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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의 경청] 소설가 정유정 "찌질하고 소심한 캐릭터가 좋다"②

입력 2019.06.24. 10:15 댓글 0개
혼수상태에서 사흘 간 계셨던 어머니 기억 떠올려
죽음 직전 저항하는 시간, 생의 가장 치열한 순간
중환자실 간호사 출신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시각
인생 가장 찬란한 순간은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
너무 많은 실패들 있었기 때문에 오는 울컥함도
내 소설 주인공 중에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 없어
미숙한 존재가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이야기 좋아해
미완성인체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진이, 지니' 작가 정유정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는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가 진행했다. 2019.06.22. bjko@newsis.com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 = ([지승호의 경청] 돌아온 프로 이야기꾼 정유정…첫 여성 주인공, 족쇄를 풀다①에서 계속)

지 – '트라우마 이후의 성장' 이런 주제도 있는데, 그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본인의 삶 자체가 그런 면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정 – 그렇지.

지 - 어떻게 보면 쉽지는 않은 거잖아. 트라우마를 겪고나서 그것을 극복 못해서.

정 - 사람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지.

지 - 트라우마 이후에 성장을 하려면 제일 중요하거나 필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해?

정 - 자기 자신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나 같은 경우는 일단 나 자신하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야. 자기 자신하고 단 둘이만 있을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 그러면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할 거잖아. 어쨌든 살아야 하는 거지. 어차피 언젠가는 죽음의 기차가 오게 되어 있는 거잖아. 그 이전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결과가 어떤 식으로 돌아오든 간에 내가 책임져야 되는 부분이고. 나는 인간이 서글픈 존재라고 생각해.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다 서글픈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운명적으로 불행이 오는지 행운이 오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 그 자체가 연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거지. 신처럼 다 갖춰진 데서 편하게 살면 얼마나 좋겠어. 그게 아니니까 서글픈 거지.

지 – 이런 톤의 작품이 오랜만이라 쓰는 동안에는 독자들의 반응도 궁금하고 두려웠을 것 같은데.

정 – 대체로 반응은 좋다고 하던데. 좋아하고, 울었다고 하는 독자들도 많고, 사인회 와서도 그러더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 눈이 퉁퉁 부어서 왔다"고. 그런 독자들이 있으니까 감사한 거지. 그걸 생뚱맞게 안 받아들이고, '이런 글도 쓸 수 있구나' 하고 받아들여주는 것이 작가로서는 감사한 거지.

지 – 진이가 보노보를 구해주지 못한 것 때문에 죄책감 같은 것이 생기는 거잖아. 정여울 작가는 그걸 '선한 가해자의 트라우마'라고 표현했던데, 살면서 그런 기억들이 있잖아.

정 – 많지. 선한 가해자라기보다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진이, 지니' 작가 정유정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6.22. bjko@newsis.com

정 - 나는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이 선하다는 말보다는 성숙하다는 말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민주는 미숙한 존재인데, 여기에서 진이는 엄청 완벽하게 성장한, 이미 성숙한 존재잖아. 성숙한 인간이라면 타 생명체나 타인에 대해서 이 정도의 배려와 이 정도의 공감과 서로 공존하는 그런 것들을 본인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고 봤거든. 그게 인간이 가진 존엄한 자질인 것 같고. 나는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하는 데서 가장 인간다운 어떤 것들이 시작된다고 보는 편이거든. 여기서 진이 같은 경우는 선한 사람, 이 말을 성숙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지. 성숙한 인격체는 어쨌든 간에 이러한 판단을 할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고. 그런데 사회에 미숙한 사람이 너무 많아.(웃음)

지 – 민주는 본인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면에서 오히려 성숙한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잖아.

정 – 바탕 자체가 발전의 여지가 많지. 기본적으로 얘는 소통하는 귀를 가지고 있잖아. 모차르트가 있는데, 그것이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도구이지, 자기 자신의 소리는 뭘 듣겠어. 배속에서 꼬르록 거리는 소리나 듣겠지.(웃음) 아주 성숙할 수 있는 자질, 재능, 이런 것을 타고났다고 봐야겠지. 그래서 변화의 배리에이션이 넓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한쪽에는 비록 간장 종지의 목소리가 있지만, 모차르트의 귀는 성숙한 소통의 도구잖아. 성숙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자질인 거지. 성숙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은 성숙하게 된다고 생각해. 그 자질이 없으면 안되는 거고. 그 자질이 없는 사람을 우리가 사이코패스라고 하잖아.

