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임흥순 감독 "타인 고통 공감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어"

입력 2021.04.18. 17:35 수정 2021.04.18. 17:35 댓글 0개
28일 개봉 '좋은 빛, 좋은 공기' 임흥순 감독
아르헨티나 '오월 광장' 찾았다가
80년 5월 광주 영화 작업 본격 시작
여성들, 단순한 피해자 아닌 행동자
제3자로서 내부 이야기 발굴 노력
임흥순 감독

지난 2019년 광주시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한 해 앞두고 광주정신을 담은 영화 제작 지원에 나섰다. 공모를 통해 최종 12편에 대한 지원이 이뤄졌다.

세 편의 장편 영화 중 작년에 개봉한 이조훈 감독의 '광주비디오'에 이어 올해는 임흥순 감독의 '좋은 빛, 좋은 공기'가 공개된다. '한국인 최초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이라는 타이틀로 기대감을 모았던 임 감독. 그가 담아낸 80년 광주의 오월은 어떨까.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에게 영화와 5·18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빛, 좋은 공기' 스틸컷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2013년 '비념'을 개봉하고 광주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그때 시민 중 한 분이 "광주에도 '비념'과 같은 민초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비념'은 제주 4·3을 다룬 필름이다)

서울 태생으로 지금까지 광주와 큰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을까' '해야할까'하는 고민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그해에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두세차례 찾아 리서치 과정을 가졌다. 당시 '위로공단' 촬영을 막 시작한 터라 '5·18을 어떤 식으로 영화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좋은 빛, 좋은 공기' 스틸컷

-고민이 본격적 작업으로 이어진 것은 언제인가

▲2017년, 한국문화원과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벨라스 아르떼 공동 주최 교류전에 초청 받게 되면서 아르헨티나에 방문한 일이 하나의 시작점이 됐다.

당시, 그 다음해에 있을 미국 전시에 함께 초청되며 한강 작가를 알게 됐는데 아르헨티나에 간다니까 오월 광장에 가보라고 추천해줬다.

'좋은 빛, 좋은 공기' 스틸컷

3주 동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무르면서 오월광장을 두세차례 정도 찾았다. 1977년 신군부의 폭력에 희생된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오월광장 어머니회라는 이름으로 일주일마다 오월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곳 회장 어머니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오월광장 어머니회 회장과의 인터뷰는 어떤 힌트가 됐나

▲아르헨티나의 시위를 보고 이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광주의 오월어머니들이 떠올랐다. 두 도시가 참 많이 닮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당시 여성들의 역할이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귀국하자마자 광주의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해 역대 관장님들과 일반 유족, 피해 가족들을 만났다.

임흥순 감독

이 과정에서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 농성장을 방문하게 됐고 복원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여성, 복원, (실종자)발굴 이런 것에 초점을 맞춰야겠다는 가닥이 잡혔다.

-이번 작업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

▲역시나 당시 여성들이 단순히 그저 밥을 해주고 피해자로서 집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리에 나갔던 이들이 있고 또 그 이후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음에도 당시의 아픔을,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오늘날까지 깊게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도 그렇고 '위로공단' '려행' 등 여성에 초점을 맞춘 작업이 유독 많다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삶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정서가 베어나오는 것 같다. 어머니나 형수님, 여동생은 공단 등에서 일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지지해줬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아버지나 형님은 분명 좋은 사람들이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보다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기술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정서적 거리가 여성에 가까워진 것 같다. 20대를 지나서 보니 직장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여성의 삶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오늘날 들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여성의 삶은 생각과는 다르게 녹록치 않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위로공단'이다.

여성들이 가진 강인함이나 삶에 대한 지혜, 직관, 정신력은 극단적으로 이분화한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들을 영상언어로 담아보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광주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이방인인데. 부담감은 없었나

▲그런 어려움은 충분히 감안하려고 했다. 제3자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광주 출신의 감독이 더 어려울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오월의 고통을, 광주 정신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등을 외부 시선으로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

광주에 살지 않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광주 문제를 바라봐야할지, 이런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 나아가야할지, 더 어린 세대들에게 이런 기억을 어떻게 가지고 나아가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중간자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화 제목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두 도시의 이름에서 탄생됐다. 삶에 필요한 물, 공기, 빛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광주(光州·빛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좋은 공기)라는 두 도시명이 만들어졌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이 곳에서 삶에 있어 불필요한 죽음, 폭력 등이 발생했다.

불필요한 것이 계속 반복되는 고통의 역사들이 어떻게 하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자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함으로써 미래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이 제목을 통해 상징적으로 전하고 싶다.

김혜진기자 hj@srb.co.kr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학살을 겪은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아픈 역사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지금 여기 우리의 미래를 비춘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로 항쟁의 서사를 듣고 국가 권력으로 희생된 이들의 상처와 고통, 죽음 등이 오늘날 우리 일상 안에 어떻게 존재하고 기억되는지를 탐구한다. 또 옛 전남도청이나 아르헨티나 비밀수용소 등 국가폭력이 자행된 공간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살펴본다.

임흥순 감독은

1969년 서울 태생으로 '위로공단' '비념' '려행'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시선을 필름에 담아왔다. 지난 2015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은사자상은 35세 이하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임에도 불구하고 임 감독은 미술제에서 장편 다큐 영화로 40대에 이 상을 수상하는 등 큰 이변을 기록해 국내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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