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중국 ‘르네상스’ 송대 힘은 신흥계급형성한 '과거시험'

입력 2019.06.20. 21:38 수정 2019.06.20. 21:38 댓글 0개
중국과거시험·문제의 현대적 의미
-소동파를 중심으로
송나라 300년 중 11세기와 12세기에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익숙한 이름의 구양수, 소동파, 왕안석, 주희 등이 모두 그때의 문인들이다. 송이라는 문화 황금시대의 중심에는 과거시험이 있었다. 사진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모습

과거시험 응시에 신분 철폐

서민 자제 대거 엘리트 진입

공부로 관직 나간 이들

자신들을 士大夫칭하며

귀족과 구별하고 자부심

소동파

송대 과거시험

독서 사색 없으면

풀어내기 힘든 고난도

구양수·소동파·주희 등

중국 역사 최대 인재 배출

왕안석

명·청 시대 과거시험

유가 경전 순서 맞춘 답안

창의력 비판력 함양 사라져

위대한 문인 학자 드물어

과거시험 변화와 깊은 관련


중국 왕조 중 가장 학문과 문학이 발달되었던 때가 송나라다.

송나라 300년 중 11세기와 12세기에 중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익숙한 이름의 구양수·소동파·왕안석·주희 등이 모두 그때의 문인들이다.

송이라는 문화 황금시대의 중심에는 과거시험이 있었다. 과거시험 응시에 신분을 철폐하여 재능 있는 서민의 자제들이 대거 사회 엘리트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래 귀족 중심의 문화가 쇠퇴하고 신흥 서민계급을 배경으로 한 신문화가 발생했기 때문에 송 시기를 중국의 ‘르네상스’라고 보는 학자가 많다. 공부로써 관직에 나간 사람들은 자신들을 사대부(士大夫)라 부르면서 기존 귀족들과 구별하고 자부심을 가졌다. 이러한 지배층의 변화는 황제의 힘을 키워 주어 송부터 본격적인 황제 일인정치가 시작되고 황제가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 과거시험의 주관자는 황제였기 때문에 서민출신의 합격자들은 자연히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일반 귀족들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면 당시 과거시험의 시험 문제는 어떠했을까.

지면상 전체를 논할 수 없고, 송 엘리트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소동파의 경우로써 알아본다. 소동파는 본명이 소식(蘇軾, 1037-1101)으로서 20세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의 길에 올랐다. 후에 지공거(知貢擧, 시험감독관)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소동파가 출제한 문제들 중 세 개를 소개한다.

먼저 ‘영흥군추시거인책문일수(永興軍秋試擧人策問)’.

묻는다. 옛날 한나라가 진나라로부터 천하를 받아서 진나라 제도를 그대로 시행했으나 한나라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 당나라가 수나라에게서 천하를 받아서 수나라 제도를 그대로 시행했으나 당나라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 중략 … , 그 세상을 소란하게 하고 풍속을 사납게 함이 오늘날과 같음이 없다. 그 작은 것을 행함도 분별하지 않는데 큰 것을 어찌 감히 논하는 자 있겠는가. 그런 즉 끝내 변하게 할 수 없는가, 아니면 변화시킬 방법이 없는가. 장차 그 방법을 알았다면 어지러운 의논 따위는 근심할 필요 없는가. 다스림의 도는 변할 수 있어서 그 일정한 전해짐이 없는 것인가? 이른 바 승잔거살이란 것이 그 마침내 실효성이 없는 것인가? 조리 있게 설명해 보시오.

이 문제가 질문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400년 한나라는 건국 20년 만에 망한 진나라가 법을 썼다. 300년 당나라는 30년 만에 망한 수나라 것을 썼다. 왜 같은 법으로써 정치를 했는데 이렇게 다른 결과가 되었는가. 또한 군자가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고 하지만 법 시행 효과의 신속성을 추구해서 법을 바꾸면 과연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는가.

다음은 ‘시관직책제삼수試館職策題三首’ 중 일부 문제다.

