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1919남도' 다시 한번 듣는 그날의 함성

입력 2020.01.14. 11:39 댓글 0개

목포역에 도착해 로비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안내문은 [1919남도, 대한독립만세!]라는 특별전시전의 알림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목포시에서 기획한 전시회랍니다.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였습니다.

남도 사람들의 3.1운동과 항일운동을 재조명하고, 일본제국주의의 해양주권 침탈이 만든 암울했던 역사를 소개하는 이 특별전은 2020년 1월 27일(음력 1월 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전라남도는 의로운 지역으로 역사적 위상이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의 승리에는 숨은 영웅 ‘호남의병’이 있었고, 그 후손들은 일제강점기에도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숭고한 정신은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그리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남도의 자랑스러운 정신을 기억할 수 있는 전시회입니다.

국. 내외 3.1독립선언서를 비롯하여 전라남도에서 펼쳐졌던 항일의병과 3.1운동, 해양 수탈 관련 유물, 사진 등 200여 점의 전시물이 소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해양유물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1919남도, 대한독립만세!] 특별전 속으로 지금, 들어가 보겠습니다.

▶ 제 1부 

1919 세계에 대한 독립을 외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9년 3월, 우리 민족의 간절한 함성은 전 세계에 울려 퍼졌습니다. 

독립의 희망은 온 겨레를 하나로 모아 주었습니다.

3.1운동은 일제에 저항하여 일어난 우리 겨레 최대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로 일본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우리 민족은 자유가 없는 공포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민족의 운명은 민족 구성원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 전해졌으며 독립운동가들은 세계정세 속에서 독립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세계에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거리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3.1운동은 비폭력 독립운동이었으며 자유와 정의, 평화의 함성이었습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 당시 전국에서 1,542회의 만세운동이 있었고 2,023,098명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인구 1,700만 명 가운데 1/8이 넘는 숫자였습니다.

조선 전국에서 몇 달 동안이나 지속된 만세운동 소식은 국외까지 퍼져 간도, 연해주, 미국,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촉구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 제 2부 

독립의 염원, 남도 바다에 울려 퍼지다

전라도는 한국 근현대 역사에서 의로운 땅, 의향 (義鄕)으로 그 위상이 높습니다. 

우리의 독립을 향한 염원은 호남 항일의병을 만들었고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전라남도에 독립선언 소식이 전해진 때는 2월 중순에서 말경이었습니다. 

일본과 서울의 지역 유학생들이 각자 고향으로 내려왔고 종교인들이 비밀리에 독립신문을 전해줬습니다. 

만세 시위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천도교, 불교 등 종교인들과 학생, 교사, 지역유림들이 주도하였으며 어부와 농민, 상인, 그리고 남녀노소, 신분과 관계없이 널리 참여하였습니다.

1919년 3월 초, 구례, 순천, 여수, 광양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가 벽보에 붙여졌고 3월 10일 드디어 광주에서 3.1 만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광주 만세운동 당시에 발행된 <조선독립광주신문 제1호>는 전남지역 만세운동을 확산해주는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3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약 50일간 남도 곳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전라도의 만세시위는 약 80건(전라남도 36건, 전라북도 44건)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적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된 5,323명 중 광주/전남이 1,985명으로 그 수가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각종 신문과 기록 자료, 독립운동가들의 증언 등으로 볼 때 전라도의 3.1운동에도 보다 많은 만세시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남도 사람들의 의로운 정신과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와 일제강점기 수형자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목포 최초의 만세운동은 3월 20일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였지만, 목포경찰서장과 무안군수의 회유로 해산하였습니다. 

곧이어 만세시위운동을 다시 준비하였습니다. 

목포철공소에서 동사판을 빌려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 2.8 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독립가 등을 만들었습니다.

4월 8일 거사의 날에 정명여학교 학생들이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동시에 일어난 만세시위는 9일까지 계속 이어졌으며 청년학생층, (정명여학교, 영흥학교, 공립보통학교, 간이상업학교)기독교 항일운동가와 양동교회, 지역 애국지사, 일반 민중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였습니다. 

80여 명이 구속되었고 32명이 재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 

목포의 항일민족의식은 1920년대 청년운동과 노동자 농민운동, 신간회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옛 선교사 사택에서는 1919년 목포 4.8만세 운동 시기의 3.1독립선언서와 <독립가>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섬사람들은 고향 출신 국내외 유학생들을 통해 3.1만세운동 소식을 접하고 독립의 열망을 키웠습니다. 

1909년 초 일제는 조선의 해양지배와 각지에서 수탈한 쌀과 면화를 일본으로 운송하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세웠습니다. 

강압적인 노동력 착취에 분노해 항일의병들과 뜻을 모아 당사도 등대를 습격하였고 소안도, 신지도 등에서도 항일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19년 4월 초에 여수의 어부들도 동참하여 밤에는 해변과 섬에서 봉화를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어선에 태극기를 달고 만세 시위를 하였습니다. 

신안 장산도의 3.18만세 운동, 완도 소안도의 3.15만세 운동, 고금도의 1920년 1월 22일 만세 운동, 

1923년 신안 암태도의 소작쟁의 등 섬사람과 어부들의 항일운동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제 3부 

일본제국주의에게 바다를 빼앗기다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빼앗았던 1910년 이전부터 조선 바다를 침략했습니다. 

1876년부터 1899년까지 부산, 인천, 목포, 군산 등 6개 도시가 연이어 개항하였으나 조선은 주도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전라도의 개항도시 목포와 군산은 일본의 경제 수탈과 침략전쟁의 운송 창구가 되었습니다. 

1912년 국책 회사로 조선우선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조선의 연안 항로를 독점하였으며 <총독부 명령 항로>를 만들어 조선의 해양 주권 지배를 강화하였습니다.

일제는 조선의 바다를 완전히 점령하기 위해각지의 어촌 어장조사를 하였으며 1908년 어업법을 개정하고 1911년 조선어업령을 발표하였습니다. 

일본 어부들의 조선 어촌 이주를 지원하여 어부들은 새로 면허를 받아야 했고 일제는 일본 어부들에게 유리하게 면허를 내주었습니다. 

목포, 부산, 군산, 같은 주요 항구도시와 어촌은 점차 황폐해져 갔으며 우리 바다에서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기 위한 어부들의 저항은 계속되었습니다.

“불로도 태워서 없애지 못하고 공성포로도 깨트려서 없애지 못하고 물로도 휩쓸어 버리지 못하고 칼로도 베어 버리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라의 혼, 국혼 國魂이다.”

- 1919.3.14. 독립단

이번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나라를 빼앗긴 민족의 아픔과 분노, 남도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희망 등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가장 아팠던 역사 속에 남도의 숭고한 정신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전시였는데요. 

[1919남도, 대한독립만세]를 관람하시고 남도의 자부심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 특별전 

<1919 남도, 대한독립만세>

※ 본 게시글은 전라남도 SNS 관광 기자단 이난희 기자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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