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양림' 다운 모습으로, 쇠퇴한 거리에 활력을

입력 2021.06.17. 15:24 수정 2021.06.17. 15:24 댓글 0개
공간탐구자와 걷는 도시건축 산책
<19>아크레타 양림

최근 광주는 '광주 도시·건축 선언' 이행을 위한 매뉴얼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도시와 건축에 대한 선언으로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움직임이기도 하다.

필자는 실무에서 경험한 도시재생에 관한 생각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건축사로서 실무를 하다보면 구도심 대지의 건축계획이나 사업성에 대한 검토 요청을 많이 받는다. 프로젝트는 법이 어용하는 범위 내에서 효율적인 사업성 검토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의 경제논리에 의해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도심에는 비어 버린 건물과 땅들이 즐비하다. 최근 광주시의 움직임과 함께 구도심 재생사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다. 몰락해가는 구도심에 사람이 왜 가느냐고 핀잔을 두는 사람이 있지만 동명동이 재생에 성공한 과정을 보면 그들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아크레타 양림' 또한 구도심에서 진행된 재생사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쇠퇴한 거리에 활력을 다시 불어 넣는다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도시재생사업은 공공의 영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민간 영역의 참여로 마무리된다.

공공의 시각으로 접근할 경우엔 사업의 효과와 기대치가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경제성이 후순위로 고려되는 반면, 민간사업자가 접근할 때는 경제성이 최우선으로 고려된다. 이 차이는 공공과 민간이 협업해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아크레타 양림 프로젝트가 적용되기 이전의 건물 모습. 5층 규모의 네모반듯한 큰 건물이었다.

민간이 재건축 사업에서 건물의 규모를 법적허용 규모 이하로 축소한다는 것은 수익성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접근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경우 건축주는 축소된 사업성의 보완책으로 낙후된 환경에 놓인 해당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을 고민한다.

도시는 번성과 쇠퇴를 반복하는 생물과 같다. 그 안에서 도로는 혈관이고, 사람은 에너지를 전달하는 적혈구와 같다. 도시의 활력을 속살 깊은 곳까지 전달해 주는 것이 길이다. 필자는 도시재생을 숨이 멈춰버린 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장소가 가지고 있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자리잡아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사업의 기본적인 접근은 기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라 '아크레타 양림'의 경우 최초 사업계획은 5층 건물의 리모델링을 통한 사업성 확보였다. 노후 건물이라 리모델링 비용이 과다하게 산출돼 결국 무산됐다. 기존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가장 쉬운 접근방법이었지만 사업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5층 규모의 네모 반듯한 건물이 아크레타 양림으로 재탄생했다. 인근 한옥 2채 담장을 허물고 오픈형 마당을 만들어 주변의 길과 통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5층 규모를 3층 규모로 축소시키고 직선으로 길다랗던 상층부를 분절지붕으로 만들어 위압감을 해소시키며 주변 환경과 어울리도록 했다. 이 건물은 2019년 광주시 건축상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철거 후 신축을 통한 재건축이다. '아크레타 양림'이 이 경우에 해당된다. 법적 허용범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접근되다 보니 프로젝트 명확한 방향성을 규정할 필요가 있었다. 과거 숭신학원 옛터,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안에 위치한다는 장소적 특수성을 반영한 계획을 수립, 신규로 조성될 공간이 처음부터 자리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듯이 양림동에 어울려야 한다는 전제하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층 한옥으로 만들어진 한옥마을에 5층 규모의 건물이 어울릴까' '바로 뒤에 높은 건물들이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규모가 주변 환경에 위압적일까' '외부공간을 개방해서 개방형 마당으로 만들까' '외부의 마감재료는 무엇으로 할까'….

주변 환경, 질서와 조화로운 건축물을 만들고자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건축주와 이러한 고민을 공유하고 같이 대안을 모색하면서 프로젝트는 구체화됐다.

부지와 인접한 한옥 두 채의 담장을 허물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열린 마당을 만드는 한편 위압감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규모는 3층 규모로 축소하고 길게 형성된 메스는 경사지붕으로 분절해 형태의 변화를 추구했다. 건물 내부는 양림동 골목길을 안으로 끌어들여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게 동선을 계획하고, 2층은 넓은 오픈형 복도를 비롯해 건물 곳곳에 사직공원과 양림동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지난 2019년 아크레타 양림 마당에서 열린 플리마켓 '광주리장터' 밤 모습.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모두에 열린, 넓은 마당으로 설계됐기에 이같은 행사가 가능했다. 양림동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많은 인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아크레타 양림'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건물의 완성까지 2년여의 기간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계획안들과 대안들이 만들어졌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건물은 긴 시간 동안의 충분한 검토와 대화, 설득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가끔 설계에 참여한 프로젝트의 현장들을 둘러볼 때가 있다. 기획했던 의도가 실현됐는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를 되돌아본다. 구상하면서 떠올렸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때는 약간의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건축 이외의 접근을 통해 채우도록 조언을 하기도 한다.

도심의 재생은 결국 사람의 발걸음부터 시작된다. 제아무리 디자인이 뛰어나고, 포장이 잘 됐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외면하는 공간은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잊힐 수밖에 없다.

필자는 가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을 만드는 작업이 도시재생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도심재생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사업 주체의 적절한 양보와 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민간영역에서의 재생은 소요되는 자본과 수익이 반비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어렵다. 이는 많은 도시재생 현장들에서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김준철 ㈜건축사사무소 에코플랜 대표이사

김준철 건축사는

공감(共感)을 통한 공간(空間)을 창조하려 탐구한다. 호남대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현재 건축사사무소 에코플랜을 운영 중이다. 아크레타 양림, 아크레타 첨단, 세종디펠리체 등 다수의 특색 있는 근린상가를 설계했다. 지난 2019년에는 아크레타 양림으로 광주시건축상 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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