진나라는 강함에서 나라가 망했고, 주나라는 약함에서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옛날 주공이 노나라를 다스림에 친친(親親)하고 존존(尊尊)하며 어진 이를 천거하고 공 있는 이를 우대한 것은 삼대가 공통된 바인데 제나라와 노나라가 그것을 실천했으나 모두 쇄함과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친친은 부모형제를 포함한 친족과 잘 지내는 것이고, 존존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 진나라는 강해서 망하고 주나라는 약해서 망했다. 법도가 제대로 선 나라 중에는 잘 다스려지는 나라도 있고 어지럽게 된 나라도 있다. 이러한 모순들에 대해서 수험생 본인의 생각을 서술해 보아라.

다음은 소동파가 1071년 개봉부추관을 지내면서 향시(鄕試)의 시험문제를 출제한 것이다. 진나라 무제는 오나라를 평정하고 독단으로 정치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제나라 소백은 관중에게 전권을 맡겨서 패자의 나라가 되었지만, 연나라의 쾌는 자지에게 전권을 맡겨서 실패했다. 일은 동일하나 공적은 다르니, 왜인가?

이 시험문제는 당시 왕안석이 시행한 신법의 독단을 풍자했기 때문에 왕안석을 크게 노하게 했으며, 이 일로 소동파는 폄적을 당했다.

지금까지 읽어본 시험 문제들의 유형은 ‘논책(論策)’에 해당하는 것으로, 논책은 역사나 경서에서 문제를 내어서 수험생이 현재 국가나 사회의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다음은 신법을 두고 소동파와 대척점에 섰던 왕안석이 책문(策問) 형식으로 출제한 짧은 문제 하나를 소개한다.

묻는다. 하나라의 법은 상나라에 이르러 바뀌고, 상나라의 법은 주나라에 이르러 바뀌었으니, 모두 세상에 따르고 백성을 위하여 조절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이치는 서로를 본받지 않았을까. 삼대라고 불리는 하, 상, 주, 세 나라는 각각 법이 달랐다. 그러나 법의 취지나 원리, 정신은 같지 않겠는가, 그에 대해 수험생의 의견을 논술해 보아라, 라고 하는 문제이다.

이상 송대의 과거시험 문제와 답안을 보면 오늘날의 수준에도 수험생들에게 요구하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독서와 사색이 없으면 풀어내기 힘든 고난도의 시험이다.

그러나 송나라 후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시험문제가 유가 경전 중심으로 전환되고 답안을 8개의 순서에 맞추어 적는 팔고문(八股文)을 강요함으로써 창의력과 비판력을 함양하는 시험이 사라지게 되었다. 명청시대에 위대한 문학가나 학자가 드물었던 것은 바로 과거시험 양상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서구에서 처음으로 글쓰기 시험을 관리채용에 적용한 국가바로 프랑스였다. 18세기에 볼테르, 디드로, 몽테스키외 같은 계몽사상가들이 중국을 연구하면서 시험제도를 소개했고, 1791년 프랑스가 서양 최초로 ‘문관시험’을 시작했다. 1853년 영국이 도입했으며 이후 영국을 모방한 유럽의 각 나라들이 시험제도를 정착해나갔다. 이는 서양에서 하층민과 상층민이 합법적으로 신분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중국보다 훨씬 늦었음을 말해준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중국의 과거제도를 시행한 반면 일본은 과거제도란 게 아예 없었다.

한국의 ‘찍기’와 완전히 대조적으로 18세기 중국 시험 방식을 현대화 시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에서 고등학교 졸업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는 그리스·로마부터 발달되어 온 수사학 전통과 중국 과거시험의 글쓰기를 융합한 논술형이다. 합리성에 기초한 자기 판단 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문제 하나를 4시간 동안 푼다. 시험이 끝나고 문제가 발표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집이나 카페에서 시험 문제를 몇 시간 씩 토론한다.. 이 바칼로레아를 통해 프랑스적인 사유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 문화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고 프랑스적인 것을 지켜나가면서 스스로의 창조를 하는 원동력이다.

역대 바칼로레아 문제 중 흥미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장춘석 전남대교수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한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진실될 수 있는가?

·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서도 윤리를 말할 수 있는가?

·선의의 거짓말은 유용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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