지 –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가 살릴 수 있는 생명을 못 살린 것으로 인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건데,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걸 대면하기 고통스러워서 그런 건지, 외면하는 것을 넘어서서 피해자를 조롱하고, 이런 문화가 있잖아.

정 – 잘못된 거지. 피해자를 조롱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지. 피해자가 무조건 선한 사람인 것도 아니거든. 그렇게 보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의 어떤 마음들을 외면하고 외려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지. 그런 사회는 병든 사회야. 걱정스럽기는 해. 점점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지 – 이번 작품의 설명 중에 '생에 가장 치열했던 사흘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혼수상태에서 사흘동안 계셨던 어머니에 관한 기억을 떠올린 거잖아. 작품을 쓰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때 생각을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정 – 간호사였을때 중환자실에서 내가 항상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죽기 직전에 환자들이 혼수 상태에 있을 때 있잖아. 살려고 저항하고 있지 않을까, 죽음에 저항하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저항을 하는 것이 옳을까, 하는 별스런 생각을 다 해봤던 것 같고. 그것은 내가 중환자실 간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나오는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죽음 직전의 어떤 시간들이 생의 가장 치열한 순간이라고. 삶을 향해서 가려고 하는.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사람의 시각인 거지. 경험에서 나오는 시각. 나는 그렇게 느꼈었거든, 간호사 시절에.

지 – 인생에서 가장 눈부셨던 순간이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2007년 세계청소년문학상 당선 통보를 받은 날이라고 했었잖아. 그 전에 워낙 마음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슬플 수도 있잖아. 더 즐겁고 찬란한 일이 앞으로 생길 수도 있는데.

정 –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내 인생에서 최초로 뭔가를 넘어섰다는 경험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허들을 두번세번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조금 더 쉬워지잖아. 그런데 첫 번째 허들을 넘는데 있어서 수십번 넘어졌기 때문에 그 첫 번째 허들을 성공적으로 넘었다, 여기에서 오는 어떤 감격, 이런 것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이상으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눈부시고 찬란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 그날 밤만큼은. 정말 그것은 시작의 시작도 아니었던 아주 작은 출발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지. 그때가 2007년도니까, 꽤 지난 일이네.(웃음)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 realpaper7@newsis.com

지 – 상금도 많았고, 작은 출발은 아니었지.(웃음)

정 – 하하하. 그렇기도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정말 말한 대로 최초로 허들을 넘었다는 것이 제일 강했던 것 같아. 내가 드디어 하나를 넘었구나, 마침내 나도 이야기할 무대가 생겼구나, 이런 것이 컸던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오는 그런 울컥함도 있었겠지.

지 – 일부에서는 영화화를 생각하고 소설을 쓴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좀 받았었는데, 상대적으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그런 얘기가 좀 들어간 것 아냐?(웃음)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강렬하다는 반응들도 많고.

정 – 그런가?(웃음) 나는 여전히 영화를 향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 오로지 독자를 향해서 쓰지. 그래도 영화적이라는 이야기는 되게 많이 듣는데, '영화적이다'와 '시각적이다'의 차이인 것 같아, 내 소설은 여전히 시각적이지, 영화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전형적인 소설의 문법으로 쓴 소설이지.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쓴다, 영화라면 이 대목에서 이렇게 비쳐야 되니 이렇게 써야 해, 그럴 수 있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소설 쓰는 것도 어려운데. 나는 능력이 없어서 그걸 못 하겠어. 영화화 한다고 하면 판권을 가져가서 자기들이 알아서 죽을 만들든 밥을 만들든 하는 것이지, 내가 왜 거기까지 신경을 써야 해. 나는 내 소설만 독자들에게 잘 읽히도록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웃음)

지 - 영화화가 되거나 드라마화가 될 때 개입은 안 하는 편인가?

