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달거리, 그 아름다운 발걸음 따라

입력 2018.08.27. 17:32 수정 2018.08.27. 17:38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달거리. 참 익숙한 듯도 낯선 듯도 하다.

중장년층은 너무 오랜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젊은 세대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일 듯하다.

시대가 변하면 원래 단어가 지닌 문화적 메시지도 뉘앙스도 달라지는데 익숙한 듯 낯선 달거리는 우리 문화사에서 놀랍도록 풍요롭다.

문학, 음악, 의학 전반에 두루 쓰이던 말이다. 문학에서는 한 해 열두 달 순서에 따라 노래한 시가의 형식을 말한다. 음악에서는 농악 십이채 가운데 1년 열두 달의 명절을 노래하는 가락, 달마다 돌아오는 명절에 가신임과의 옛일을 생각하며 읊는 노래라고 한다. 또 의학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앓는 전염성 열병과 성숙한 여성이 한 달에 한번 씩 갖게되는 생리현상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달거리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지 오래로 일상에서 사라지는 중이다.

잊혀진, 전설이 된 우리 말을 가수 김원중이 살려내고 있다.

‘김원중의 달거리 공연’이 장장 17년의 시간을 달려 이달로 100회를 맞았다.

한 작품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뛰어넘어 20년을 바라고 있다. 서울도 아닌 광주에서.

‘달거리’는 지난 2003년 북한 어린이를 위한 빵만드는 공장을 지원하기 위해 위문공연, 기금마련 공연으로 출발했다. 지난 2000년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잠깐의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남북평화무드에 대한 지역사회의 화답이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민간교류 중 문화예술분야의 발걸음이다.

아무리 의미가 좋고 뜻이 훌륭하다 한들, 대중적 인기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 작품이 17년을 달려오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의미나 메시지만으로 공연예술이 롱런하지 못하는건 상식이다. 아무리 취지가 훌륭해도 작품성이나 대중성이 떨어지면 대중은 야멸차게 외면한다. 어찌보면 선언문 같기도, 통일이라는 한반도의 꿈에 대한 제례 의식 같기도 한 김원중의 달거리는 그럼에도 형식적 내용적 완성도를 구축해가며 대중의 시선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사실 공연예술 작품이 100회를 내달리는 일은 한국 공연예술사에서도 그리 많지 않다. (사)서울튜티앙상블 ‘휴(休) 콘서트’를 비롯해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투란도트, 빌리엘리어트, 타이타닉 등이다. 대중가요로는 가수 김장훈이 지난 8월 100회 공연을 마쳤다. 면면만 봐도 서울을 무대로 한 사단법인, 인기가 검증된 수입작품, 그리고 대중가수 등이다. 자본도 대중적 인기도 없는 마음과 꿈을 좇아가는 공연이 걷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더뎠겠는가를, 그 영광에 어린 고난과 열정을 다시 생각한다,

그 꿈의 길을 김원중이라는 뮤지션을 중심으로 광주, 그곳 사람들이 만들어 온 것이다.

그리운 임을 100일 동안 기다리던 백일홍은 임의 소식을 잘 못 알아듣고 그만 쓰러졌지만 김원중의 달거리는 사랑과 희망의 흰 꽃을 피워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늘의 뜻인지 100회를 맞는 즈음,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과 평양을 오가며 화해와 평화무대의 서사시를 다시 쓰고, 시끌벅적하지만 트럼프와 김정은이 종전선언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그들의 걸음은 본격적으로 통일을 향해 내딛고 있다. 함께한 시간과 마음이 이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낼 듯하다. 이들은 100회를 기점으로 향후 철책선 건너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와 베를린을 잇는 ‘유라시아 로드런’ 공연을 전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김원중이라는 한 뮤지션의 열정과, 뜻을 같이한 지역 문화예술계와 시민사회단체, 무엇보다 그의 공연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시민들의 마음이 함께했다.

김원중이라는 한 뮤지션을 길러내고, 그 뮤지션이 자신의 열정과 꿈을 펼칠 수 있는 땅. 그 땅의 바람과 하늘과 땅의 내음, 그곳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고 그리워진다. ‘너를 보고 있어도 네가 그립다’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조덕진 문화체육부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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