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도시樂]함평에서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만나다

입력 2019.04.10. 17:37 수정 2019.04.13. 20:45 댓글 0개
임정 수립 100년··· 이번주엔 역사체험
함평에 ‘호남 유일’ 임정 요원 김철 발자취
김구 "100가족 화목" 광주 동구 백화마을

올해로 꼭 100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의식과 민주주의 발전의 원동력이 된 1919년 3·1운동과 그 직접적인 결과물인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한 세기가 흘렀다.

일부 지식인의 선언적 운동이 아닌 남녀노소 다양한 계층이 만세를 외치며 모두가 하나가 됐던 100년 전 선조들의 용감한 행동은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헌법 전문에 명문화 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맞아 그 정신의 모태가 된 역사적 현장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함평에 상해임시정부청사 ‘왜’

함평군 신광면 일강로 873-12번지. 볕이 잘 드는 언덕에 말끔한 1층짜리 한옥 1채와 3층으로 된 단출한 붉은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결연한 표정의 안중근(1979~1910) 의사와 일강(一江) 김철(1886~1934) 선생이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호남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지역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임정 수립에 참여했던 김철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과 1919년 중국 상해에 마련됐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함평 신광면 함정리 구봉마을에서 태어난 김철 선생은 고향에 있는 전 재산을 처분해 임시정부 청사를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김 선생은 초기 임시정부 청사의 소유권자이기도 하다.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 선임(군무장), 초대 재무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다 일본경찰에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한 선생은 후유증에 급성폐렴까지 겹치며 1934년 이국땅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엄숙함 속 독립혼 그대로

임시정부 청사 입구에 들어서니 1947년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메시지가 담긴 흉상이 먼저 반긴다.

빛바랜 태극기와 이동녕, 김구, 이승만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사진이 내걸린 회의실에는 탁자와 의자, 다기, 선풍기까지 그대로 재현된 옛 모습이 방문객을 맞았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를 고문할 때 쓰였던 쇠사슬 도리깨와 전기 고문기, 그리고 당시 선조들의 아픔을 재현한 고문 소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하게 한다.

임정 국무위원급 50인의 명단 앞에서 절로 숙연해진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사이 낡은 나무 의자 한 개가 눈에 띈다. 의자 뚜껑을 들춰내자 드러난 임시 변기에서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 엿보였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주야장천 독립을 고민했을 김구 선생의 집무실도 그대로다.

김철 선생을 비롯해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신익희, 안창호, 현순 등 1919년 임정을 수립하고 초기 정부 활동을 지휘했던 국무원 요원들의 비장한 표정의 단체사진은 숙연함을 안겨준다.

#김구 다녀간 그 마을 “백가족 화목”

광주 동구 학동 8거리에 있었던 백화(百和)마을은 백범 김구 선생과 인연이 깊다. ‘백가족이 화목하라’는 뜻의 지명을 김구 선생이 작명했기 때문이다.

2011년 재개발사업지구에 선정되면서 현재는 흔적이 많이 사라졌지만 김구 선생과의 인연을 기리는 역사공원과 백범기념관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1946년 9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신분으로 한반도의 삼남지방을 찾는다. 과거 '치하포 사건' 당시 도망자 신분이던 자신을 숨겨주는 등 도움을 준 이들에게 보은 하기 위한 성격의 답방이었다.

당시 광주서정공립국민학교(현 광주 대성초)에서 열린 ‘김구선생환영기념강연회’에 참석한 선생은 당시 서민호 1대 광주시장으로부터 일제 강제징용 후 돌아온 이들이 천변 움막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앞선 답방에서 받은 재물을 기탁했다.

서 시장은 이 기탁품을 종잣돈 삼아 학동 8거리 4평 남짓한 작은 건물 100여가구를 세워 전재민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구 선생은 ‘백 가구가 화목하게 살아라’라는 뜻으로 ‘백화마을’이라고 명명했다.

▲역사공원·기념관으로 재탄생

그러나 백화마을은 지난 2011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며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광주시는 의미라도 되살리자는 뜻에서 인근에 역사공원을 조성해 김구와 마을의 인연을 기록했다.

2015년엔 사단법인 백범문화재단이 백범기념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기념관은 김구의 생애와 백화마을의 유래를 설명하고, 광주·전남지방 독립운동가들을 추도하는 전시관과 교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흘렀지만, 독립운동가들의 혼은 이곳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통합뉴스룸=주현정기자 doit85@srb.co.kr·최두리기자 duriduri4@srb.co.kr·김경인기자 kyeongja@srb.co.kr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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