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나주와 일본 그 사이···질곡의 역사 현장

입력 2019.08.13. 17:44 수정 2019.08.13. 17:44 댓글 0개
평야지대·포구 갖춰 대거 몰려
'조선내 일본' 최적 수탈 집결지
문화자원 확대 유산지정 등 시급

나주 영산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영산강을 통해 중국, 일본 등을 잇는 해운의 국제적 해운 요충지였다. 또 일제 강점기 일본 가옥이 형성될 정도로 남다른 근대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도 일본식 지주가옥의 특성을 지닌 가옥들이 영산포 일대에 대거 남아 일제치하 수탈의 아픔과 역사를 있는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가옥과 현장들은 현재까지 문화자원으로 인식되지 못한 채 방치돼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나마 최근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돼 영산포 거리를 근대문화거리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다채롭게 펼쳐질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일제치하 수탈 현장 모습 간직

지난 9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찾은 나주 영산포. 영산포는 일본인 이민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00년대 초 일본인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당시에도 나주 영산포는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왔고, 30정보(29만7천520㎡) 이상의 땅을 가진 대지주가 가장 많이 성장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나주 영산포는 쌀이 많이 나는 평야지대인데다 큰 포구를 갖춰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최적의 수탈 물건 집결지였다. '조선 내 일본'으로 착각할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해방 이후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흔적이 온전한 가옥은 그대로 남았다. 다름아닌 적산가옥이다. 적산가옥은 해방 후에는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재산으로 귀속됐다가 일반 개인이 불허받거나 사들인 일본인 소유의 주택이다. 적산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수탈당한 재산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되고 있다. 적산가옥은 우리 주거문화와의 차이로 인해 점차 소멸돼 현재는 일제 강점기를 입증하는 부정적 문화유산으로 일부 남아 있다.

나주 영산포는 일본인들이 대거 진출한 만큼 그들이 남긴 적산가옥도 유난히 많다.

이들 중 가장 주목되는 곳은 일본인지주 '흑주 가옥'으로 불리는 일제강점기 나주지역에서 가장 큰 지주였던 쿠로즈미 이타로가 살던 집이다.

이 적산가옥은 지난 1935년께 쿠로즈미 이타로가 일본으로부터 목재와 기와, 벽돌 등 자재를 들여와 현재 모습의 집을 지었다. 당시 일본에서도 이같은 규모의 저택은 보기 어려웠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농촌주택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인 이 가옥은 일본식 주택과 서양식을 흉내낸 사무소가 함께 있는 건물로 지어졌다. 해방이 되면서 선교사가 고아원으로 운영했고, 1981년 개인이 매입해 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난 2009년에는 나주시가 매입한 뒤 현재 나주시노인복지관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찻집 등 열린 쉼터로 이용

나주 영산포 대표 일본인 지주 가옥인 '흑주 가옥'은 과거 일제강점기 지역민들의 수탈 침략의 역사를 오롯이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한 역사 교육 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단순한 적산가옥이 아닌 지역민과 관광객을 위한 저렴한 가격대의 찻집 등 열린 쉼터로 이용되며 가옥이 지닌 역사·공간적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제시대 모습이 온전히 남아있는 가옥을 살펴보기 위해 찾는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3천여명이 방문했다. 올 연말까지 6천여명 정도가 방문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취재진이 방문할 당시에도 일본식 지주 가옥은 '다향'이라는 찻집으로 일반인에 공개되며 일제치하 굴욕을 겪은 지역의 상황을 왜곡없이 제대로 알리기 위한 올바른 역사인식 장소이자 세대간 나눔과 소통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교육실로 운영되는 해당 가옥 한 켠에서는 인근 지역에 사는 노인 10여명이 참여한 글짓기 교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해당 교육실에서는 전통 차교육과 함께 나주 역사교육 등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해당 가옥에는 지역민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소규모 전시실 등이 함께 마련돼 질곡한 역사 현장에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임경준 나주시노인복지관 대리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거주하며 지역민들의 재산과 노동력 등을 수탈한 가슴아픈 현장이지만, 지난 과거의 역사를 살피고 다시는 그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가옥을 찾는 지역민과 관광객들에게 가옥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며 "최대한 가옥의 모습을 원형 보존해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아로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돼야

나주 영산포에는 '흑주 가옥' 이외에도 일본인 지주가옥이 대거 산재해 있다. 또 이들 지주가옥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대거 밀집된 장소로 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들 가옥 등에 대한 역사적 공간과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일제가 남긴 침략적 증거이자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주 영산포를 중심으로 일제 수탈의 아픔과 역사를 있는그대로 전달하고 문화자원으로 보존해야 하는 필요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나치 독일이 남긴 흔적을 되살린 프랑스와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유대인들의 사례처럼 말이다. 특히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와 현재로 이어지는 100년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나주 영산포 근대문화자원의 가치는 더욱 높다.

나주시 관계자는 "나주 영산포는 근대 일본인 지주가옥이 대거 분포된 지역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최근 금성교와 구진포 터널, 나주금융조합 등 나주 시내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나주 근대문화유산 등록 활동을 나주 영산포로 확대해 지역의 일제하 수탈의 역사 등 근대적 문화와 유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옥경기자 okkim@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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