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나뭇잎이 미친듯 흔들리면 그리움이 깨어나 춤을 춘다

입력 2021.01.21. 15:54 수정 2021.01.21. 15:54 댓글 0개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59. 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2)
한희원 작 '사메바대성당 가는 길'

한순간 무의식 속에 있었다

칼날 같은 그리움이 깊게 파고들었다

그것이 잠일 수도 있었는데

깨어나는 순간 술을 찾았고 음악을 찾았다

머플러는 뒹굴다 지쳐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누워있었다

나는 그보다 더 창백한 눈빛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바람이 들녘에 쓰러져있다

별 몇 개 잎이 다 떨어진 나목에 걸쳐있다

쓸쓸한 영혼이 쓸쓸한 영혼에게 말을 건넨다

검은 새 떼를 지어

가는 달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너의 손을 잡아 가슴에 얹는다

노을이 스멀스멀 산을 넘는다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 영혼의 끝에 다다른다

아, 그렇다 그 날이 그렇다

(한희원의 시 -쓸쓸한 영혼이 쓸쓸한 영혼에게- 전문)

내가 조지아에는 봄에 왔다. 겨울 초입에 귀국했으니 본격적인 조지아의 겨울을 지내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을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부 산악지역인 우쉬굴리의 산길과 평원을 거닐며 서늘함을 미리 경험해 보고 앞으로 밀려올 혹독한 겨울을 예감했다. 아직은 오지 않은 겨울이 눈부신 햇살 속에서 냉기를 몰래 품은 채 매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백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고산 아래의 마을과 만추로 변한 산언덕의 나무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노오란 나뭇잎들이 바람을 못 이겨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그리움이 깨어나 춤을 추었다. 죽었던 혼들이 일어나 춤을 추는 정경을 작곡한 프랑스 음악가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이러했을까.

몇 해 전 몽골에서 바이칼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사막에서 밤을 새우며 세상의 모든 별들을 다 본 것 같았다. 평원의 끝과 끝이 별들로 채워져 있었다. 별 하나 하나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기며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그 별! 별들의 눈빛이라니. 울란바토르에서 침대 열차를 타고 26시간 만에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을 보며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새긴 별들을 숲속에 하나씩 던졌다. 조용히 칼날 같은 그리움이 사그라졌다.

이르쿠츠크의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가면 니콜라이 세르게예비치 트루베츠코이 공작의 부인이 세 딸과 함께 묻혀있다. 러시아를 사랑하고 애국심에 불탔던 젊은 장교이자 데카브리스트였던 트루베츠코이 공작. 그는 장래가 창창한 황실 근위대 장교였다. 왕정에 대항하는 쿠데타가 실패한 뒤 주동자 5명은 처형되고 106명은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유배지인 이르쿠츠크에서 예술의 꽃을 피웠다.

데카브리스트 중 18명은 결혼한 상태였다. 그중 11명의 부인들은 안락한 귀족의 생활을 버리고 혹독한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떠났다. 트루베츠코이의 부인 예카테리나 이바노브나 트루베츠카야가 가장 먼저 남편에게로 갔다. 부인은 시베리아에서 28년을 보낸 뒤 남편이 사면받기 두 해 전에 숨졌다. 실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이르쿠츠크에는 톨스토이 작품 의 주인공인 안드레이 발콘스키의 실제 모델이었던 세르게이 발콘스키와 그의 아내 마리아 발콘스카야가 살았던 집이 있다.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1812년 러불전쟁에서 나폴레옹군대를 격파한 니콜라이 라예프스키 장군의 딸이다. 지금 그들의 집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트빌리시 자유공원 푸시킨 흉상

알렉산드르 세르케예비치 푸시킨(1799~1877)은 혁명가 데카브리스트들의 젊은 부인들을 위해 시를 썼다. 푸시킨은 스스로 데카브리스트의 운명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러시아인들은 푸시킨을 '우리의 모든 것'이라 표현하며 그를 사랑한다.

실제로 러시아에서 그의 문학적 위상은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뛰어넘는다. 다만 번역하기 힘든 그의 글을 외국의 대중들이 쉽게 읽지 못했을 뿐이다. 젊은 시절 외무부에서 번역관으로 일한 푸시킨은 당시에 혁명을 지지하는 인사들과 교류하며 진보 문학모임에 참여하며 시를 발표했다. 그의 시 와 은 저항시로 차르 체제하의 러시아 사회를 비판하는 시이다.

황제들이여, 이제 배우라.

형벌과 포상,

강목과 재단, 그 어느 것도

그대들의 믿음직한 방책이 되지 못함을.

미더운 법의 보호아래

먼저 고개 숙이라,

민중의 자유와 평안이

왕관의 영원한 보초가 되리라.

-푸시킨의 시 '자유' 일부 박형규 옮김 써네스트 2009-

푸시킨은 1820년 차르 정부에 의해 남부 흑해 연안으로 추방당한다. 외무부 소관이어서 전근형식의 추방이었다. 데카브리스트의 냉혹한 시베리아 유배는 아니었다. 그의 남부로의 추방은 운명적으로 카프카스와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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