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금지된 누드화로 가톨릭 사회에 충격을 준 예술가

입력 2019.12.05. 18:05 수정 2019.12.05. 18:05 댓글 0개
[김허경의 미술기행] 프란시스코 고야 '검은 그림'
고야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을 배경으로 붓과 팔레트를 든 채 우리를 또렷이 바라보는 한 화가가 있다. '작업실의 자화상'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가 마드리드 카예델데센가뇨 1번지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촛대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을 완성한 것이다. 당시 스페인 궁정화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고야는 마치 축제를 위해 몸을 치장한 배우처럼, 뜨거운 태양아래 정열을 불태우는 투우사처럼 열정에 가득 휩싸여 있다.

고야는 고전적인 전통과 규범을 무너뜨리고 시대적 모순을 풍자해낸 '근대적 예술가'로 손꼽힌다. 고야의 삶이 관통한 18세기 후반은 도덕·풍습·정치·사회적 결함에 대한 인식과 이성적 믿음이 교차된 계몽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근대시민의 성장과 함께 비판적 사고를 움트게 했다. 고야는 정치적 혼란, 종교적 타락이 난무하던 스페인의 시대상을 근거로 독창적인 예술성을 발휘했다.

고야 '작업실의 자화상', 1790~1795, 캔버스에 유채, 스페인 마드리드 산 페이난도 왕립미술아카데미 소장

가령, '옷을 벗은 마야'(1800)는 엄격하게 금지된 여성의 누드화를 도발적인 이미지로 그려 보수적인 가톨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으며, '1808년 5월 3일'(1814)을 통해 민중의 항거와 폭력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그가 말년에 그린 섬뜩하고 기괴한 장면의 '검은 그림(black Painting, 1819~1823)' 연작은 우리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한 화가의 예술이 두 개의 영혼을 갖거나 혹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성향을 나타낼 수 있을까.

고야의 작품세계는 '작업실의 자화상'을 제작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가 과로로 쓰러져 중병을 앓게 되면서 현격한 변화를 보였다. 그에게 불현듯 찾아온 병마는 지속적인 현기증과 두통에 시달리게 했으며, 머릿 속을 맴도는 이명 현상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 급기야 47세 이후에는 청각을 잃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던 고야에게 인간의 추악함, 어둠, 악덕, 광기라는 소름끼치는 환영들이 찾아와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오늘날 의학자들은 고야의 질병을 두고 메니에르병(Meniere's disease)과 유사한 바이러스 질환, 혹은 인플루엔자(Influenza), 납중독, 매독설 등 다양한 병명을 추론하고 있으나 당시에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불운한 운명으로 받아들여만 했다.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20-1823

말년에 제작된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는 악화된 병세로 인해 마비 증상을 일으켜 움직일 수 없었던 고야의 육체적 상태를 보여준다. 그림의 밑단에는 "뛰어난 의술과 정성으로 위험한 병에서 73세의 나를 구해준 벗 아리에타에게 감사하며" 라고 적혀 있는데, 1여년이 넘는 기간이 지나 완성된 것으로 보아 그가 오랜 시간 병상에서 죽음과 사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이 엄습하던 고야의 눈동자에 잠시나마 의식이 머물렀을 때 어렴풋하게 비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이성의 지각 아래 감추어진 인간의 내밀한 이중성과 사악한 욕망을 바라보게 된다.

고야는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를 완성할 즈음, 산이시드로 근처에 전원주택을 구입한다. 그는 외부세계와 단절된 '귀머거리 집' 즉 '킨타 델 소르도(Quinta del Sordo)'라 불리던 주택을 새롭게 장식할 목적으로 실내에 총 14점의 벽화를 제작했다. 이 연작들이 바로 회화 사상 전무한 '검은 그림'이다. 회칠한 벽면에 그려진 그림은 역사화, 종교화, 초상화라는 일반적인 주제와 달라 보는 이로 하여금 '수수께끼'와 같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공포감, 기괴함, 끔직하고 흉측함을 형용하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인간의 표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그림' 연작 중 1층 오른쪽 벽에 그려졌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괴기스러운 형상과 잔인한 욕망이 화면을 압도한다. 사투르누스가 인육을 먹고 있는 순간을 포착한 이 그림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씨를 뿌리는 자', 즉 농경의 신인 사투르누스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갓 태어난 자식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던 신화의 내용을 대입한 것이다. 고야가 그린 사투르누스의 두 눈은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행위를 인식조차 못할 만큼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

고야 '개', 1820-1823

최근 뢴트겐 검사에 따르면, '검은 그림'은 2층의 살롱에서 1층 식당으로 이어지는 두 방 전체에 대형 벽화의 형태로 그려졌다고 밝혀졌다. 현재 '귀머거리 집' 은 철거되어 사진으로만 건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포함한 '글을 읽는 남자들' '마녀들의 모임' 등 '검은 그림' 연작들은 1870년대 벽에서 떼어 복원처리 된 후 캔버스로 옮겨져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됐다.

이때 '귀머거리 집' 2층 벽면에 자리했던 '개'는 어두운 바탕에 괴기스런 분위기를 강조한 13점과 달리 절제된 감각과 색채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그림에는 검은 모래 위로 고개를 내민 개가 언덕을 향해 힘겨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인간의 과오, 위선, 허위, 헛된 욕망들이 사라진 황량한 공간에서 개의 머리마저 완전히 잠겨버린다면 정적과 침묵만이 남게 될 것이다. '개'는 청각을 상실한 고야의 자화상이자 아직 남아있는 환상을 응시하는 그의 '영혼'을 암시한다. 즉 고야는 무음의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었다.

인간은 꿈과 욕망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러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에 죽음의 문턱 앞에 서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순간, 저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 어디쯤에,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srb7@hanmail.net전화 062-510-115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사랑방미디어'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