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석 달 열흘쯤 뱃속 비우고 '광양오일장' 오세요

입력 2019.02.21. 09:51 수정 2019.02.23. 05:40 댓글 0개
장터의 삶, 장터의 맛 '광양오일장'
먹거리가 전통시장을 찾는 첫번째 이유가 된다면 광양오일장이 해답이 될수있다.

전통시장은 살거리와 볼거리, 먹거리가 3대 축이다. 세 가지 요건 가운데 단 하나를 충족하기 위해 오일장을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누군가는 물건을 사러가고, 누군가는 구경삼아 가고, 누군가는 먹거리 때문에 간다.

먹거리가 우선이라면 광양오일시장에 갈 일이다. 광양오일장은 그만큼 먹거리가 풍부하다. 가능하다면 뱃속을 비우고 가도 괜찮다. 석 달 열흘쯤 비우고 가더라도 뱃속은 더없이 좁고, 먹거리는 더없이 많다. 

맛들이 넘쳐서 고민스러운 장터가 광양오일장이다. 전국을 평정한 광양불고기를 먹자니 광양 재첩국이 눈에 밟히고, '뽕구전집'의 모듬전을 먹자니 복령을 넣어 끓인 '안동댁 칼국수'가 아른 거린다. 

'만두 먹고, 찐빵 먹고'가게에서 하나씩 맛 본 새우만두,고기만두, 찐빵으로 배는 벌써 찼는데 건너편 생선장수가 방금 뜬 숭어회. 서대회는 또 어쩌란 말이냐. 

어묵노점의 젊은 사장은 익숙한 솜씨로 어묵을 반죽한 뒤 꼬챙이에 말아 튀겨내고, 잡내 없기로 소문난 족발집 앞에는 가던 발길이 멈췄다. 

콩나물국밥. 새끼보국밥. 순대국밥. 내장국밥 등 국밥집의 국밥은 종류가 많고, 명태 머리전·명태 통살전·홍어전·굴전·해물전·감자전·치즈감자전·고추전·새우전·버섯전. 깻잎전 등 전집의 메뉴는 읽어가는 중에 앞단을 잊어버릴 정도다.

어른들은 국밥집에 모여 '뼈를 이틀 동안 고아 우려낸다'는 곰탕보다 진한 국물 맛에 빠져 들고, 아이들은 튀김집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엄마 손을 잡아 당겼다.

닭 강정·새우강정·가자미전·명태 배내기전·추어탕·잔치국수…

◆음식도 꽃처럼 눈에 담을 수 있다면…

세밑의 겨울 장터에서 먹거리는 봄날의 꽃처럼 다투어 피어났다. 산하를 물들인 꽃이야 눈에 담을 수 있지만 눈에 담을 수 없는 장터의 먹거리는 아쉬움이 되고, 미련으로 남았다.

광양오일장이 이처럼 일품 먹거리가 풍부한 것은 저절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시장의 경쟁력을 갖추고자 하는 의도적 육성이다. 

상인회 김제원 회장(51)은 "맛으로 승부하는 음식점을 내세워 시장의 특화를 꾀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빈 점포가 생길 경우 업종을 가리지 않고 제비뽑기로 업체를 선정했으나 이제는 우선적으로 음식점이 입점토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회에서는 입점 업체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토록하여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심사위원회를 구성, 메뉴와 음식의 특성 등을 평가하여 시장의 식구로 맞아들인다. 

중복된 음식점이 많지 않고 다양한 메뉴의 먹거리로 특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결과가 이뤄낸 성과다. 현재 30여 점포가 식당이나 먹거리로 성업 중이다.

어디 먹거리뿐이겠는가. 광양오일장이 '전남 동부권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규모와 다양한 취급품목만은 아니다. 현대화된 시설에 걸맞게 체계적 시장운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장터 아케이드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파랑·노랑·초록색으로 구분돼 있다. 파랑색 기둥의 구역에서는 생선의 생물을 팔고, 노랑색 구역에서는 반건조생선을 판다. 초록색 기둥은 야채동이다. 기둥의 색깔만 보아도 무엇을 판매하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상인회에서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지역의 특산품을 다른 지역의 전통시장과 상호 판매하는 '윈-윈'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광양의 특산품 가운데 하나인 매실을 서울 목동시장이나 영등포 시장, 또는 부산의 부전시장 상인회와 연계하여 판매하고, 대신 그 지역의 특산품을 광양오일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다.

'광양5일장'이라는 홈페이지 구축과 '광양5일시장마켓'이라는 온라인 쇼핑몰도 운영하여 시장 상인들에게 새로운 판로를 제공하고 있다. 

"팔도에서 전라도가 가장 살기 좋고, 전라도에서 광양이 으뜸이다"라는 암행어사 박문수의 얘기는 광양오일장 상인들에게 여전히 현재형이다.

전남 동부권의 대표적 전통 시장인 광양시장 '크다 . 많다. 깔끔하다'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있다.

◆60년이 넘은 뻥튀기 가게 

인근 여수와 순천은 물론 하동 주민들도 기꺼이 섬진강을 넘으면서 광양오일장에는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여 화음을 이룬다.

'호루루~'하며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곧이어 '뻥~' 소리가 뒤를 이었다. 광양오일장의 명물인 뻥튀기 가게가 고객을 부르는 소리다.

