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이판사판 선거

입력 2018.09.27. 17:12 수정 2018.09.27. 17:16 댓글 0개

지난 6월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추가 시간 3분을 남기고 난데 없이 독일 골기퍼가 골문을 비우고 대한민국 진영으로 달려 들어 골을 노렸다. 골문을 비워놓고 나왔으니 잘되면 좋지만 안 되면 나락으로 빠져들게 뻔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골키퍼까지 나서서 대한민국의 골문을 노렸지만 볼을 넘겨받은 손흥민 선수의 질주와 재치있는 킥으로 전차군단 독일팀은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운에 맡기고 죽기 살기식으로 달려드는 상황을 흔히 ‘이판 사판’이라고 한다. 독일 대표팀이 그랬듯 이판사판은 원래 피할 수 없는 최후의 갈등 상황을 가리키는 불교식 언어다.

고려는 승려들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 불교의 나라였다. 전통의 불교 국가는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교 국가로 바뀌었다. 당연히 절 사정이 어려워지고 스님들의 처지도 곤곤해졌다. 그럼에도 불교의 명맥은 이어 졌다.

명맥만 이어가는 절에서도 살림은 계속됐다. 경전을 읽고 참선하며 염불을 외는 수행 스님 곁에서 누군가는 절 살림을 해야 했다. 불경을 외고 참선하는 수행 스님을 ‘이판(理判) 승(僧)’, 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스님은 ‘사판(事判) 승(僧)’이라 일컬었다. 염불만 왼다고 해서 밥이 나오지는 않았다. 사판승은 농사짓고, 밥하고, 빨래까지 하는 등 온갖 궂은 일을 했다. 가끔은 성질 급한 사판 스님이 팔자 늘어진 이판 스님에게 대들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이판’ ‘사판’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판스님이 달려 들었을 때 싸움이 어떻게 됐는지 결과는 잘 모른다. “에라이 모르겠다! 이놈의 절. 칵 엎어 버리겠다”며 죽기 살기로 대들었을 사판 스님의 결연함에 참선 수행으로 무장한 이판 스님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 선거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선거전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원장 선거 후보자 4명 중 3명이 선거를 보이콧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원행 스님을 제외한 3명의 스님이 후보직을 사퇴했다. 후보들의 사퇴 이유는 선거 제도의 공정성 시비와 관련이 있다. 홀로 남은 원행 스님이 중앙 종회와 교구 본사 등에 지지세가 강해 당선이 유력시 되자 3명의 후보들이 직선제를 요구하며 사퇴해버린 것이다.

사퇴한 후보들은 그러면서 “박정희·전두환식 체육관 선거를 하려 한다”고 공격했다. 과거 ‘체육관 선거’는 사전에 박정희·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뽑기로 입을 맞추고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투표만하는 요식 행위였다. 한물간 체육관 선거가 불교 대표를 뽑는데 등장했으니 어리 둥절하다. 혼자 남은 원행 스님이 당선돼도 체육관 총무원장이라 할 판이니 영이 제대로 서려나 싶다.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이판 사판 싸움 그만 하고 민주적 선거에 힘을 모았으면 한다.

나윤수 컬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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