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일상의 피난처 '광주호'
입력 2019.03.15. 14:14 수정 2019.03.15. 18:13 댓글 0개광주호는 광주 북구의 끝자락 충효동과 담양 남면의 경계에 있다.
광주호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면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찾으면 되고, 광주호의 긴 물줄기를 따라 걷고 싶다면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담양 고서 방향으로 조성된 가사문학로를 따라 걸으면 된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무등산을 등진 호수의 전경을 보는 이의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무등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이 삼밭실에 모여 원효 계곡과 주검동 계곡을 따라 충효동에 이르러 호수를 이룬다. 즉, 무등산 상봉에서 9㎞의 원효 계곡을 따라 흐르던 물줄기가 광주호에 이르는 것이다.
광주 도심에서 차를 달려 20여분 정도면 산과 호수, 그리고 옛 문인들의 시심이 가득한 들판이 펼쳐진다.
어렵지 않게 일상을 벗어나 훌쩍 떠나올 수 있는 광주호 주변은 광주 사람들의 숨구멍이자 숨고 싶은 다락방이다. 팍팍한 현실에서,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넘어가 쉴 수 있는 참 좋은 피난처다.
토종붕어 대신 베스 같은 외래종이 점령을 한지 오래지만 광주호는 강태공들에게도 가장 부담없는 낚시터다. 그래서 광주호 인근의 음식점에 밥을 먹으로 왔다가도 차 트렁크에서 낚시도구를 꺼내는 일상 강태공들이 종종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광주와 담양의 들녘을 적시다
광주호는 담양호, 나주호, 장성호 등과 함께 영산강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영산강 지류인 고서천을 막아 1976년에 준공됐다. 당초에는 계획에 없던 댐이었으나 무등산 원효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많아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뒤늦게 건설됐다. 1,740만 톤의 물을 저장하는 광주호는 담양호, 나주호, 장성호보다 규모는 작지만 당시 농업용수 댐으로는 전국에서 8번째로 큰 인공호수였다. 한여름 불볕더위와 가뭄으로 들판이 쩍쩍 갈라지면 광주호는 댐의 빗장을 열어 광주 동북부의 들녘과 담양군 고서면, 창평면, 봉산면, 무정면 일대의 들판을 적시며 여문 곡식을 키워냈다.
특히, 광주댐은 전국 최초로 표면취수 시설을 갖춘 댐이다. 이는 따뜻한 물만을 내보내기 위해 수면에서 2m 이내의 표면수만 흘려보낼 수 있도록 특수 취수탑을 설치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댐에 저장된 물은 수면에서 1.8m씩 내려갈 때마다 수온이 1 씩 내려간다고 한다. 따라서 차가운 물을 흘려보내면 벼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냉해까지 입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댐에 자동 취수 시스템을 장착한 것이다. 이로써 광주호는 연간 5,300톤의 쌀 생산에 기여하는 명실공히 남도의 젖줄이 되고 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호수생태원!
광주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호수생태원'이다. 2003년 광주호 상류에 생태원이 생긴 이후, 이곳은 아름다운 호반공원으로 탈바꿈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들어선 순간 드넓은 공원과 푸른빛 일렁이는 광주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강바람에 절로 가슴이 탁 트인다. 호수를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면 천천히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운치를 더한다.
그 주위로 진달래와 개나리, 자산홍, 철쭉, 수국 등 계절별로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눈길을 끈다.
잔디공원을 지나 갈대가 우거진 늪지로 향하면 수상 데크가 설치돼 있어 호수 위를 걸을 수 있다. 이곳은 습지보전지역으로 갈대숲 사이에 각종 새들이 알을 부화하는 모습과 이제 막 껍질을 깨고 나와 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새들의 지저귐도 들을 수 있다.
