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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 감춘 환자-그대로 믿은 당국…메르스 조기차단 기회 놓쳐

입력 2018.09.10. 13:58 수정 2018.09.10. 14:25 댓글 0개
환자, 입국 전부터 메르스 알고 있었을 가능성 커
환자, 부인에게 "마스크 쓰고 마중 나오라"고 전화
삼성서울병원 이동시 부인 차 아닌 리무진택시 이용
박원순 "환자, 진실 충분히 이야기 하지 않을 가능성"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격리병실에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지난 8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쿠웨이트 여행을 다녀온 A씨(61)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아 서울대병원 국가지정격리병상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2018.09.09.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자 A(61)씨가 입국 전 부인에게 '마스크를 끼고 마중 나오라'고 말하는 등 메르스 감염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도 검역당국에 이를 알리지 않고 공항을 통과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 검역관도 A씨의 말만 믿고 그대로 통과시켜 메르스 조기 차단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역학조사관은 9일 밤 시청사에서 열린 메르스 대응 관련 대책회의에서 "제가 조사하면서 들었던 부분 추가로 말하면 환자분(A씨)은 '호흡기 질환이나 발열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사실 A씨는)아내분에게 공항으로 마중 나올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조사관은 또 "아내분이 자가용으로 오셨는데 막상 병원으로 이동할 때는 아내분하고 따로 리무진택시를 타고 이동하셨다"고 설명했다.

쿠웨이트 현지에서 몸 상태가 악화된 A씨가 2015년 사태 이후 메르스 문제에 예민한 삼성서울병원에 있는 의사 친구를 지목해 상담을 했다는 점 역시 주목된다. A씨가 애초에 메르스 감염 여부를 신경 썼을 수 있다는 것이다.

A씨의 몸 상태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있다.

조사관은 "그분(A씨)이 8월28일에 소화기 증상과 오한 증상이 있었다고 했고 의료기관을 2번 갔었다. 9월4일 입국하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연기를 하고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았다"며 "(귀국)당일 날도 몸이 안 좋아서 그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공항에 갔다. 아마도 열이 측정 안됐던 것이 수액이나 약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현직 의사들에 따르면 수액 자체로는 열이 떨어지지 않지만, 그 안에 해열제를 함께 넣으면 발열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A씨가 맞은 수액 속에 해열제가 함께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A씨에 관한 면밀한 역학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시장은 "우선 본인이 쿠웨이트에서 병원을 찾아갔고 그리고 본인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휠체어를 요청해서 휠체어로 나왔다"며 "이 분이 비행기 안에서도 충분히 열과 체온이 높았고 호흡기 증상과 기침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분이 검역대를 통과할 때는 체온이 평상적이었느냐 그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며 "그러려면 쿠웨이트 병원에서 들어설 때 어떤 처방을 받았고 어떤 약을 조제 받았고 비행기에서 어떻게 복용했는지 이런 게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또 "환자 본인은 화장실을 2번 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분이 탄 아랍에미리트 비행기가 총 10시간 타고 왔는데 그 시간에 어떻게 2번만 갔겠냐"며 "더군다나 본인 스스로 설사가 있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비행기 안에서 설사도 잦았고 화장실도 여러번 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진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역학조사가 좀 더 치밀해져야 한다. 쿠웨이트에서부터 서울대병원에 이르기까지 전 시간대를 우리가 갖고 있는 합리적 의문을 다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디테일하게 해소해주는 조사가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공항 검역관과 출입국 심사관 등이 A씨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메르스 감염 여부를 점검하는 과정을 게을리 한 것도 그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휠체어를 요구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검역관은 A씨의 체온과 문진만 하고 무사 통과시켰다.

이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기자회견 등을 통해 "A씨가 설사 이외의 증상을 알리지 않았고 지금은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보냈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만을 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A씨가 검역을 통과할 당시는 이미 지난 8월 부산과 대전 등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한 시기라는 점에서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또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메르스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명백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A씨를 보고도 쿠웨이트 현지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는 등 좀 더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A씨가 2015년 참사를 겪어 메르스 대처가 잘 되는 서울삼성병원이 아닌 다른 일반 병원으로 갔다면 2015년 못지않은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질본 관계자 역시 기자들과 전화설명회에서 "앞으로는 여행객의 불편과 민원을 감수하더라도 중동지역에서 돌아오는 모든 여행객의 설사와 구토 증상까지 전부 걸러내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한 것도 현 메르스 검역 체계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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