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부모의 사랑, 자식의 효(孝)

입력 2018.08.10. 16:55 수정 2018.08.16. 17:50 댓글 0개

“얘야. 3만원만 주고 가면 안되겠느냐.”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또래 노인들과 어울리면서 항상 공술만 얻어마셔 오던 터였다. 미안한 마음에 그날 아들에게 용돈을 받아 술이라도 한잔 살 요량이었다.

“없어요.”

그러나 회사에 출근하려던 아들은 아버지의 눈치스러운 청원을 박정(薄情)하게 거절한 채 집을 나섰다.

때마침 설거지를 하다 부자 간의 서먹한 대화를 듣고있던 며느리가 밖으로 달려나가 남편을 멈춰 세웠다.

“여보, 돈 좀 주고 가요.” “뭐하게?” “아이들 옷도 사 입히고 동창 계모임도 있어요.”

남편은 안 주머니에서 5만원 가량을 꺼내 헤아리며 ‘담배값이 어쩌네’, ‘차 값이 어쩌네 ’라고 투덜거렸다. 남편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 아내는 차비만 빼고 몽땅 빼앗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늘진 얼굴로 거실 벽에 기대어 힘없이 앉아계신 시아버지께 그 돈을 내밀며 “아버님, 이 돈으로 친구분들과 드시고 싶은 소주도 드시고 공원으로 놀러도 가세요”라고 말했다.

수년전 상처(喪妻)를 하고 자식에게 변변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지내오던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속 깊은 처사에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날 저녁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아내에게 “왜 아이들 옷이 변변치 않고 얼굴에는 땟국물이 질질 흐르냐?”고 질책했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날이 갈수록 아이들의 입성은 초라해지고 손등이며 얼굴 등에 꾀죄죄함은 더 해갔다.

마침내 남편은 “여편네가 하루종일 집에서 무얼하길래 얘들 꼴이 저 모양이냐?”고 벌컥 화를 냈다. 남편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있던 아내는 “당신은 뭣때문에 아이들을 떠 받들듯 곱게 키우려고 해요? 저 아이들을 곱게 키워봐야 당신이 아버지에게 용돈 3만원을 냉정하게 거절했듯이 우리가 늙어서 ‘3만원’만 달라고 해도 거절당할 게 뻔한데”라고 맞받아 쳤다.

폐부를 찌르는 아내의 일침에 기가 질린 남편은 아무소리도 못한 채 늙은 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무정(無情)함을 까마득히 잊고 “회사 일이 힘들지 않으냐? 환절기에 감기 조심해라”고 아들 건강을 걱정했다. 불효했던 자식을 오히려 걱정해주는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에 아들은 엎드려 오열을 쏟아냈다.

‘한 부모는 열 아들을 키울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부모를 봉양(奉養)키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자식의 효(孝)가 아무리 지극하다 한들 부모의 사랑에는 결코 미칠 수 없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부모의 한없는 사랑의 무게에 비해 자식의 부모에 대한 보잘 것없는 효(孝)의 가벼움을 꾸짖는 금언(金言)이기도 하다.

필자와 가까운 지인이 공유 밴드에 올린 글이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 했는지 후회스럽다.김영태논설주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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