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과 야생화 사이를 바람과 함께 걸으며
입력 2020.08.13. 19:52 수정 2020.08.13. 19:52 댓글 0개부칠 수 없는 편지를 매일 쓰고 있다
하얀 편지지에도
그림엽서에도
비에 젖은 유리창에도
흐릿한 너의 마음에도
오래전 쓴 편지는 희미해지고
빛바랜 시간들은 어디로 떠나고 있나
우체국 앞을 서성이다
주소도 잊어버린 부칠 수 없는 편지를 주머니에 넣고 되돌아온다
먼 고원을 나는 새야
전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너에게 보낸다
부칠 수 없는 편지여
부칠 수 없는 너의 편지여
나의 슬픈 시간들이여
(부칠 수 없는 편지)
1997년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림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에 교사직을 던졌다. 퇴직금으로 작은 서점을 열고 옥상 가건물에 화실을 차렸다. 그렇지만 작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급격한 환경의 변화인 것 같다. 마음을 이리저리 휘몰아 달리는 바람처럼 이도저도 못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처음 벌인 서점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화실에 들어서면 붓을 들 수 없는 상태였다.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교직에 있을 때도 매일 5시간 정도는 작업을 유지했다. 학교근무가 끝나 집으로 오면 다시 화실로 출근하여 작업하였다. 체력도 있었고 집중력도 있었다. 결심을 하고 사표를 쓰고 온통 그림 그리는 일에 매달릴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환경이 변한 탓인지 의지가 약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무력감이 찾아왔다. IMF가 오기 전이라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둠이 사회 저변에 깔려있었다.
그림이나 시는 마음의 중심. 자신도 알 수 없는 영혼에서 발원된다. 영혼의 중심이 충만하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 없고 억지로 그림을 그려도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서점에서 빠져나와 길을 걷고 싶었다. 오랜 시간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의 잡념이 사라지고 영혼의 중심에 있는 '어떤 정신'을 만나지 않을까. 그해 여름 무더움과 함께 섬진강 도보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시작되어 광양 망덕까지 홀로 걷고 또 걸었다. 매일 하루 종일 걷다보면 마음도 없는 무아의 상태에서 걷는다. 잡념이 사라지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작업에 대한 진정한 욕망이 생긴다. 걷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일군의 사람들은 고통을 알면서도 잃어버린 자아를 만나기 위해 걷는 일에 도전한다. 제주도나 지리산을 넘어 히말라야, 산티아고, 티벳의 고원길을 걷는다.
조지아의 트레킹 코스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처음 조지아를 와서 차를 타고 달리다 시골마을을 감아도는 므뜨끄바리강을 보고 그 모습에 감탄했다. 풍부한 수량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살이 고산을, 평야를, 마을주위를, 나무숲 사이를 흘렀다. 나는 속으로 조지아 여행에 므뜨끄바리강을 따라 걷는 트레킹코스를 개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은 여행사차원이 아닌 조지아 국가차원에서 할 일이다. 트레킹 코스의 개발은 여행사에는 경제적인 이득이 되지 않는다. 걷는 일은 돈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안전하게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면 트레킹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몰려들 것이다. 외국인들은 단순히 트레킹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다. 조지아는 국토의 면적이 크지 않기 때문에 트레킹과 관광을 함께할 수 있다. 트빌리시에 있으면서 트레킹만 하기 위해서 오는 여행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소수의 인원으로 여행을 하였다. 조지아의 트레킹은 고산을 오르는 경우보다는 산을 바라보거나 옆에 두고 산언덕을 걷는 경우가 많다. 풀잎과 야생화 사이를 바람과 함께 걷다가 마을을 만나면 몇 잔의 와인과 함께 휴식을 취한다. 조지아인들은 음악을 좋아해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행운도 있다. 나는 지금도 우쉬굴리의 대평원을 걷는 일을 잊지 못한다. 내일은 카스벡 산이 있는 스테판츠민다 마을 지역의 추타 트레킹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벌써 마음속에 한줄기 구불한 시 같은 길들이 찾아온다.
