 글쓰기나 인터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한 관여이자 관심어린 행위이며 동시에 나에 대한 응원메시지 보내기가 아닐까 싶다"며 "타인의 삶의 궤적은 결국 듣는 사람, 보는 사람에게는 어루만짐이고 위로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광주여성가족재단은 다음달 광주여성생애구술 집담회를 통해 구술자와 채록자, 광주시민이 만나 연대하는 기회를 갖는다. 내년에는 전통시장 여성상인 구술채록을 단행본으로 엮어낸다.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 성평등문화팀장은 "앞으로 구술생애사 발간과 온라인 아카이빙 등을 통해 여성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며 "광주시민이 시대의 목격자이자 역사기록의 주체자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과의 접점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번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는 광주여성가족재단 북카페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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