정 – 아예 안 하지. 개입하는 것도 싫고, 거기다가 신경 쓰는 것도 싫고. 만들어서 내 앞에 갖다놨을 때 보는 것은 즐겁고, 행복하지.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쓰기 싫은 거지. 나는 집안 일도 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우는데.

지 – 뇌과학이나 이런 공부를 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도 조금 바뀌긴 한건가?

정 – 바뀌지는 않는 것 같고,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야는 조금 넓어진 것 같다는 느낌. 어떤 죽음은 삶보다도 가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어떤 삶은 죽음조차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조금 나이도 먹고 아무래도 책도 읽고 그러면 시야가 조금씩 넓어질테니까. 경계를 해야 될 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꼰대가 되는 것, 자기 생각이 굳어져서 어떤 생각이 들어와도 변하지 않는 것.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 모든 것에 다 열려 있으면서. 특히 작가는 꼰대가 되면 곤란되니까.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이민기(29)·여진구(19) 주연 영화 ‘내 심장을 쏴라’(감독 문제용). ‘7년의 밤’, ‘28’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가 정유정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물다섯 동갑내기의 질주하는 청춘 이야기다. gogogirl@newsis.com

지 – 되기 싫다고 안되는 것도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되는 거잖아.

정 – 그냥 나 같은 경우에는 세상사에 대해서 편견을 안 가질려고 하는 거지. 한 가지 어떤 사실이 있을때는 분명히 그 이면에는 다른 여러 가지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살펴보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고. 그것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서 나도 좀 성숙해지고 싶다는 것이지.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고 반드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거든. 인격적으로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이 내 목표고, 꼰대가 안 돼야겠다는 생각은 굳이 안 하지만 굳이 꼰대 같은 짓을 할 필요는 없지. 꼰대 같은 짓이라고 명명된 짓들을 안하려고 노력하는 거지.

지 – 구체적으로는 어떤 행동이라고 생각해? 꼰대같은 짓이란?(웃음)

정 – 자식 인생에 간섭을 한다든가, 남의 말을 함부로 한다든가, 남의 인생을 함부로 내 잣대로 재단한다든가, 그런 것을 안하려고 하지. 말도 좀 조심해야겠더라고, 살다보니까. 어떤 말이 상처를 주는지는 본인은 모르는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 말이 상처가 될 때가 많으니까.

지 – '독자는 나의 힘이자 엔진이고 에너지다. 그 에너지를 받아서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어떤 에너지를 받았어?

정 – 마찬가지지. 처음에는 몰랐는데, 갈수록 단단하게 믿어주는 것 같아서. 항상 만나는 독자들이 또 오고, 책 내자마자 사주고, 북콘서트 같은 것을 대형으로 해도 몇백명이 와서 자리를 채워주고, 끝까지 지켜주고, 점점 더 날 믿어주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이 더 큰 힘이 되고 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이야기꾼을 자부한다고 할까, 그런 사람으로서 더 좋은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아무래도 가장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잖아.

지 – 행사에 가보면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도 오는 거지만, 끝까지 남아서 듣고 거의 대부분이 사인을 받아 가더라고. 오시는 분들의 애정도가 상당히 크다고 느껴지던데.

정 – 이번에 그게 확인이 되니까 되게 마음이 든든하다고 해야 되나, 작가가 그러면 행복한 거잖아. 작가가 제일 행복한 것은 독자들이 믿어줄 때인 거니까.

지 – 외국에서도 강연을 끝까지 듣고, 준비한 책이 완판되기도 했다던데.

정 – 거기 독자들은 나의 구라에 넘어간 것이 아닐까.(웃음) 일단은 지금 시작 단계니까. 해외 판매는 자리를 잡았다기보다는 이제 겨우 두번째고, 다만 해외 평단에서의 평가가 괜찮은 것 같아. 이번에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시나리오화 하고 싶은 책 5권 안에도 들고, 그런 식으로 <종의 기원>이 그쪽 평단에서 괜찮은 평가를 받는 것 같고, 내 책을 출판한 출판사들은 다음 책을 출간하겠다고 하는 곳들이 꽤 많아. 책 내고 나서 독자들 반응이 나쁘지 않으니까. 그런 정도지.

