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돌담길 따라 슬렁슬렁···걷기만 해도 '쉼'이

입력 2019.02.11. 14:16 수정 2019.02.12. 15:56 댓글 0개
담양 창평 월봉산 상월정과 고광순 기념관



▲ 쌀엿은 ‘슬로시티’ 창평을 대표하는 슬로푸드다.

담양 창평에 갔다.

돌담길을 따라 슬렁슬렁 걷다가 쌀엿을 만드는 집에 들렀다. 모처럼 쌀엿 만드는 모습을 보고, 엿도 얻어먹었다.

엿을 먹고 나오면서, 문득 ‘엿치기’의 추억이 떠올랐다. 엿치기는 기다란 엿을 서로 부딪쳐서, 그 안에 난 구멍의 크기를 비교하는 놀이다.

구멍이 큰 엿을 가진 사람이 이겼다. 엿의 생명은 구멍이란 말이 나왔다. 사실 엿은 속에 구멍이 있어야 보기 좋고, 바삭바삭 맛도 좋다. 입안에도 잘 달라붙지 않는다.​

엿은 식혜로 만든다. 먼저 겉보리로 엿기름을 만들고, 햅쌀로 고두밥을 지어 섞어서 식혜 밥을 만든다. 식혜 밥을 숙성시켜 즙을 짜내고, 이것을 가마솥에 달이면 조청이 된다.

조청을 밤새 달이면, 짙은 주황색의 갱엿이 된다. 이것을 두 사람이 맞잡고 밀고 당기며 늘여서 하얀 엿을 만든다.

담양 창평은 쌀엿만 유명한 게 아니다. 마을의 돌담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오래된 기와집과 조화를 이뤄 전통마을의 가치를 높여주는 돌담이다. 고택도 멋스럽다. 전형적인 일자형의 고재선가옥, 전통 사대부의 집인 고재환가옥, 솟을대문이 압권인 고정주가옥도 다 아름답다.

개방되지 않아 들어가 볼 수 없는 게 흠이다. 한때 파란 눈의 독일인 베르너 삿세와 빈도림이 살았던 고재욱가옥도 방치돼 있다.

▲쌀엿을 만들고 있는 창평마을 주민들.

인재 키우던 산속의 학당 상월정

삼지내마을에서 발걸음을 용운리와 유천리로 돌린다. 목적지는 상월정과 고광순 기념관이다. 상월정은 산속의 공부방이자 고시원이다. 용운마을에서 2㎞ 가량 떨어져 있다. 월봉산 자락 암자 터에 1457년 김자수가 지은 정자다.

당시 규장각 직각(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있던 춘강 고정주가 인재를 키우려고 여기에 학당을 개설했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1905년 을사조약 직후였다. 영어를 가르쳤다고 ‘영학숙’, 이듬해에 창평을 흥하고 의롭게 할 곳이라고 ‘창흥의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금 창평초등학교의 전신이다.

당시 영어와 국사, 한문, 산술 등을 가르친, 시대를 앞선 공부방이다. 1906년 개교한 광주 서석초등학교의 전신인 광주보통학교와 시기를 같이한다. 중학 교과과정에서 처음 영어를 가르친 숭일학교가 문을 연 게 1907년이다. 여기보다도 먼저 영어를 가르쳤다.

영학숙에서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 인촌 김성수, 심강 고재욱이 공부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기, 국회의원을 지낸 고재청·고재일도 여기서 책을 읽었다. 창평을 ‘인물의 고장’이라 하는데, 상월정이 그 산실이었다.

상월정으로 가는 길도 잘 닦여 있다. 구두를 신고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숲길이 좋다. 험하지도 않다. 당시 산속으로 공부하러 오가던 학동들의 마음가짐으로 찾아가면 더 흥미롭다.

▲상월정

불원복(不遠復)기의 의병장 고광순

고광순 기념관은 유천리에 있다. 녹천 고광순은 광주 포충사에 모셔진 제봉 고경명의 12대 후손이다.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금산전투에 참가했다가 차남 고인후와 함께 순절했다.

창평에 살고 있던 장인 이경이 고인후의 시신을 거둬 묻어줬다. 고인후의 네 아들(외손자)도 데려다 키웠다. 지금 창평에 살고 있는 장흥고씨의 시조다. 임진왜란 때부터 한말까지, 제봉 고경명 집안에서 9명이 의병활동을 하다가 순직했다. 남다른 충성심과 의협심을 지닌 가문이다.

고광순은 장흥고씨 의열공파 출신의 의병장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또 을사조약 이후에 의병으로 나섰다. 장기전을 준비하려고 지리산 피아골로 옮겨 의병활동을 하다가 순절했다. 일본군이 고광순 의병장의 집도 불태워버렸다.

고광순기념관에서는 고광순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다. 태극기에 혈서로 불원복(不遠復), 머지않아 광복이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불원복기를 모사본으로 만난다. 원본은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기념관에서 가까운 곳에 호남의병 기념탑도 있다.

▲ 불원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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