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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베이스볼] 첩보영화 같은 FA계약 작전

입력 2018.11.21. 08:45 댓글 0개
마해영-KIA 이범호-NC 박석민(왼쪽부터).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프리에이전트(FA) 영입 전쟁이 시작됐다. 그라운드에서 펼쳐지는 경기는 TV를 통해 생생히 중계되고 수 만 관중이 지켜본다. 그러나 FA계약은 다르다. 은밀한 협상이 이어지고 수 십 억원의 거금이 오간다. 선수는 선수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 걸린 계약이고 구단 역시 큰 출혈을 감수한 선택인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첩보영화 같은 기상천외한 작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은퇴 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수근은 지금도 2003년 겨울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03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획득한 정수근에게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관심을 보였다. 원 소속팀 두산 베어스와 우선협상이 종료되는 날 늦은 오후 정수근은 서울에서 출발해 경부고속도를 달렸다. 동시에 부산에서도 롯데 프런트 직원들이 출발했다.

정수근은 훗날 “삼성에서 더 많은 액수를 제안했지만 부산에서 꼭 야구를 하고 싶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할 때였다. 경부고속도로 중간 휴게소에서 만나 사인을 했다”고 추억했다. 정수근은 당시 롯데와 6년 40억 6000만원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11월 23일 삼성 마해영은 우선협상기간 마지막 날이 지난 직후인 오후 12시 현관문 초인종을 누른 KIA 타이거즈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김경훈 스카우트 팀장은 오후 11시50분부터 현관문 앞에 서서 12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정성을 보였다.

2011년 1월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범호는 한강 둔치 주차장에서 KIA 담당자들과 만났다. 어두운 밤 차에 올라타 최종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범호가 소프트뱅크를 떠날 계획도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 계약을 성사시킨 김조호 전 KIA 단장은 “해외 팀과 계약을 해지해 사실상 FA가 된 케이스로 보안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호텔 커피숍에서도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한강 둔치였다”고 기억했다.

2015년 NC 다이노스 운영팀 담당자들은 대구광역시 인근 한 골프장을 향해 차를 달렸다. 박석민이 삼성과 협상이 결렬됐다는 정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선수들까지 동원해 박석민의 동선을 알아냈고 골프장에서 계약 합의를 이끌어냈다.

올해 FA계약은 에이전트제도의 도입으로 과거와는 다른 풍경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술자리에서 사인을 하기도 했고 호텔방에서 1박2일 동안 마라톤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해당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고참 선수가 동원된 적도 많다. 우선협상기간이 존재했기 때문에 오후12시 현관문을 두드리던 풍경도 많았다. 이제는 각종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가 가득한 서류더미 앞에서 대리인과 1차 협상이 진행된다. 그러나 여전히 선수의 마음과 동선은 구단에게 중요한 정보다. 얼마나 빨리 만나 그 마음을 얻느냐가 계약서에 사인을 받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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