【서울=뉴시스】정유정 '종의 기원'

지 - 여러모로 마음이 든든해졌겠네.

정 - 늘 똑같지. 성격대로 안절부절, 다음 작품을 제대로 써야지, 하는 것이 제일 큰 거지. 소설을 끝낼 때만 행복하고, 3개월까지만 행복하지. '다음에는 더 잘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머리가 무겁고.

지 – 어떤 사람들은 '고증 덕후'라고 표현하던데. 스케치북, 노트, 풍부한 자료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잖아. 봉준호 감독도 디테일에 강하다고 '봉테일'이라고 하는데, 본인은 신경 쓰는 부분만 신경을 쓰지, 고증 같은 것에 대해서 의외로 신경을 안 쓰는 부분도 있다고 했거든. 본인이 어떤 부분에 힘을 주고, 어떤 부분은 가볍게 넘어가야 되는 부분이 있을텐데.

정 – 그걸 잘해야지. 이야기의 리듬인데, 과학적으로 틀리면 안 되는 부분들이 있거든. 딱 그냥 진리인 경우 있잖아. 우리가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진리잖아. 그런 부분들은 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지. 사람들이 아는 것 말고 모르는 부분, 그것은 사실적으로 그려줄 필요가 있지. 그 장면에 필요가 없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고, 이야기에서 전체 줄거리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들이 있거든. 그 핵심이 되는 장면들은 디테일하게 그려줘야 되고, 이 핵심과 핵심을 연결하는 그 부분들은 좀 가능한 한 속도를 내서 빠르게 넘어가야 하고, 빠르게 넘어가되 정확한 부분만 짚어주고 넘어가면 되는 거거든. 그런 리듬에 신경을 쓰지. 그리고 가령 이 부분은 정말로 독자들에게 그림으로 보듯이 눈으로 보듯이 그려줘야 한다, 싶은 부분들이 있지. 특히나 절정 부분 같은 것. 이런 것들은 시간이 1초가 1초가 아니라 1초가 30초 정도처럼 지나가게, 가능한 한 그런 부분들은 자세하게 눈에 보이듯이 그리려고 애를 쓰는 편이야. 아주 중요한 부분들은. 가령 1초 상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1분에 일어난 것처럼 그린다거나, 그런 식으로 시간을 길게 잡아주는 부분이 있고. 대체적으로 플롯상에서 큰 역할을 하는 부분들은 그렇게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전부 필요한 것만 써서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게 필요하고, 길게 흘러가는 부분들은 되도록이면 문장을 더 짧게 쓰는, 원래도 문장이 긴 편은 아닌데 길게 흘러가는 부분은 문장을 짧게, 노래 부르듯이 넘어가야지만 그 부분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신경을 쓰는 편이고. 아주 길게 설명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의 은유로 바로 보이게 할 수 있다면 그 하나의 은유를 찾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고.

지 – 이번 작품으로 치면 임사체험이나 빙의 같은 부분에 대한 연구는 하지 않았다고.

정 – 굳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과학적으로 증명된 부분도 아니고, 진이가 빙의나 임사체험과는 거리가 먼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게 정확한 개념이다' 이 정도만 짚고 넘어간 거지. 그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짚고 넘어간 것이지, '이거다' 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짚고 넘어간 것은 아니니까. 목적이 반대였던 거지.

지 – 원래 작품에서 공간설정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내 심장을 쏴라>와 비슷한 구도라 편했던 건가? 아니면 다른 의미에서 힘든 면이 있었나?

