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진영(陣營)논리의 망령

입력 2018.09.14. 16:27 수정 2018.09.14. 16:51 댓글 0개
김기태 아침시평 호남대 언론학과 교수 / 한국지역언론학회장

한국사회에서 빗나간 진영논리 만한 고질적인 병폐도 드물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 영역에서 진영논리는 모든 논리를 압도한다. 단지 같은 진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합리와 부조리 때로는 불법까지도 용인한다. 용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같은 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지지와 수용을 사실상 강요한다. 때로는 합리적인 절차나 차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정해진 결정에 따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요구나 주장의 근저에는 예외없이 진영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한번 특정 진영에 몸담으면 쉽게 빠져나오거나 진영논리에 반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대부분 자발적이지만 간혹 배반이나 배신이란 이름으로 진영으로부터 받을지도 모르는 비난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의 이른바 진보-보수 양 진영간 갈등 문제는 망국적 수준에 이른다. 어떤 논제라도 종국에는 진영 논리에 의해 논의 자체가 진영간 갈등과 대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진영논리가 반복되고 상시화되면서 정치인은 물론 전 국민이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시 진보-보수라는 진영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분열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일종의 진영논리에 의해 표출되는 대결과 갈등의 내재화라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물론 진영논리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영논리를 중심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와 규범을 사수하기 위해 강고한 조직력과 결속력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의와 자유 그리고 평등과 민주와 같은 숭고한 가치가 유린 당할 때 이를 지키기 위해 같은 뜻을 가진 동지들과 함께 어깨를 걸어야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진영논리는 이런 순기능을 하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맹목적인 집단이기주의나 조직중심주의로 무장한 괴물로 변질되었다는데 있다. 본시 진영(陣營)이란 군대가 진을 치고 주둔하고 있는 일정한 구역을 일컫는다. 아울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세력의 어느 한 쪽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중립적 언어가 진영논리라는 옷으로 갈아입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로 둔갑한다. 진영논리의 사전적 의미는 ‘그 대상이 어떤 진영에 속해 있는가’를 다른것보다 우선시하여 결론을 내리는 논리를 의미한다. 즉, 자신의 진영에 속한 이념에 따라 타인의 해석이나 생각 성향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폄하하는 행동‘을 말한다. 사람은 판단하는 주체와 ‘같은 진영’에 속하면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기 쉬운 반면, ‘다른 진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리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진영논리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이 경우 진영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이중잣대, 인지부조화, 선민사상, 각종 논리적 오류 등을 동원하여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진영에 속해 있지 않은 제3자가 진영에 속한 사람에 비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 결은 조금 다르지만 진영논리의 병폐는 지역 현안이나 이슈를 논하는데도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이념적 진영으로 나뉘기도 하지만 지역마다 지니고 있는 갖가지 관계 양식에서 비롯되는 진영논리가 작동한다. 오랫동안 유지해 온 다양한 인연이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직이나 집단이 단단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일정한 진영을 구축하고 이는 다시 진영논리에 의해 더욱 강고해진다. 이렇게 형성된 진영과 진영논리는 지역사회의 안건을 의제화하고 정책화하는 과정에서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간혹 지역 현안이나 난제들을 처리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 해결에 걸림돌이 되거나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일단 진영논리에 갇히면 자신들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귀만 닫는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걸어 잠그기 때문에 도무지 대화가 불가능하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주장을 잘 듣고 자신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고 서로 양보하거나 수용할 부분은 없는지를 살펴보는 지혜와 여유를 찾기 힘들다. 진영이라는 군사적 용어가 일컫듯 상대를 모두 적으로 여기는 오로지 필승을 향한 전투 태세로 무장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안들은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과 이견을 좁히고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하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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