60년 전통의 뻥튀기 가게다. 배금선 할머니가 남편과 함께 뻥튀기 장사를 하다 이제는 아들 전부환씨가 아내와 함께 어머니 뒤를 잇고 있다. 할머니는 열여섯에 시집을 온 뒤 열아홉 살 되던 해부터 남편을 따라 뻥튀기 기계를 돌렸다. 남편이 할머니 나이 서른일곱에 1남5녀의 자녀를 남겨두고 세상을 등지자 할머니 혼자서 뻥튀기 기계를 돌려야 했고, 이제는 아들과 두 딸들이 각기 독립하여 뻥튀기 장사를 하는 가업이 됐다.

전씨의 뻥튀기 가게는 어머니 때부터 이어온 단골손님이 많다. 튀겨내는 종류에 따라 불 조절과 시간을 적절히 맞추는 할머니의 비결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고, 그 비결이 아들에게 이어진 탓이다.

하동에서 서성애(46)씨가 땅콩과 서리태 두 되씩을 갖고 전 씨의 뻥튀기 가게를 찾았다. 10년째 단골이라는 서씨는 "견과류를 좋아해서 1년 내내 집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나는 여기만 온다"고 했다. 서씨가 입증하려는 듯이 먼저 온 아주머니의 튀겨놓은 서리태를 한 주먹을 내게 건넸다. 

◆대장간의 불은 언제까지 

뻥튀기 가게 옆에는 초가지붕을 얹은 대장간이 있다. 영화 세트장처럼 보이는 대장간은 광양오일장 입구에 있어 시장의 대문 역할을 겸한다. 광양시에서 시장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마스코트'로 만들었다. 하지만 초가는 볏집이 아니라 기와를 만드는 재질이다. 

올해로 24년째 대장장이를 하고 있는 박경종씨의 터전이다. 박 씨 역시 옆집 뻥튀기 가게 전씨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전씨의 뻥튀기 가게와 달리 대장간은 박씨 세대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뻥튀기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수요가 이어지고 있으나, 대장간은 모든 연장이 자동 생산되는데다 고쳐 쓰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탓이다.

박 씨는 "학교에서 집에 오면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잡았던 쇠망치였는데 그게 평생의 업이 될 줄을 몰랐다"고 했다. 

◆ 손이 시려 곁불을 쬐는 것은 아니다 

 열 사나흘 뒤면 여든이 된다는 도순심 할머니가 배추며 무, 파 몇 단을 갖고 시장에 나왔다. 계란 한 판도 함께 좌판에 깔았으나 발길들은 무심하다.

전기밥솥을 이용하여 구운 달걀 만들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내 생각이 났다. "할머니, 달걀이 왜 이리 작아요?" "으응, 그거? 원래 그래. 청계알이야. 크기는 작아도 다른 달걀하고 비교도 안돼. 싸게 줄테니 사가요" 

이럴 때 도시 촌놈이 '양계장의 달걀이 아니냐'는 말을 대신하여 의례 던지는 질문이 있다. "할머니가 직접 닭을 키우세요?" "옥룡에 농장이 있어. 무지 맛있어"

30개들이 한 판에 2만원, 조금 비싼 듯 했지만 청계란으로 만든 구운 달걀의 맛이 궁금해졌다.

장보기를 마치고 장을 나서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이 네모진 깡통에 불을 피우고 있었다. 좌판에는 한 때 유명했던 간장 몇 병이 놓여 있었으나 할아버지는 정작 간장 파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곁에 쪼그려 앉았다. 손이 시리기는 했지만 반드시 그런 이유만은 아니었다. 곁불 쬐던 군대시절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참, 춥기도 했지…

얼어붙은 겨울 산의 기억을 소환하려는데 할아버지가 자신의 70 평생 삶을 끄집어 내며 나의 추억을 밀쳐냈다. 

할아버지는 "한 때는 광양에서 그랜저 승용차를 제일 먼저 몬 사람이다"고 서두를 꺼냈다. 깡통의 모닥불이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처럼 활활 타 올랐다. 불이 식으며 할아버지의 영광도 사기꾼에 속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할아버지의 불은 다시는 타 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삶 중에서 오늘이 최고 좋은 날입니다" 그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광양오일시장 입구

광양오일장

정식 이름은 해누리 광양5일시장이다. 지명인 광(光)과 양(陽)에서 차용했다. 매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1964년 오일장의 형태를 갖춘 이래 광양역을 거쳐 2016년 광양읍 버스터미널 맞은편으로 이전, 시설현대화 사업을 마치고 정식 개장했다. 최근 개장한 시장답게 '광양5일시장'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구축하고 있다.

순천 아랫장과 함께 전남 동부권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상인회 회원 140여명과 노점 250여명 등 상인 400여명의 삶의 터전이다.

동절기(1.2.3월)를 제외한 매주 토요일에는 토요장터가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하는데 온갖 먹거리로 유명하다. 

지역의 특산물로는 매실이 전국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재첩도 이 못지않다. 밤과 감도 한 몫을 하고, 한우 역시 명품에 속한다. 모두 섬진강과 남해, 백운산이 빚어낸 작품들이다.

한 때 광양 제일의 특산품이었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특산품도 있다. 광양은 김여익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을 양식한 곳이다. 김이란 이름도 김여익에서 따왔다고 한다. 전국 최대의 김 생산지였으나 광양제철소가 들어서고 김 생산의 중심이던 태인도가 육지화 되면서 이제는 그저 옛 영화일 뿐이다. 그 자리를 매실이 대신하고 있다.

불을 잘 다루던 어머니 덕에 전씨의 뻥튀기 가게는 단골 손님들로 성업이다.
광양장의 마스코트인 대장간. 초가지붕을 얹어 이채롭다.
불쬐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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