정 – 이번에도 공간 그림을 그린 것이 있지. 스케치북도 있고, 인동호, 그 다음에 영장류 센터 이런 것들은 내 머리 안에 있어야 해서 신경을 썼지. 영장류 센터 같은 경우는 일본 쿠마모토 보노보 생추어리를 거의 비슷하게 그대로 가져와서 산꼭대기의 연구소를 그대로 그려넣은 것이고. 밑에 있는 무곡 골짜기, 정자 이런 데는 내 상상력이 필요했고. 인동호 같은 경우는 별장지대, 특히 물이 흘러드는 길목의 호수가에 별장 지대들이 있잖아.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썼는데, 인동호가 동쪽에 있고 무곡 영장류 센터가 서쪽에 있는데, 책에는 그게 자세하게는 안 나와 있지만, 그런 것도 은유에 가까운 거지. 얘가 인동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죽음을 선택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하나의 막이 끝나는 것이고, 시작은 언제나 되풀이된다는 것, 죽음과 삶은 되풀이된다는 거지.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쓴 거지. 공간설정을 하면 표면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 있고 그 밑에는 이야기의 심층적인 것을 은유하는 공간이 있는데, 그 두 가지를 다 만들려고 애를 쓴 편인데, 그래도 이번에는 쿠마모토 보노보 생츄어리가 있어서 훨씬 더 수월했다고 봐야지. 구체적인 모델이 있었으니까.

지 – 어머님의 죽음이 작품에 많이 들어와 있기도 하지만, <종의 기원>을 끝낸 다음날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

【서울=뉴시스】정유정 '7년의 밤'. 2017.03.24.(사진 = 알라딘 제공) photo@newsis.com

정 – 그러니까 연타로 뭘 얻어맞은 것 같이 그랬었는데, 나 자신도 죽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성숙한 태도를 갖게 된 느낌도 있고. 예전에는 그저 무섭기도 하고, 도망다니고만 싶고 그랬는데 지금은 대체 죽음의 의미가 뭐냐, 이것을 이번 소설을 쓰면서, 쓰기 전서부터도 오래 생각을 했었니까 스스로도 조금 성장한 느낌이었지. 크게 두려워하지 말자, 어째든 생명이라는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순간을 향해서 가는 것인데.

지 – 예전에는 참신하게 느껴진 단어가 지금 쓰면 진부하고 꼰대 같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정 – 가장 경계해야 될 부분이 그 거지, 작가가 언어에 있어서 나이가 드는 것 있잖아. 내가 쓰는 문장에서 나이가 드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되는데, 어차피 내가 실버문학을 할 것이 아니고, 많은 연령층을 상대로 할 거면 상당히 현재적인(!)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 하지, 지나간 언어를 구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지 – 그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을 옆에 두고 글을 쓴다거나 해야 되나? 어떤 분은 같은 표현이라도 다양하게 써야 하니까 네이버 사전을 보면서 비슷한 말을 한번 쓰면 다른 표현을 찾아 쓰려고 노력하는 작가들도 있더라고.

정 – 나 같은 경우는 젊은 친구들의 감각을 읽어보려고 뉴스 기사 댓글을 많이 봐. 물론 안티적인 키보드 워리어도 있지만 대개 젊은 친구들이 쓰는 통통 튕기는 분위기들을 느낄 수 있거든.

지 – 가장 젊은 사용자와 그들이 쓰는 언어니까.

정 – 포털에서 공개되어 있는 커뮤니티들의 글을 읽어보면 젊은 친구들의 고민이 뭔지 읽어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수영 까페 이런데 들어가서 젊은 친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그런 데는 가입이 되어 있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뭐가 고민인지, 젊은 친구들은 뭘 원하는지, 이런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도 하고. 우리 아들이 한참 20대니까 아들 하는 짓거리도 관찰하고, 말수가 없는 편이라 말 시키면 한두마디 밖에 안하지만, 그런 것도 들으려고 하고.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레이더를 세우고 있는 편이지. 언어가 늙으면 아무래도 소설의 이야기도 같이 늙게 될테니까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야.

지 – 그렇게 관찰하고 노력하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낡지 않고 참신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되는 거네.

