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세월 단상

입력 2018.09.12. 15:13 수정 2018.09.12. 15:23 댓글 0개
도철의 약수터 무등일보 지역사회부 부장

24절기 중 백로(8일)를 지나니 아침과 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다. 찬물에 몸을 씻고 얼음물을 들이켜도 흐르는 땀이 식지 않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이제는 한 밤엔 창문을 꼭 닫아야 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추분(23일)과 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10월8일)를 지나면 계절은 다시 바뀌어 겨울에 다가 설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또 흘러 버렸고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게 세월을 또 보내고 말았다.

사실 젊은 시절엔 시간의 흐름이나 세월 등에는 관심조차 없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공감이 돼 간다. 50대는 50km, 60대는 60km 등의 속도로 세월이 흐른다는 농담 같은 경험담 말이다.

반대의 시간도 있다. 남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세월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떠오르는 곳이 군대가 아닐까 싶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잊혀 지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먼저 논산훈련소의 격세지감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던 때가 바로 어제였는데 오늘은 훈련복에 총을 쥐고 말 그대로 땅을 벅벅(?) 기고 있으니 훈련장 옆을 지나는 고속버스가 왜 그렇게 야속하게만 보이던지 차라리 눈에 띄지 않았으면 했다.

세월의 백미는 첫 번째 맞은 행군이었다. 불행히도 군 생활 중 다쳐 병원에 4개월 후송을 다녀온 뒤 보름 만에 200km 행군을 맞았다.평소 훈련을 통해 체력을 키워서 참여해도 힘이 드는데 체력이 되지 않은 채, 그러나 남은 군 생활을 생각하면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상황이었다. 양쪽 발 40여 군데 물집에 피까지 흘리며 이틀 밤을 새우며 꼬박 걸었던 56시간. 얼마나 시간이 더디게 흐르던지 마치 2년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의 아픔은 그러나 뒷날의 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남은 군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힘든 일들을 비교적 쉽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보람된 것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생각해 보면 세월 흐름 속에도 주인공은 결국 내가 아닌가 싶다. 지난 여름이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었지만 그 시간 우리는 그리고 나는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언제나처럼 아쉬움도 남고 후회도 하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했다면 다행이다.

사실 세월은 1년을 뜻하는 세(歲)와 한 달을 뜻하는 월(月)이 만난 합성어로 시간이나 하루(日)보다 큰 단위를 말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변형된 뜻이 일상에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지역은 지난 세월 속에 많은 역할들을 해냈다. 멀리는 동학에서 가깝게는 5·18민주화운동이 그렇고, 최근에는 세월호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세월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을 텐데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계절의 변화 속에 횡설수설 하는 것도 세월 때문이 아닌지 걱정이다. 도철 지역사회부 부장 douls183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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