물이 찰랑이는 호수로 향하면 물속에 뿌리를 내린 수십년 된 왕버들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버드나무가 우거진 호수 위에 서서 시원하게 펼쳐진 광주호를 바라보면 어느새 다른 세상에 온 듯, 온갖 시름과 번뇌를 잊게 된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어찌 번잡한 세상사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비가 온 뒤,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마치 동화 속 환상의 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청송의 주산지가 전국적인 명소로 아름답다고 하나 광주호 호수생태원도 그에 못지않다. 주산지는 호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임을 그리워하듯 강가에서만 바라봐야 하지만 이곳은 호수 위를 걸으며 그 풍경을 음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신선의 경지다.
이러다보니 호수생태공원은 주말이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예비 신랑 신부의 웨딩포토 장소로 인기다. 평일 또한 자연학습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많다.
특히, 초록에 지친 여름, 물안개라도 피어오르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려드는 출사지로도 인기다. 생태계의 다양한 동․식물을 품어 안고 있는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동․식물들에게는 안락한 서식처가, 사람들에게는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되고 있는 것이다.
가사문학과 충의열사를 만나는 길, 그 중심에 광주호가 있다.
광주호 주변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다. 광주호 상류 담양 방면으로는 가사문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정자들이 쭉 늘어서 있다.
광주호 건너에는 송강 정철이 가사문학을 꽃피운 식영정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고 상류에는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가 후학을 양성했던 곳이자 정철과의 첫 만남이 이뤄졌던 환벽당이 있다.
여기에서 100m쯤 올라가면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 장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지은 취가정이, 그리고 조선시대 정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소쇄원, 고려의 충신 전신민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거했던 독수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광주호 주변에 늘어서 있는 이 정자들은 가사문화권으로 불리며 옛 선비들의 풍류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반면, 광주호에서 광주 방면의 충효동으로 향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민족의 영웅, 김덕령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그의 동생 김덕보가 김덕령의 억울한 죽음 이후, 속세를 떠나 은거했던 풍암정이 있다.
또한 고경명, 김덕령 장군과 함께 광주의 3충신으로 불리는 전상의 장군을 모신 충민사도 자리하고 있다. 이쪽은 충의열사를 만날 수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광주호를 중심으로 담양 쪽으로는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이었던 정자들을, 광주 쪽으로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충의열사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한 마디로 가사문학길과 충의열사길, 그 중심에 광주호가 있는 것이다.
- 짱뚱어·칠게 시글시글··· 자연이 만든 '생태천국' 신안 증도 갯벌1004섬 신안 1섬1뮤지엄 ④증도갯벌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가뭇없이 아득했다. 이곳 날씨란 것이 원래 시시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왜바람에 당장이라도 후두둑, 굵은 빗방울을 흩뿌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희미한 바다의 실루엣을 더욱 검고 어둡게 만들었다.갯벌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듯, 훤하게 속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농게와 칠게는 불풍나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흙장난을 치고, 멋모르는 낙지 한 마리, 물골에서 허우적댔다. 짱뚱어란 놈은 자기를 보아달라는 듯, 갯벌 위에서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고 있었다.녀석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가 내리거나 성격 급한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놈들을 낚아야 할 것이었다. 서둘러 바구니를 등에 메고 갯벌로 걸음을 옮기니 미끄러지듯 펄 속으로 발이 박혀 들어갔다. 휘청-. 이제는 발이 박히는 것에 익숙할 때도 됐건만 매번 중심을 잃고 넘어질 지경이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갯벌에서 몇 걸음 옮겨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낚싯대를 폈다. 최근에 새로 장만한 '신식 낚싯대'를 보자 마음부터 오달졌다.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짱뚱어잡이를 위해 처음 사용한 낚싯대는 대나무였다. 