정 – 내가 다니는 운동하는 클럽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하는 것을 가만히 보려고 하고, 이야기도 몰래 가서 엿듣고, 벤치에 앉아서 다른 짓 하는 척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나 엿듣기도 하고. 재미있어, 피트니스 클럽에 자기 친구들과 와서 얘기하는 거, 전화하는 거. 예전 같으면 길거리에서 깔깔깔 혼자말 하고 지나가면 '어디 아픈가?' 하고 봤는데, 요즘은 금방 알잖아. 핸드폰 하면서 가나 보다, 하고. 여전히 기계치고 스마트폰 조작도 잘 못하지만, 어쨌든 언어 감각에 있어서만큼은 나이가 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편이지. 어려운 말 굳이 찾아서 쓰고 싶지는 않고, 물론 내가 잘 쓰는 단어들이 있고 잘 쓰는 어법들이 있는데, 그런 어법들도 너무 독자에게 익숙해지면 안되니까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주고, 너무 확 바뀌어도 정유정 문장이 이상하네, 할 수도 있으니 조금씩 변화를 주려고 애를 쓰는 편이야. 글을 쓰는 사람이나 영화를 하는 사람이나 변화와 고수할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해서 정통 소설 방식, 이야기 방식을 버려서도 안되는 거거든. 그걸 버리고 너무 가볍게 날아가면 굳이 소설을 고집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서울=뉴시스】 영화 '7년의 밤'의 한 장면.

지 – 악스트 인터뷰에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가 체력, 욕망, 절제라고 했잖아. 세 시간 운동을 하고, 그 기운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운동을 잘 안 하는데.(웃음)

정 – 습관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아. 지난달 20일에 서울에 와서 안 내려가고 있는데, 운동을 못하고 있는 거지. 체력이 날이면 날마다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 운동을 하면 다음날 재충전이 되거든. 한 시간은 근육운동을 하면서 웨이트를 하고, 한 시간은 요가하면서 근육 같은 것을 풀어주고, 나머지 한 시간은 스피닝이나 이런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면 생기가 돌고,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체력 충전을 하면 앉아서 일할 힘이 생기는데,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죽겠어. 서울 올라와서 술도 많이 안 먹었거든. 많이 마시면 스케줄이 엉망진창이 되니까. 오히려 광주 있을 때 성질나면 마시고, 기분 안 좋으면 마시고, 기분 좋으면 마시고, 그러다보니까 일주일에 일곱 번을 마시거든.(웃음) 지금은 술도 안 마시는데도 지치는 것 같아. 나이 탓일 거야. 말하자면 안 늙으려고 애를 쓰는 거지. 내가 몸이 늙으면 소설도 늙을까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체력이 좋아야 정신도 좀 맑은 느낌이지. 지금 머리뚜껑이 구름에 잠긴 느낌이야.

지 – 운동도 자꾸 바꾸잖아. 등산, 수영, 달리기, 웨이트 등등.

정 – 싫증을 잘 내는 타입이라.(웃음) 이 다음에는 크로스핏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게 힘들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운동도 3~4년 하면 싫증나더라고. 몸도 적응을 해버려가지고, 몸이 이미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버려서 운동이 안돼. 시간을 늘리거나 강도를 높혀야 되는데 그러자니 관절에 무리가 갈 것 같고, 종목을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몇 년 했으니까 바꿀 때가 됐어.

지 – 종목을 바꾸면 작품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건가, 그 반대로 작품에 맞는 운동을 하는 건가?

정 – 아무래도 작품이 공격적이고 그럴 때는 운동도 격렬해야 되거든. <진이, 지니> 같은 경우는 그게 아니잖아. 웨이트가 딱 맞는 거지. 다음 소설은 그게 아닐 가능성이 크니까 조금 공격적이고 격렬한 운동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살아남아야 소설을 쓸 수 있잖아.(웃음)

지 – 두 번째인 정유정의 욕망은 어떤 거야?

정 – 언젠가는 독자들에게 정말 내 생각에, 내 기준으로 나는 이 이상 더 나은 소설을 쓸 수 없다고 할만큼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것이 내 욕망인데. 지금 현재는 어딘가 항상 불만이고, 어딘가 항상 불안하고, 나는 이걸 왜 이렇게 못했을까 하고 후회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정도면 내 능력에서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이런 소설을 하나 쓰고 싶은 것이 내 나름의 궁극의 목표야. 언제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진이, 지니' 작가 정유정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어는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가 진행했다. 2019.06.22. bjko@newsis.com

지 – 절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야?

