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를 따라서 (After Walker Evans)’
입력 2010.09.16. 00:00 댓글 0개 현대의 예술작품 속에서 복제나 차용은 이제 새로울 것이 없는 하나의 방법론적 전략이 되었다. 하지만 1980년의 셰리 레빈은 그녀의 복제작품으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워커 에반스의 도록에서 사진들을 재촬영한 후 자신의 이름을 써넣고 사진들의 오리지낼러티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셰리 레빈이 훔쳐온 것은 워커 에반스만이 아니었다. 브랑쿠시의 유명한 조각작품에서부터 마르셀 뒤샹의 ‘샘’ 등, 차용의 범위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든다. 여기에 셰리 레빈은 ‘After’를 일관되게 사용하므로 원작의 출처를 명시해두긴 하였다. 이 시대에 완벽한 창작은 있을 수 없으며 어떤 작품도 오리지널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는 셰리 레빈으로 인해 예술계는 술렁였고, 예술작품에 있어서 표절의 한계와 오리지낼러티의 가치에 관한 거대한 담론이 벌어지게 된다.
워커 에반스의 원작과 셰리 레빈의 복제작, 두 작가의 같은―그러나 그 의미는 사뭇 다른―작품들은 1전시관에 병치되어 전시되는데, 셰리 레빈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레빈의 작업은 원작의 의도를 뛰어넘어 워커 에반스가 기존에 부여했던 의미군을 극복하고 레빈만의 또 다른 의미를 창조해냄으로써 독특한 오리지낼러티를 확보한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같은 공간에 전시되는 스터트번트의 ‘앤디워홀의 꽃’도 역시 차용이다. 그녀의 차용은 셰리 레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5년 작업을 시작하면서 이미 앤디 워홀이나 마르셀 뒤샹, 리히텐슈타인 등의 작품들을 모사함으로 복제의 담론을 제공하려했지만 1965년에 있었던 그녀의 야심찬 첫 개인전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관람객은 복제작으로 가득한 전시장 풍경에 당황하고 어리둥절해했으며 평단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의 전시회를 더 가진 후 스터트번트는 작업 활동을 접고 말지만, 셰리 레빈의 등장으로 잊혀졌던 그녀 또한 담론의 화두가 되었다.
한 기자가 앤디 워홀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당신에게 있어 꽃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앤디 워홀의 대답이 재미있다. ‘스터트번트에게 물어보라.’
하지만 셰리 레빈의 워커 에반스처럼, 스터트번트가 차용한 ‘앤디 워홀의 꽃’ 역시, 앤디 워홀의 ‘꽃’과 그 표현방식만 같을 뿐, 의미하는 바는 사뭇 다르다.
윤은희 <도슨트에듀케이터·독립큐레이터>
- 라 페스트는 '페스트'가 아니다···10년 만에 번역한 이정서 '역병'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카뮈의 책은 어렵기로 소문 나 있었다. '이방인'이 그랬다. 소설의 감동보다 ‘부조리’니 ‘실존’이니 ‘햇빛’이니 하는 개념어를 떠올리며 난해하다고 느꼈다. '역병Peste'도 마찬가지다.'페스트'로 익히 알려진 이 작품 역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왜 그럴까? 번역 때문이라는 게 10년 전 번역 문제를 제기했던 역자의 주장이다.번역자인 이정서는 출간 당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방인' 번역 이후, 10년 만에 '역병La Peste'을 완역했다. 원래 작가가 쓴 서술구조 그대로의 번역을 위해 쉼표 하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고르고 또 고르느라 소비한 시간이었으리라는 걸 문장마다마다에서 담아냈다."카뮈의 '라 페스트La Peste'를 ‘페스트’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이다. ‘쥐’ 이야기가 나오니 누군가는 이것을 ‘흑사병’으로 오해하고 있기도 한데, 그건 더 큰 잘못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흑사병은 ‘peste noire’라고 해서 별도의 단어가 쓰이고 있거니와, 작품 속 질병의 이름은 더군다나 아니기 때문이다."당연히 'La Peste'는 영어 번역서의 제목도 그냥 ‘페스트pestis’ 가 아니라 'The Plague'이다. 즉, ‘역병’ 쯤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페스트’와 구분되는 ‘역병’으로 달리 번역해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이유가 따로 있다.'역병Peste'에는 위대하고, 때론 졸렬하고, 편집증적이고, 성스럽고, 결국 인간답고자 하는 무수한 인물들이 나온다. ‘의사인 리외, 하급 공무원인 그랑, 기자 랑베르, 신부 파늘루, 기록자 타루’는 이 책의 중심 인물로, 그들의 말들은 밑줄을 그어 따로 정리해 놓고 싶을 정도로 울림이 있다. 그들의 생각과 말들은 그때 그 상황에서 나온 말들이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시간에도, 먼 미래에도 사람들에게 깊은 질문과 성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보편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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