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희의 광주비엔날레 통신] 7번째 초대

입력 2008.09.01. 00:00 댓글 0개

제7회 광주비엔날레 기간 동안 현장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광주비엔날레’ 통신을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싣습니다. 비엔날레에서 시니어도슨트(전시해설자)로 활약하는 윤은희(광주여대 외래교수)씨가 생생한 소식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며칠 뒤면 광주비엔날레가 열린다.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던 1회 광주비엔날레는 164만이라는 놀라운(사실은 비정상적인) 관람객 동원으로 국내외 미술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당시 챙 넓은 모자를 쓴 채 전시관 안내를 담당했던 도우미의 모습은 외국 기자들에 의해 해외 미술잡지에 희화화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렀던 비엔날레였다. 회를 거듭하는 사이 몇 번의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이제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 제일의 비엔날레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동안 관람객들의 안목도 대단히 높아졌음을 느낀다. 서울의 어느 미술대학 교수로부터 “광주지역 학생들의 미술 대하는 태도가 타 지역 학생에 비해 매우 신선하며 창의적이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비엔날레와 무관치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광주비엔날레 작품들 대부분은 일반 관람객이 대하기에 그리 쉽지 않다. 비엔날레의 작품들이 단순히 미술을 그려내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와 문화전반에 대한 담론을 제안하거나 대단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장 내에 도식적인 명제표나 관람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기술적인 용어·난해한 표현의 설명판도 한몫한다.
관람자로서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난해한 작품을 소화해야 한다는데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작품들의 경우 크게 당혹해하거나 나아가 전시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의미는 정답도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관람자가 처한 상황이나, 성향, 가치관 등에 의해 의미는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긍정적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재생산되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왜곡되고 폄하되기도 한다.
눈으로 쇼핑하듯 작품 앞을 스쳐지나면서 그저 어렵다고 탄식하거나 비난할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며 생각의 지평을 넓혀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그 작품이 단지 쓰레기에 다름 아니라고 단정 짓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술작품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모르는 만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번 비엔날레 작품이 혹 어렵다면, 그래서 의미가 읽히지 않는다면, 이해를 돕기 위해 대기중인 ‘도슨트’라는 커뮤니케이터들의 도움을 요청해 볼 필요도 있다.
부디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가 ‘꽃’이 되어 줄 멋진 작품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그 작품들을 통해 그 동안 보지 못하던 소외된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눈을 맞추고, 함께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광주비엔날레 시니어도슨트·광주여대 외래교수>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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