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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오딧세이]암호화폐 거래가 도박?...벤처시행령 개정안에 업계 '격앙'

입력 2018.08.19. 08:14 댓글 0개
중기부, 벤처특별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암호화폐 매매업 제외
블록체인 업계 "도박 업종과 같은 취급"...정부 조치에 '격앙'
반발 거세지자 해명에 나선 정부 "블록체인 산업 육성 기조 변함 없어"
오락가락하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책의 원인은?..."컨트롤타워가 없다"

【서울=뉴시스】이종희 기자 =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유흥성·사행성 업종과 함께 벤처기업 업종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정부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만 제외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는 블록체인 산업 전체가 사행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며 정부의 조치에 격앙된 분위기다.

19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는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 기업 업종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시행령은 벤처기업에 포함되지 않은 업종으로 ▲일반 유흥 주점업 ▲무도 유흥 주점업 ▲기타 주점업 ▲기타 사행시설 관리 및 운영업 ▲무도장 운업영 등을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매매 및 중개업'을 벤처기업 제외 업종으로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제외된 5개 업종은 유흥성·사행성 소지가 짙은데, 이들과 동일시되는 셈이다.

벤처기업 업종에서 제외되면 정부의 정책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행성 업종으로 취급한 것과 다름이 없어 앞으로 벤처캐피탈(VC)의 투자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중기부는 "벤처기업 제외 업종을 가르는 기준은 국민정서상 벤처기업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유흥성・사행성 업종으로 관련 5개 업종에 대해서는 요건 충족여부와 관계없이 벤처기업이 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며 "정부는 투기과열 현상 등으로 벤처기업 육성 업종으로 보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추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록체인 업계 "우리가 도박 업종이라니"...정부 조치에 '격앙'

블록체인 업계는 이같은 정부 조치에 격앙된 분위기다. 이례적으로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모여 공동으로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방침을 대해 성토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와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등은 공동입장문을 내고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은 유흥 또는 도박업종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기술산업은 위험성과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터넷 시대 초기의 유해영상 유포 수단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산업은 성장을 거듭해 이제는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성숙했다"며 "발바닥의 종기가 아프다고 해서 다리를 자르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기부의 입법예고와 같이 입법된다면, 블록체인 기술 기반 기업의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막힐 것"이라며 "정책 수혜와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해 기업들은 고사하게 되거나 해외로 이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입법안이 실행되면 미국 IBM에 이어 블록체인 기술 특허수가 2번째로 많은 국내기업 '코인플러스'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한다는 이유만으로 벤처기업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신산업에 뛰어들어 기술분야에 도전한 기업의 벤처정신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어떤 기술진들이 한국

에서 창업하고 투자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대통령은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 철폐를 외치고 있는데, 정작 중기부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제정하려 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규제혁신 기조에 역행하며, 정부가 발표한 플랫폼 경제 육성계획에도 반하는 것으로 다시 한번 신중한 검토를 해달라"고 말했다.

◇반발 거세지자 해명에 나선 정부 "블록체인 산업 육성 기조 변함없어"

블록체인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중기부는 "블록체인 기술이나 관련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육성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중기부는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우리나라 블록체인기술 기반 산업은 총 10개가 있다"며 "이 중에서 단 한 개의 업종인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제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계법 제22조 '한국표준산업분류 블록체인기술 기반 산업분류 고시'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기술 산업은 ▲온라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 ▲관련 호스팅 서비스업 ▲기타 정보서비스업 등 총 10개로 분류됐다.

중기부 관계자는 "투기과열 현상 등 사회적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정부가 벤처기업으로서 정책적으로 장려하려는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ICO(암호화폐 공개) 기업이 제외된다는 지적에 대해서 "관련 기업을 벤처기업 제외 업종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며 "암호화폐 거래와 ICO 자체를 규제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전했다.

◇오락가락하는 블록체인 산업 육성책의 원인은?..."컨트롤타워가 없다"

업계는 이번 방안을 두고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육성 정책과 규제를 조율할 '컨트롤타워'의 부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을 두고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으로 주무부서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블록체인은 육성하지만 가상통화는 별개"라는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에 정부가 여전히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지방정부는 제2의 크립토밸리를 꿈꾸며 블록체인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지역화폐를 암호화폐로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등장했고, 일부 지자체는 이미 실행에 들어갔다.

가장 적극적인 지방정부는 제주도다.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도를 '블록체인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업계는 이 구상이 완성되면 1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블록체인 산업을 두고 극심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헛기침을 하면 아직 초기 산업 단계인 블록체인 업계는 태풍이 불 수밖에 없다"며 "쏟아지는 관련 뉴스를 보면서 울고 웃는 게 일상"이라고 한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블록체인 관련 협회가 업계를 대신해 금융당국과 올해만 10여 차례 만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만나는 동안 입장이 변하지를 않았다고 하더라. 그 이유를 물으니 '청와대가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입장이 없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내비쳤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ICO 금지 방침을 천명할 때 주도했던 부서가 총리실이지만, 암호화폐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커지면서 사실상 청와대가 전면에 나섰다는 시각이 많다"며 "그런 만큼 청와대에서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2paper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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