-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온누리에 울리다 기정 광주시장이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앞에 마련된 '광주비엔날레 30주년 아카이브 전시-마당' 전시관에서 전시작품을 설명하고 있다.광주시 제공광주시는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전시를 개막했다. 광주시는 광주비엔날레 30년 역사를 돌아보고 광주정신을 조망하며 광주비엔날레의 동시대적 가치를 새로이 정립하기 위해 30주년 아카이브 전시 '마당-우리가 되는 곳(Madang-Where We Become Us)'을 기획했다. 전시는 4월18일부터 11월24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일 자르디노 비안코 아트 스페이스(Il Giardino Bianco Art Space)'에서 열린다.이날 개막식에는 강기정 광주시장과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비롯해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진흥회 위원장, 이성호 주이탈리아 대사, 강현식 주밀라노 총영사, 김병내 남구청장, 광주시의회 신수정·이귀순·서임석 의원, 국내외 미술계 인사와 언론인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이번 전시는 3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섹션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전시 포스터를 비롯해 예술감독 및 큐레토리얼 팀, 전시주제, 참여작가 목록, 전시 장소를 표기한 광주시 지도 등을 통해 광주비엔날레가 구현한 14번의 마당을 소개하고 있다.두 번째 섹션은 광주비엔날레 소장품과 그 의미를 확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백남준의 '고인돌'(1995)과 크초(Kch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1995) 두 작품을 비롯해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하는 가치를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강 시장은 5·18민주화운동의 공동체정신을 상징하는 '주먹밥'과 광주 어머니들이 시민군에게 나눠주기 위해 만든 주먹밥을 담았던 '양은 함지박', 백남준의 '고인돌' 등 전시작품을 소개했다.세 번째 섹션은 아카이브로 광주비엔날레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장 자료들을 전시했다. 티켓, 홍보물, VHS, CD, 전시도면 등 역사적 실물 자료를 비롯해 디지털화된 소장 자료 등을 살펴볼 수 있다.특히 이번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Collateral Event) 30개 중 하나로 선정돼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정신인 '민주·인권·평화'라는 화두를 인류공동체와 깊게 나누고 함께 공감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또 전시장에서 유아브(Iuav) 대학 시각예술학부 학생들의 학과 수업이 진행되고, 카 포스카리 대학 한국학과 학생들이 전시장에서 직접 도슨트로 활동하는 등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아카이브 전시 개막식에 이어 이날 오후에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해외홍보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예고편 격인 '비디오 에세이 영상'이 최초로 공개돼 기대감을 높였다.'비디오 에세이'는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맡아 제작됐고,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의 다채롭고 폭 넓은 작품 이미지와 비디오클립, 판소리 공연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의 모습 등을 담아 전시의 시대적 의의를 강조하는 등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강기정 시장 등 광주시 대표단이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광주비엔날레 거리홍보를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강 시장은 "광주비엔날레는 5·18을 계기로 폭발한 민주화 열망이 민중미술의 에너지로 이어지면서 시작된 행사"라며 "광주비엔날레 30년을 알리는 것은 5·18과 광주정신, 광주의 맛·멋·의를 알리는 것이다"고 강조했다.강 시장은 이어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베니스에서 광주비엔날레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광주를 키우는 일이다"며 "아카이브 전시와 함께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성공 개최를 통해 광주가 국제 시각미술 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한편 오는 9월 7일 개막하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적 명성의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이 선임, 판소리를 매개로 소리와 공간이 함께하는 오페라적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비엔날레전시관과 함께 광주의 예술명소로 손꼽히는 양림동 일대까지 외부 전시장으로 연결, 주제전시를 통해 관객과 작가, 기획자가 함께 접촉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 계획이다. 박석호기자 haitai200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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