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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복도 없는 그녀, 줌파 라히리 '내가 있는 곳'

입력 2019.03.22. 16:58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지금은 우리가 하나로 연결돼 있지만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만을 바라보려 애쓴다. 이십 분 동안 나와 거울 사이에서 이 여인은 내 이미지로부터, 내 슬픔으로부터 날 보호한다. 결국 적어도 이때만큼은 나도 아름답다고 느낀다."

인도계 미국 작가 줌파 라히리(52)의 소설 '내가 있는 곳'이 번역·출간됐다. 지리적, 물리적 공간이면서 내면의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사색하고 묻는다. 주인공의 이름, 사는 도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이름은 한계를 짓고 호명은 구체화하는 속성이 있다. 작가는 이름을 없앰으로써 열린 세계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주인공은 대략 40대 초반, 어느 한적한 바닷가 도시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교수,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는 미혼 여성이다. 어릴 적 부모에게서 받은 트라우마가 강하다. 아빠는 외부와의 교류를 거부하는 삶의 방식을 가족에게도 강요했다. 엄마는 성격이 안 맞는 아빠와 매일 다투며 딸에게 집착했다. 당시 느낀 결핍·불안은 친구·이성 관계로 이어졌고 여전히 그녀의 삶을 흔든다.

사랑에서도 상처가 있다. 양다리를 걸친 애인, 유부남과의 짧은 만남, 친구의 남편을 사랑하지만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 학회에서 잠깐 만나 마음으로만 품고 있는 미래의 사랑 등으로 막연한 불안을 품는다. 직장 동료들, 여러 친구들과 좀처럼 친해질 수가 없다. 그녀를 위로하고 혼란케 하는 사랑의 그림자인 '그'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계속 살아왔던 곳을 떠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그 그늘은 구출이라기보다 패배였다.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감수해야 할 혹은 넘어가야 할 야생의 요소, 열망하는 혹은 증오하는 요소다. 비교당할 똑똑한 남자 형제나 아름다운 자매가 없음에도 난 그늘에 있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 계절의 냉혹한 그늘 또는 자신 가족의 그늘을 피할 수 없다. 동시에 내겐 누군가의 친절한 그늘이 없다."

"방향 잃은, 길 잃은, 당황한, 어긋난, 표류하는, 혼란스러운, 어지러운, 허둥지둥 대는, 뿌리 뽑힌, 갈팡질팡하는. 이런 단어의 관계 속에 나는 다시 처했다. 바로 이곳이 내가 사는 곳, 날 세상에 내려놓는 말들이다." 이승수 옮김, 200쪽, 1만3500원,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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