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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포럼] 한국의 정치, 독일의 정치-독일총리 이야기

입력 2018.09.14. 17:54 댓글 0개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김황식 전 총리가 14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라이온스빌딩에서 열린 안민포럼 조찬강연에서 '한국의 정치, 독일의 정치-독일총리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중이다. (사진제공=안민포럼)

【서울=뉴시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정책과 주장을 받아 들여 조화시킬 여지가 많습니다. 최저임금의 경우 지역과 업종에 따라 차등 적용한다든지 전체적인 속도조절을 해서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근로시간문제도 그렇습니다. 말로만 협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해 나감으로써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김황식 전 총리는 14일 안민정책포럼(이사장 백용호)이 주최한 조찬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의 정치, 독일의 정치-독일 총리 이야기’ 주제 발표를 통해 대화와 소통, 협치의 정치를 강조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강연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당위지만 인위적으로는 어렵다며 독일 통일의 역사적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총리는 국민들을 설득하고 기회를 포착했던 독일 헬무트 콜 총리와 같은 리더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특히 한국정치가 말로만 협치와 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것과는 달리 독일 정치는 분권과 협치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의 모든 정책을 지워버리고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과 달리 독일의 경우 총리가 바뀌어도 전임 정권의 정책이 계승되고 있는 것은 다당제 뿌리를 둔 연립정부가 이어지고 대화와 타협이 정치에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총리는 전후 8명에 불과하지만 실패한 총리가 한명도 없고 모든 총리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결코 단기적인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타협을 하되 국가를 위한 소신과 철학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난 대선때 모든 국민들이 공감을 했지만 여전히 분권과 견제를 위한 제도개혁이 미흡하다며 권력구조 분산과 균형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는 이날 김 전 총리가 발표한 내용을 독점 게재한다. 안민정책포럼은 고(故)박세일 교수를 중심으로 만든 지식인 네트워크로 1996년 창립됐으며 좌우를 아우르는 통합형 정책 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강연 요약본이다.

국가 발전의 기초는 정치이다. 한국 정치가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통합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소위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리는 권력집중, 거대 양당제도에 의한 대립과 갈등, 불합리한 선거제도, 과도한 이념이나 지역 갈등, 비민주적 정당 조직과 운영, 포퓰리즘과 국민들의 정치의식 등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인한 폐허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하여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며 EU를 이끄는 선진 모범국가 되었다 그 바탕은 정치체제와 정치인들의 리더십이다.

◇독일, 권력 분산·나눔의 정치…수상 권한도 제한적

독일 정치의 특징은 첫째, 권력독과점의 정치가 아닌 권력 분산·나눔의 정치, 입법, 사법, 행정으로 권력분립됨은 당연하고 입법부는 다시 상원과 하원으로, 행정부는 대통령, 총리, 장관으로, 사법부는 특수한 헌법재판소와 일반 법원으로 그 권한과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 또한 연방국가로서 연방과 16개의 각 주의 역할과 권한(연방, 외교 국방 통화 관세 항공 조세 일부 교육 문화)을 철저히 분배하고 있다. 나아가 주권의 일부는 EU(유럽연합)에 이양(법률, 상원동의, 23조)하는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정부 구성에 있어서도 단독정부가 아니라 대체로 연립정부가 구성된다. 다당제와 정당득표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의 결과이다.

연방 수상의 권한도 제한적이다. 기본법 제65조는 “연방수상은 연방정부의 기본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 이러한 정책방향에서 연방각료들은 자신의 업무를 독자적으로 자신의 책임 아래 수행한다. 연방 각료 사이에 의견대립이 있을 경우 연방정부가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둘째, 정책의 계승·진화의 정치를 특징으로 한다. 정권이나 정부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하루아침에 크게 변화하지 않고 전 정부의 정책이 계승·조정·발전되어 간다. 그 이유는 어떤 정책이든 국민 사이에 신중한 논의를 거쳐 수립되므로 일부 정파의 이해에 따라 쉽게 변화될 수 없으며 또 연립정부의 전통하에 1개 정당은 거의 집권당(연정파트너)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일 정치에 신데렐라 없어…검증된 정치인, 고위직 진출

셋째, 중후한 정치다. 독일 정치에 신델레라는 없다. 충분한 경험과 경륜을 갖고 검증된 정치가들이 수상 등 고위직에 진출한다. 역대 수상들은 각자 그 시대에 맞는 역할을 통해 업적을 남겼으며 누가 더 잘했느냐의 평가는 할 수 있을지언정 실패한 수상은 없다. 독일 정치에는 신데렐라는 없습니다. 또 국민들이나 당원들은 일단 선출된 지도자들에 대하여 신뢰를 보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기 재직을 허용하고 있어 정책의 장기적, 안정적 집행이 가능하다.

