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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신고된 살아있는 소녀, 에느 리일 '송진'

입력 2019.07.23. 11:49 댓글 0개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덴마크 작가 에느 리일(48)의 '송진'은 기괴한 소설이다. 그 어떤 스릴러보다 긴장감이 넘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한 편의 블랙코미디처럼 다루고 있다. 남다른 가족사를 배경으로 외딴섬에서 고독하게 성장하는 소녀 이야기다.

홀데트섬은 '헬슨'이라는 좁다란 땅을 통해 본도와 이어져 있다. 이곳에는 목수인 옌스 호더의 가족만이 살고 있다. 이들은 울타리가 쳐진 농장과 작업실, 자그마한 숲도 딸려 있는 집에서 본도와는 떨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 옌스의 딸 '리우'는 학교에도 다니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는 온갖 고물과 잡동사니들이 쌓여 있다. 2층 침실에서 누워 지내는 엄마는 침대 아래로 내려올 수도 없다. 살이 찔수록 말수가 줄어들었고, 거의 말을 하지 않게 됐다. 리우는 수시로 쌍둥이 동생 '카알'과 대화하는데, 갓난아기 때 죽었다. 아빠는 아들 '카알'을 잃은 이후부터 리우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리우를 바깥 세상에 내보내려 하지 않는다. 사망신고를 한 것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두려움이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무심코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다른 물건들 사이에, 혹은 아래, 아니면 그 물건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심지어 더 이상 그에게 물건을 치우거나 버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도 묘한 두려움은 계속해서 커질 뿐이었다."

겉으로는 호젓하고 평화롭게 살아온 듯한 옌스의 삶은 사실 평탄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형을, 갓 태어난 소중한 아들과 딸을 잃으며 상실에 상실을 거듭했다. 말수는 적지만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옌스가 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살아 있는 딸 리우를 컨테이너에 숨어 살게 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을 송진으로 방부 처리해 컨테이너에 보관하는지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집에서 반강제로 쫓겨났던 그 끔찍한 날, 자신을 페리까지 데려다준 뒤로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녀는 아들이 말한 그대로 자신을 페리 앞에 내려줄 건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 마음을 바꿔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폐품 처리장에 버리고 갈 건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난 수많은 세월 동안 옌스가 폐품 처리장에서 무언가를 들고 오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무언가를 버리고 오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말이야, 우리 가족의 삶을 동화 같다고 해야 할지, 공포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쩌면 양쪽 다일 것 같지 않니? 다만 바람이 있다면 너만큼은 동화 같은 삶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이승재 옮김, 328쪽, 1만4000원,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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