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이 시작된 곳

입력 2019.04.15. 14:14 수정 2019.04.16. 06:50 댓글 0개

요즘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출품 중 하나가 바로 김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재배하지만 우리나라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김은 없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서해에서 생산되는 김은 식감과 맛이 뛰어나 남다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찾아간 곳은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이 시작된 곳 광양입니다. 

오늘 찾은 김시식지는 1600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1906~1960)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입니다. 

그리고 광양에서 자란 김의 유례와 역사,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역사관의 역할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양식이라고 하면 완도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초 김 양식의 출발점은 광양이에요.

이곳 광양 김 시식지는 1987년 06월 01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 지정된 곳인 만큼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우리의 자산입니다.

옛 모습을 재현해 놓은 큰 대문을 넘어서면 김여익 선생을 기리는 영모재가 보입니다. 

광양 김 시식지 입구에는 관광안내소가 있어요. 

항상 직원분이 상주하고 계셔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미리 연락하고 오세요.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우측에 보이는 역사관으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역사관은 김 양식의 모든 역사를 한곳에 전시해 둔 곳입니다. 작지만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은 곳인데요. 

무엇보다 광양이 우리나라 최초의 김양식장이었다는 점이 새로웠어요.

김여익 선생은 인조 18년 1640년에 광양 태인도에 들어와 우리나라 최초로 김양식을 시작한 분입니다.

섬진강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의 합수지점인 광양의 김은 향과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 곳 태인동에서 재배된 김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는데요. 일제 강점기에는 광양의 김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이를 판매하는 해태조합이 생겼고 일본으로 많이 반출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예전 김 양식장의 모습입니다.

지금 양식 방법과는 다소 다른 모습의 양식장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예전에는 섶(갈대, 대나무)을 뭉치로 묶어 갯바닥에 꽃아 놓고 민물과 썰물 때 섶에 달라붙은 김을 채취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점은 그 해 여름 강우량이 많으면 좋은 포자가 많이 형성되어 김 양식이 잘 된다고 하는데요.

섶을 꽂아두고 약 2달 뒤부터 채취를 시작해 15일 간격으로 음력 2월말까지 8~9 차례 정도 채취를 했다고 합니다.

광양만의 옛 시절 김 양식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는 포스코가 생긴 이후부터 김 양식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섶을 묶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묶어놓은 섶은 민물 때 바다로 나가서 꽂기 작업을 합니다.

약 2달 뒤 김을 채취하고, 육지로 가져와 김을 세척 후 김 뜨기를 통해 김의 모양을 만들어 준답니다.

건조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김 떼기 작업을 하면 맛있는 김이 완성된답니다.

모형으로 알기 쉽도록 설명해 놓아 옛 시절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답니다.

예전 금호도에서 김 건조작업을 하던 옛 사진입니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은 없어진 것이 내심 아쉽더라구요.

영모재 뒤에 있는 유물전시관입니다. 예전 김 시식에 손수 사용했던 실제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도구들도 구경하고 해설사 님의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옛 시절을 회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광양김시식지

전라남도 광양시 김시식지1길 57-6

사진 광양시 제공

열심히 김 시식지를 둘러보고 다음에 찾은 곳은 망덕포구입니다. 망덕포구는 입이 즐겁고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거운 곳입니다. 

먹거리로도 유명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혼이 담긴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윤동주 시인은 졸업하던 해 자선시집 발간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하숙집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본인의 원고를 맡겼는데요.

그 원고의 가치를 알고 있던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 어머니에게 보관을 부탁합니다. 

학병으로 끌려가는 아들의 유언같은 부탁을 위해 어머니 박아지 여사께서 이 마룻바닥을 뜯고 항아리 속에 비단 보자기로 싸서 숨겨놓는데요. 

광복이 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정병욱 선생이 비단 보자기 속 원고를 꺼내 유고시집을 출간합니다. 

우리 민족의 보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렇게 탄생을 했습니다. 

이 시집을 만나게 해준 고마운 공간 ‘정병욱 가옥’. 오래된 낡은 가옥이 새삼 다시 보입니다. 

사실 정병욱 선생님 역시 우리 국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세상에 알린 것 외에도 고전 시가를 비롯해 고전소설과 판소리 분야에 업적을 남기셨어요.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전시가론>, <한국고전의 재인식>, <한국의 판소리> 등이 있습니다. 

윤동주유고보존가옥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망덕길 249

맛있는 김이 있고 멋있는 시가 있는 광양 나들이 즐거우셨나요?

오늘은 윤동주 시인이 남긴 시 중에 가장 널리 사랑받는 시로 마무리 할게요!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출처]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이 시작된 곳 광양|작성자 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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