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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왜 김지은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나

입력 2018.08.15. 11:54 수정 2018.08.15. 14:39 댓글 0개
"얼어붙었다는 상황에서 도지사를 껴안는 건 의문"
"安 위세에 눌려 씻고 나왔다" 진술 신빙성 낮게 봐
호텔 만실이 아닌데도 운전비서에게 방 없다고 말해
"상화원 사건 김씨 증언은 모순, 불명확한 점들 다수"
대전 내려갔다가 安 연락 받고 심야에 KTX 타고 상경
【서울=뉴시스】 박현주 기자 = 지난 3월5일 JTBC 뉴스룸에 안희정 지사 정무비서인 김지은씨가 출연, 안지사가 성폭행했다고 폭로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위력으로 억누른 성폭행범으로 지난 5개월 간 몰렸던 안희정(53) 전 지사가 14일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안희정 스캔들'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여권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안 전 지사를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끌어내린 건 전 정무비서 김지은(33)씨의 '입'이었고, 영어의 몸이 될 뻔한 안 전 지사를 구원한 것도 역설적으로 김씨의 '입'이었다. 폭로를 통해 안 전 지사를 추락시킨 김씨의 입이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과정에서 안 전 지사를 도로 살려낸 것이다.

통상 법원은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거나 구체적일 경우 신뢰하는 편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수사단계부터 재판까지 대체로 일관된 주장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의 점에 관해 대체로 일관되게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언·진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고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첫 번째 간음이 발생한 지난해 7월 러시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씨는 안 전 지사가 불러 호텔방에 들어갔을 당시 "나를 안으라"는 안 전 지사의 말을 듣고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당황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바닥을 쳐다보며 거부 의사를 '중얼거리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씨가 안 전 지사를 결국 '살짝 안았다'고 진술한 대목을 두고 재판부는 이를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 전후에 보일 수 있는 행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봤다.

지난해 8월 서울 한 호텔에서 발생한 간음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안 전 지사는 당시 김씨를 방으로 불러 "씻고 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씨는 "안 전 지사의 위세에 눌려 씻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당시 시간이나 장소, 상황, 그리고 과거 간음 상황 등에 비춰볼 때 "씻고 오라"는 말의 의미를 김씨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다시 말해 김씨가 "씻고 나왔다"고 말한 것과 간음 사이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 당시 김씨가 운전비서에게 만실이 아닌데도 호텔에 방이 없다고 말했고, 이로 인해 김씨와 안 전 지사만 호텔에 묵고 운전비서는 다른 곳에 묵게 했다는 점 역시 미심쩍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해 9월 스위스에서 일어난 간음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김씨의 진술을 배척했다.

김씨는 앞서 지인 A씨에게 안 전 지사에게 당한 피해를 호소했고, 스위스에서의 간음 직전에 A씨와 통화하면서 '안 전 지사가 불러도 들어가지 말라'는 내용의 조언까지 받은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는 김씨 증언이 객관적인 통화 내역 등과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신뢰하기 힘들다고 했다. 사건 직후 김씨가 업무와 무관한 지인들에게 보낸 사적인 텔레그램, 카카오톡 대화 내용에도 김씨의 주장과 상반되는 측면이 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이른바 '상화원 리조트 사건'에 관한 김씨 진술을 "모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의 쟁점은 지난해 8월 안 전 지사가 아내 민주원씨와 충남 보령에 있는 상화원 리조트에 묵었을 때 김씨가 부부 침실에 몰래 들어왔는지 여부였다.

【서울=뉴시스】 조성봉 기자 =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08.14. photo@newsis.com

김씨는 당시 안 전 지사 침실 문 앞에 앉아 있었을 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로 당시 상화원에 동반한 중국 여성에게 문자가 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당시 안 전 지사의 휴대전화를 수행용 전화로 착신 전환해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이 중국 여성이 안 전 지사에게 '새벽에 옥상에서 만나자'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만 이 여성의 문자메시지를 봤기 때문에 이같이 행동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세부적인 내용에서 김씨 증언에 모순되는 점이 있고, 불명확한 점 또한 다수 있다"고 했다. 안 전 지사 아내는 앞서 열린 공판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해 '문자메시지와는 무관하게 김씨가 몰래 방에 들어와 잠자는 우리 모습을 수 분간 지켜봤다'는 내용의 증언을 했다. 결국 법원은 민주원씨 증언이 더 믿을 만하다고 본 셈이다.

재판부는 "설령 김씨의 진술을 믿는다고 해도 한·중 관계 악화를 우려해 안 전 지사와 중국 여성 간 밀회를 막고자 안 전 지사 부부 객실 문 앞에 있었다는 것은 수행비서 업무와 관련해 김씨가 기존에 밝힌 진술과 상반된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재판부는 승합차 안에서 김씨 스스로 바지 벨트를 풀어 안 전 지사의 추행이 쉽게 이뤄지도록 한 행위에 대해, "피해자는 승합차 운전기사가 눈치챌까봐 벨트를 풀어 딸그락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 했다고 진술하나, 차내에서 안 전 지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제3자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내용 등에 비춰 볼 때 믿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간음 사건에 대해서도 "김씨 스스로 안 전 지사가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 촬영장으로 갔고, 녹화 종료 후 당일 저녁에 대전에 내려갔다가 안 전 지사의 연락을 받고 심야에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면서 "(당시) 수행비서도 아닌 피해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경위에 대해 의문이 있다"며 김씨의 관련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저항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물리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인데, 텔레그램 대화가 삭제되는 등 진술 내용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도 판결의 고려 대상이 됐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대부분 삭제돼 맥락 연결이 안 될 뿐 아니라 삭제(자체)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다"며 "텔레그램은 중요한 증거인데 모두 삭제된 정황을 볼 때 피해자 진술에 의문이 간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진술을 하는 것이 2차 피해로 인한 충격인지도 고민했다"며 "혹여 피고인이 성적 길들이기를 한 것은 아닌지, 피해 사실로 인해 무기력해지고 현실에 순응하게 되는 심리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닌지 살펴봤지만 제반 증거나 사실 관계를 비춰볼때 이런 상태에 빠졌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관행화, 구조화된 폐습으로서의 권력형 성폭력 행위가 우리 사회에서 추방돼야 한다는 점과 이를 위해서 사회적으로 연대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사안이 형사 법정으로 온 이상 헌법적·형사법적 원칙에 기초해 사안을 심리해야 하고, 그 결과 재판부에서 본 사건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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