정 –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아야 된다는 거지. 소설을 쓸 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이야기가 중구난방이고 문장도 지리멸렬해지지. 너무 멋진 문장을 생각해냈는데, 이 소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 아무리 써 먹어볼려고 애를 써도. 그러면 그건 안 써야되는 거거든. 버려야 되고.

지 – 얘기하고 싶다고 다 얘기를 하면 산만해지니까 잘 버려야 된다는 거네.

정 – 그렇지. 이 소설 같은 경우도 원래 4부였는데, 여기서 1부인 400매를 덜어냈으니까, 원래 1800매가 나왔던 것이고, 이게 거의 1500매 정도 되는데, 나머지는 다 버려버렸으니까. 그 이야기가 뭐냐 하면, 이야기가 늘어지더라고. 초고에서 들어갔던 것이 다 들어가니까 뒤편에서 늘어지는 거야. 이미 결과는 보이는데, 그래서 그 부분을 잘라내서 결과로 가는 길을 빠르게 해준 거지. 그런 결단이 필요한거야. 그걸 절제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이 부분은 굳이 안 넣어도 독자들이 충분히 이 정도면 개연성이 있고, 이 정도 속도면 된다고 생각할만큼은 잘라내야 된다는 거지. <7년의 밤>은 2000매가 넘는데 그만큼의 필요가 있었던 것이고, <진이, 지니>는 1500매 정도 되는데, 그 정도면 좋았던 소설인 것이고. 처음에 초고를 쓸 때 사이즈가 제일 크고, 마지막 퇴고를 할 때 사이즈가 제일 작은 거지. 최소한의 것을 만들어서 내놔야지, 최대의 것을 집어넣어서 내놓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거지.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처음에 소설을 쓸 때 나는 뺄셈의 글을 쓴다고 했는데, 잔뜩 써놓고, 빼는 게 내 소설이라서 절제가 필요하거든.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

지 – 초고에서 10%만 남긴다고 하는 것도, 이야기를 수정하는 것도 있지만 많이 뺀다는 얘기네.

정 – 빼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줄어들기도 하고. 길게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라고 하면 대폭 수정해서 줄이고, 이 이야기는 많은 설명이나 묘사가 필요해, 이러면 조금 더 늘리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초고의 10% 이하를 남겨야지. 이번 소설도 시작하고 결말만 똑같고 나머지는 다른 거지. 나는 결말이 안 나오면 소설을 못 쓰는 사람이라서.

지 – 조용호 작가의 <왈릴리 고양이나무>를 필사한다고 했잖아. 작품이 다른데 다른 작품을 필사하면서 감흥을 받고 싶은 부분이 있는 건가?

정 – 이 양반은 문장이 너무나 아름답거든. 글을 쓰다보면 '내 문장이 왜 이렇게 거지 같지' 할 때가 있어. 그런 생각이 들 때에는 그걸 꺼내서 아름다운 문장을 필사하고 있으면 마음 속에서 어떤 영감이 차오르는 거지. 그래, 문장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고, 정확한 것이고, 우아한 것이다, 그러면서 용기를 얻는 것이지.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은 못 쓰지만, 내 나름의 정확하고 명징한 문장을 써야겠다, 그런 어떤 필이 차오를 때까지 그것을 필사해. 조용호 선배의 글을 되게 좋아하지, 일단은 우리나라에서 문장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니까. 문장이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정확해. 칼을 벼리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베는 문장이 아니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하고 내가 되게 좋아하는 분위기의 문장인 거지. 나는 흉내낼 수 없는, 타고 나야 하는 문장. 그래서 그것을 필사하는 거지.

지 – 민주 캐릭터가 수명이 진화한 면이 있는 캐릭터라고 했었잖아. 그 전에는 수명을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했었고.