넷째, 사죄의 언동, 감동의 정치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후 독일의 과제는 나치 만행으로 인하여 생긴 국내외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유럽 인접 국가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내적으로는 국민을 계도하여 다시는 그와 같은 만행이 저지를 수 없는 토양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하여 독일의 정치가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감동적인 연설이나 행동을 반복하였다.

역대 총리들의 리더십 관련 주요 사례도 주목을 끈다. 1952년 봄 소련의 스탈린은 분단된 독일을 통일시켜 중립국으로 만들어 독일 땅에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시키자고 제안을 한다. 소련이 서독의 재무장과 서방측 군사동맹에의 가입을 견제하고 중립화된 독일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함이었다. 야당인 사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통일 독일을 열망한 나머지 상당한 호응을 보일 정도로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콘라트 아데나워 수상은 독일의 장래를 위하여 독일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서방 세계의 일원으로 남아야 하다는 신념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한편 소련에 대하여는 독일의 중립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명백히 했다. 또 필요하다면 유엔의 관리하에 자유로운 총선거를 실시하여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하자고 역제안하여 소련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는 비전과 신념으로 국민들을 설득하고 조국을 번영의 길로 이끌었다.

◇동방정책 아데나워 수상, 유대인 희생자 참배

1969년 중도좌파 사민당 대표로서 처음 집권한 빌리 브란트 수상은 동서간 냉전을 완화하고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동방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폴란드와의 관계 개선 및 국경선 획정 문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1939년 9월1일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고 폴란드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종전후 폴란드와 독일간의 국경선은 오데르나이세 강으로 정해졌다. 그 결과로 독일은 전쟁 전 독일 영토의 4분의 1을 빼앗겼다. 독일 국민들에게 그 땅은 언젠가 회복해야 할 땅, 특히 그곳에서 추방된 독일인에게는 돌아갈 고향 땅이었다.

그러나 브란트는 독일이 영토 회복을 고집하는한 독일의 통일, 유럽의 평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현재의 국경선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란트의 생각은 대다수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념을 갖고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하였다. 1970년 12월7일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하여 현재의 국경선을 존중할 것임을 밝히고 유대인 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참배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브란트 수상의 무릎 꿇기(Kniefall)다. 이 장면을 담은 사진은 온 세계로 전송되었다. 그해 타임지는 브란트 수상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다음해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브란트 수상의 무릎 꿇기와 이를 담은 사진은 반성하는 독일의 모습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고 동방정책에 대한 국내의 반대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방정책은 다음 우파정부에서도 계승 추진되어 마침내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이듬해 10월에는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슈뢰더 총리, 포괄적 노동개혁으로 독일 경쟁력 회복

1998년 집권한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2년 다시 집권하자 2003~2005년 `아젠다 2010`과 `하르츠 4`라는 포괄적 노동사회 개혁을 통해 독일 경쟁력 회복을 도모하였다. 당시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을 겪으며 높은 실업률과 저성장 등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고 있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슈뢰더 총리는 개혁에 나섰는데 그 골자는 노동시장 유연화(종업원 해고요건 완화), 실업급여 개편(지급기간 단축 및 금액 축소), 연금 수령연령 상향 조정(65세→67세), 세제개혁(부가세 인상,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등) 등이었다.

슈뢰더 총리는 이 개혁정책으로 사민당 지지자들이 대거 이탈할 것을 알면서도 국가의 장래를 위해 선거 패배의 불이익 위험을 감내하였다. 그는 선거에 패배하였지만 그 정책은 다음 정부에서도 계승되어 독일은 오늘날 `유럽의 성장 엔진`으로 변모하였다.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보여준 위와 같은 사례는 국민의 여론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여 국민을 설득하고 당당하게 이끌고 가는 모습이다. 국익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포퓰리즘에 매달리는 우리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yungh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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