벌교며 여수, 순천 등 외지 사람들이 와서 짱뚱어를 잡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령 없이 낚싯대를 던지다 보니 무겁기만 하고 낚싯줄이 원하는 만큼 나가지도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썰물 때마다 갯벌에 나와 낚싯대를 던졌지만 허탕을 치기 일쑤였고, 이튿날도 맨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등에 멘 바구니의 무게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그는 새로 구입한 낚싯대를 길게 편 다음 원하는 곳 멀리까지 바늘을 던졌다.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끄는 동안 손끝에 미세한 감각이 전해지자 재빨리 잡아챘다. 낚싯바늘에 짱뚱어의 몸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신안 증도 갯벌도립공원◆"갯벌은 삶의 터전… 복받았죠""새로 낚싯대를 사서 한번 해보니까 역시 좋아요. 하루하루 잡는 양이 달라지더라고요. 거기에 요령까지 더해지니 하루에 500마리 이상은 거뜬하게 잡을 수 있었지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짱뚱어에 관심조차 없었거든요. 그냥 갯벌에는 시글시글 흔하니까…."신안 증도 장고리의 이남창(85)씨는 짱뚱어 낚시의 산증인이다. 청년시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증도에서 짱뚱어를 낚아 가정을 이끌었다.짱뚱어가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끌 때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신안의 식당마다 '짱뚱어'를 메뉴로 내걸었고, 물건을 대달라는 업주가 줄을 이을 정도였다. 이 씨가 사는 장고리에서만 5~6명이 함께 낚싯대를 던졌을 뿐, 많은 주민이 짱뚱어잡이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자신이 잡은 짱뚱어를 찾는 발길이 줄기 시작한 것은 수입산 짱뚱어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평소 물건을 대달라고 사정하던 업주가 어느 순간 돌변해 "이제 당신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일이 있었다.하지만 이 씨는 개의치 않았다. 수입산 짱뚱어는 자신이 직접 잡은 것과 비교해 그 맛이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입산 짱뚱어탕을 팔던 가게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면서 폐업 위기까지 닥쳤고, 다시 이 씨를 찾아와 짱뚱어를 달라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이 씨는 업주의 행태가 괘씸했지만, "다시는 거래를 끊겠다는 말하지 않겠다"며 읍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짱뚱어를 공급했다.짱뚱어는 봄에 보이기 시작하지만 낚시는 여름과 가을에 주로 이뤄진다. 짱뚱어가 살이 쪄서 맛이 가장 뛰어난 시기이기도 하다.신안 증도 짱뚱어가 유명해지면서 이를 겨냥한 외지인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이웃 섬은 물론 무안이나 여수 등지에서도 짱뚱어를 잡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이 씨는 "이 지역 것은 곧 내 것인데 왜 너희가 와서 잡느냐"며 쫓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안타까운 점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짱뚱어의 수가 주는 데다 수요 역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씨는 신안 증도의 갯벌이 곧 삶의 터전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로서는 복받은 것이지요. 누구는 짱뚱어를 잡고, 누구는 낙지를 잡으며 힘든 시절 견디고 생계를 유지했으니까요. 농사를 함께 짓기도 했지만 수입은 비교가 안 됐어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좋은 갯벌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요."갯벌박물관을 찾으면 갯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어로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숭어에 농게·칠게·짱뚱어·갯강구까지…갯벌은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의 모래나 펄로 된 넓고 평평한 땅이 밀물 때는 바다가 됐다가 썰물 때 드러난 곳이다. 육상과 해양이라는 두 개의 생태계가 접하는 곳으로 두 세계의 완충작용뿐만 아니라 연안 생태계의 모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갯벌은 자연이 만든 천혜의 생명 보고(寶庫)다. 숭어와 농게, 칠게, 짱뚱어, 망둥어는 물론이고 총알고둥, 갯강구, 댕가리, 칠면초 등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여기에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희귀 조류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 된다.바지락과 낙지, 꽃게, 굴, 백합 등 수집 종에 이르는 갯벌 속 청정자원은 갯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미래 자원이다.신안 갯벌은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표 갯벌이다. 국내 전체 면적(2천482의㎢) 중 전남이 42.5%를 보유했는데, 신안에서만 14%(3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신안 갯벌은 대형 저서동물(底棲動物·산호나 성게, 조개, 새우 등 호수나 강, 바다의 바닥에 깔린 바위나 모래에 사는 동물)이 100종 이상 서식하는 곳으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5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어 2010년 1월 국토해양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됐고, 2011년 9월에는 우리나라에서 17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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