정 – 그래도 나는 수명이를 더 사랑하는데, 민주를 독자들이 많이 사랑스럽게 여겨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아마 <내 심장을 쏴라>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소설인 동시에, 그 당시에 이 소설에는 내 어두웠던 20대, 힘들었던 20대가 그대로 녹아 있는 소설이거든. 동시에 힘겨운 청춘들에게 보내는 위로 같은 소설이기도 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내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출발점이 <내 심장을 쏴라>였다면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작가로서 출발하게 된 계기가 <진이, 지니>라고 보는 거지. 내가 이런 캐릭터를 좋아해. 찌질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지. 거의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여기서 약간 변주가 되었을 뿐이지, 내 소설의 주인공들이 카리스마가 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었던 것 같거든.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의 준호도 그렇고. 카리스마가 10원 어치도 없는 주인공들이 크게 변화를 보여가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와 이야기를 끝냈을 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그런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고.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진이, 지니' 작가 정유정(왼쪽)이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승호 인터뷰 전문 작가가 진행했다. 2019.06.22. bjko@newsis.com

지 – 악역이라도 해도 일방적으로 미워하기보다는 '인생이 폭폭하니까 저렇게 됐구나' 하는 연민이 가게 만들잖아. 그게 정 작가가 인간을 보는 시선이자 세계관인 것이고.

정 – 그렇지. 인간은 결국 성숙해 나가는 존재지. 성숙한 데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고, 완전히 완성되는 것은 죽기 전까지 있을까 싶은데. 미완성인채로 죽을 수도 있는 것이고, 인간이라는 것이 불완전한 존재니까 미완성인체로 죽을 확률이 99%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도 성장할려고 애를 써야 한다고 보고 있는 거지.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 하는 거고. 나는 오래 오래 소설을 쓰고 싶거든. 늙어서도.

지 – 어떤 작가로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

정 – 정유정 하면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주는 거,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마운 거지.

지 – 이번에 처음으로 영감(靈感)이 콧김을 쏘여준 것 같다고 했잖아.(웃음)

정 – 하하하. 나는 영감의 혜택을 별로 받은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시작할 때, 약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 엄마와의 추억, 이거에서 시작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이야기의 줄거리 선이 잡히고, 주인공 이름도 정하고, 제목도 정하고, 일사천리로, 물론 하면서 막히는 부분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이만큼 행복하게 작업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건 굉장히 드문 경험이다, 미치광이처럼 달린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행복한 글쓰기를 할 기회도 거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즐기고 싶었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고.

지 – 올해 특별하게 계획하고 있는 게 있어?

정 – 이번 책 관련 행사 끝나고 나면 독일에 가야 하고, 해외 일정이 많아서 그걸 해야 하고, 그거 하는 틈틈이 다음 소설을 구상해야 되고, 내년에는 소설을 써야 하고. 목표는 2021년 봄에, 드디어 3년이 아니고, 2년만에 돌아오겠다고 한 독자들과의 약속을 지켜보도록 애를 써야지. 2년 11개월도 2년이잖아. 어쨌든간에 그렇게 한 번 돌아오도록 열심히 써야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더 힘있는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 소설 하나 쓰고 나면 나이가 왕창 먹어있고, 그러니까 속상해.(웃음) 두세개 쓰고 나면 10년이 왕창 가는 거지. 좀 빨리 당길 필요는 있지만, 무리해서 빨리 끝내겠다는 것보다는 뭐라고 할까, 내가 격하게 욕망이 생겨서 정신없이 쓸 수 있는 그런 소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 거지. 그런 이야기를 만나고 떠올려서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야. 행사도 좋고 다 좋지만, 외국 행사는 크게 기억에 남고 그러지는 않아. 아무래도 나한테는 국내 독자들이 중요하고, 그 독자들이 좋아하는 소설을 큰 탈 없이 완성했으면 좋겠어.

지 – 마지막으로 해줄 말은 없어?

정 – 이번보다는 최소한 더 나은 이야기를 가지고 올 것이고, 그때까지 기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거지.

□ 지승호 작가는

1966년 부산 출생.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인터뷰 코너를 오래 담당했으며, 월간 <전원생활>의 인터뷰를 맡고 있다. 인터뷰 단행본 저서로 <마주치다 눈뜨다> <7인 7색> <만화, 세상을 그리다> <영화, 감독을 말하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 <우석훈,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신해철의 쾌변독설> <공지영의 괜찮다, 다 괜찮다> <박원순, 희망을 심다> <배우 신성일, 시대를 위로하다>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강신주,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이석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 <김의성, 악당 7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등 50여권이 있다. 인터뷰론을 정리한 책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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