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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도시’ 광주에 ‘5·18’이 없다
입력 2018.08.10. 16:55 수정 2018.08.10. 17:06 댓글 0개최근 2018년판 연극 ‘애꾸눈 광대’ (부제 ‘어머니의 노래’)를 보며 두 가지를 생각했다. 첫째는 이 연극이 어느 해 보다 더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했다는 점이다. 한 젊고 유능한 청년이 5·18 때문에 한쪽 눈을 잃고 절망하다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누이동생은 5·18 유족과 결혼해 당국의 회유에 넘어간 남편과 갈등을 빚다가 급기야는 교통사고로 숨지게 된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자꾸 다른 길로 가는 걸 지켜보면서 한(恨)이 맺혔다. 그러나 결국 아들이 추구하는 길이 옳았다는 것을 이해하고 화해한다는 내용이었다. ‘광주의 아픔’이 어머니의 파란 많은 일생과 함께 잘 담겨져 있어 필자도 눈시울을 적셨다.
‘열정’ 하나로 140회 공연 이뤄내
5·18부상자 회장을 지냈던 이지현씨가 6년 전인 2012년 자신의 일대기에다 다른 5·18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묶어 무대에 올린 이 연극은 1인극으로 시작해서 2016년 ‘어머님 전 상서’로 업그레이드 됐다가 올해 다시 ‘어머니의 노래’로 완성도를 높였다. 출연배우도 8명이 됐다.
1980년대 시위현장에서부터 그를 지켜보아 온 필자로서는 그가 연극인으로 변신해 진지하게 연기자 수업에 몰두하는 것에 감동받았다. 그러나 더 큰 감동은 그의 ‘열정’이었다. 해마다 업그레이드 된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따내기 위해 관공서와 국회를 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의 노력은 연기에 쏟았던 열정보다 더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 결국 올해 140회째 공연까지 이르게 된 배경에는 연극을 통해 5월 정신을 전파해야겠다는 사명감과 작품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 온 노력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극을 보면서 가졌던 두 번째 생각은 ‘5·18의 도시’ 광주에 진정한 5·18이 없다는 반성이었다. 5·18은 1980년 열흘간의 ‘사태’가 아니라, 그 이후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까지 온 국민이 함께 일어나 피땀을 쏟아온 ‘국민운동’이었고,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변곡점’이었다. 38년이 지난 오늘날 해야 할 일은 그 5월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계승’은 결국 예술을 통해 이루어져야 영속성을 가진다. ‘왜곡’과 ‘망각’이 판치는 오늘날 세태에서.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광주의 5·18은 겨우 5월에 그치고 있다. 5·18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창작활동도 활발하지 않다. “광주가 5·18로 뒤덮여 있다”고 자조(自嘲)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외지인들이 광주를 방문해서 5·18묘지, 문화전당 외에는 5·18을 실감하고 예술로 승화한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드물다. 공연장과 전시장도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광주문화재단 빛고을시민문화관은 국가기념일 기념식장으로 지어놓은 곳인데 이곳을 억지로 공연장으로 이용하고 있고, 5·18문화센터 역시 다목적 문화관으로는 마땅치 않다. 변명의 여지없이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젠 상징성과 전문성을 함께 갖춘 전용 문화공간을 확보하여 5·18 소재의 예술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소극장에서는 인권-민주주의 관련 모노드라마·소형연극·시낭송 등이 끊이지 않고, 중극장에서는 관람객들이 함께 무대에 서서 체험할 수 있는 중형 연극·뮤지컬·음악연주회·영화 상영 등이, 전시장에서는 5·18과 세계의 민주화운동·학생독립운동과 관련한 전시회가 계속돼야 한다. 그 공간에서 만큼은 예술적 열정이 확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이젠 ‘집중’할 전용공관 필요한 때
그리하여 광주의 그 곳에 가면 언제나 ‘5·18’ ‘민주주의’ ‘인권’ ‘공동체의 삶’을 접할 수 있다고 뇌리에 새겨지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5·18 상설공연을 겨냥해 여러 개의 대작(大作)이 만들어졌으나 모두 실패했다. 광주시민이나 관리들 가운데 이지현씨 같은 열정과 끈기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꾸눈 광대’를 보면서 이제 ‘열정’과 ‘집중’이 담겨있는 전용관에서 소공연, 중공연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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