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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에서 다시보는 변월룡...레핀미대·평양미대 교수

입력 2019.04.17. 15:13 댓글 0개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 17일 개막
2016년 덕수궁관서 대규모 전시후 상업화랑서 재조명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17일 학고재 화랑에 전시된 변월룡의 자화상을 한 관람객이 마주하고 있다. 학고재는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의 작품 189점을 전시한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림은 늙지 않는다. 그때부터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입술안에 잠겨있다. 멀리 쳐다보는 눈망울은 어쩐지 슬픔이 베어있다. 1963년 나이 48세에 그린 그의 유일한 자화상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1916년생, 러시아 국적인으로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3년간 근무했던 그는 고국인 평양으로 복귀를 평생 희망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고국 재방문을 염원했지만 다시 갈수 없는 곳이 됐다. 고국을 가려고 몇번을 보따리를 쌌지만 고국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10년간 체념과 그리움, 서러움이 자화상에 담겼다. 당시 그는 북한 당국의 무리한 귀화 종용을 따를 수 없어 거절하자 숙청대상자로 분류됐다.

병진년 용띠 해 달밤에 태어났다고 할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월룡(月龍)으로 지었다. 연해주 쉬코토프스키 구역 유랑촌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호랑이 사냥꾼인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다. 손자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지은 할아버지는 늘 "나는 생계를 위해 어쩔수 없이 호랑이 쫒아 연해주를 유랑했지만, 너만은 꼭 고국으로 돌아가 살아라"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러시아 최고 최대 미술대학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 회화 조각 건축 예술(레핀 미술대학)에 입학 수석으로 졸업하고 이 대학교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 러시아 국적 고려인 화가 변월룡(1916~1990)이야기다.

러시아 동포 3세인 변월룡은 할아버지 뜻을 따라 평생 자신의 월룡이란 이름을 고수했다. 레핀 대학에서 1951년 소련 미술학 박사 학위를 취득, 같은 해 건축 예술부 데생과 조교수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 1953년에 부교수로 승진하면서 북한 교육성 고문관으로 파견되었다. 평양미술대학의 고문 겸 학장으로 재직하며 교육 체계를 바로잡고 학생과 교수들을 지도 및 육성했다. 이듬해 러시아로 돌아가 복직한 이후, 고국으로의 복귀를 평생 희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1977년 레핀·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 정교수로 승진, 1985년에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접고 퇴직했다. 1990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뉴시스】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17일 문영대 미술평론가가 러시아 국적 고려인 화가 변월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5년전 러시아미술관에서 변 화백의 그림을 우연히 발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전시를 추진하고 유치했다. 이어 학고재와 손잡고 '우리가 되찾은 천재화가, 변월룡'전에 나섰다.

그렇게 묻힐뻔한 변월룡을 발견한 건 문영대(61)미술평론가다. 25년전인 1994년 러시아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던 중, 우리 정서가 짙게 베어나오는 작품을 발견했다. 러시아어로 글씨가 써져있어 종이에 그려온 글씨는 '변월룡'이라는 이름이었다.이 후 변월룡을 알기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그의 유가족을 만나 한국에서 전시까지 추진했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시절, 2005년 전시가 열릴 뻔 했지만 무산되어 실망이 커졌고, 러시아인 부인은 이듬해 별세했다. 문영대 평론가는 "한국인을 믿지 못해 처음에는 꺼려했지만, 나중에 진심을 알고 많이 도와주셨는데, 전시가 열리는 것을 보지 못한채 돌아가신게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변월룡은 탄생 100주년에 부활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 체면을 세웠다."비록 육신은 타국에 묻혀 있으되, 그의 영혼이랄수 있는 예술작품이 마침내 고국의 품에 안겼다. 특히 이 전시는 북한에서 숙청시킨 하가를 남한에서 거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변월룡은 한국전쟁 이후 활동한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화가다. 그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문 평론가는 "변월룡은 통일 한국 미술사에서 남과 북을 잇는 연결 고리 구실을 할 작가"라고 강조한다.

"분단의 비극이 낳은 정치적 이유로 한국 미술사에서 지원지 비운의 이름"이다. 문 평론가는 "평생 한국식 이름을 고수하고 조국을 그리워했으나 끝내 환영받지 못한 채 잊혀진 화가"라며 "6.25전쟁 이후 고국의 모습을 기록화로 남겼으며, 특히 북한 미술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폐허와 다름없던 평양미술대학의 학장 및 고문으로 파견되어 교육 체계를 바로잡는 데 힘쓰는 한편, 당대 주요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사실주의 미술의 탄탄한 기초를 전수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귀화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배척당했고, 남한에는 최근까지 변월룡의 존재가 알려진 바 없어 그동안 충분한 조명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뉴시스】변월룡, 어머니 Mother, 1985,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19.5×72cm

"변월룡은 한국 구상미술 역사의 공백을 메울 인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주장이다. 서양화의 기초와 표현에 있어 뛰어난 역량을 지닌 화가로, 전후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맥락을 강화할 주요 인물이라는 것. 특히 한국인 화가가 일본과 서구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서양화를 배워 한국에 유입했다는 점은 연구의 폭을 확장할 계기를 마련한다.

변월룡은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을 다수 남긴 점도 주목할 만하다. 러시아의 당대 주요 인사들은 물론, 한국 위인들의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하여 화가 배운성, 문학수, 정관철, 1950년대 이후 우리 역사에서 홀연히 사라진 근원(近園)김용준, 민촌(民村 )이기영 등 수많은 월북화가와 문인들이 변월룡의 화폭에서 되살아난다.

덕수궁관 전시 이후 3년만에 변월룡의 삶과 작품 인생의 흐름을 다시 살펴볼수 있는 전시가 상업화랑에서 마련됐다.

학고재는 17일부터 '우리가 되찾은 천재화가 변월룡'을 타이틀로 회화 판화 데생등 189점을 전시한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변월룡이 러시아와 북한을 오가며 제작한 작품으로 작가의 '데생 실력'을 총망라해 살펴볼수 있다. 국내외 미술시장에 변월룡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소개하고 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다.

1985년에 그린 '어머니' 그림에는 '어머니'라고 한글로 써있어 눈길을 끈다. 외동아들이었던 변월룡은 학업등의 이유로 어머니의 곁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느라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평생 한으로 여겼다. 어머니 초상화를 그린 1985년은 뇌졸중등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투병중에는 유년의 기억과 고국의 자연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생전 렘브란트를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꼽았다는 변월룡의 동판화는 렘브란트의 영향이 보인다. 1958~1959년 변월룡은 북한에 돌아 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고국의 지인들에게 줄 선물로 다수의 판화를 제작했는데 결국 무산되어 러시아에 남겨졌는데, 이번 전시에 대거 소개된다.

문영대 미술평론가는 "아직도 국내에서 낯선 이름이지만, 변월룡은 작품에 한글 서명을 남겼고, 세상을 떠난 뒤 무덤 비석에서 한글로 이름을 새겼다"면서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끊임없이 피력한 인물로, 미래의 남북통일 한국미술사를 염두에 둘때 북한미술의 뿌리인 변월룡을 묻고 갈수 없다. 앞으로 변월룡 전국 순회전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19일까지.

【서울=뉴시스】학고재는 17일부터 '우리가 되찾은 천재화가, 변월룡'을 타이틀로 러시아 국적 고려인 화가 변월룡을 재조명한다.
【서울=뉴시스】학고재 변월룡 개인전인 17일부터 5월1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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