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안시성(安市城)

입력 2018.08.08. 15:49 수정 2018.08.08. 16:03 댓글 0개
최민석의 약수터 무등일보 문화체육부장

서기 644년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을 결심한다.

앞서 613년 을지문덕과 강이식 장군 등의 활약으로 수나라 침공을 격퇴한 고구려는 또 다시 중국과 국운을 걸고 숙명의 대결을 펼친다.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한 이유와 배경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고구려 침공으로 멸망한 수나라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과 신라를 괴롭히고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에 대한 응징, 독자적 천하관을 내세우며 천손임을 주장하는 고구려에 대한 불만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이유는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피할 수 없는 일전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당나라는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토번(티벳)과 돌궐 등 주변국을 잇따라 제압했다.

정작 동북 변방에 자리한 고구려만이 사대와 입조를 거부하고 있었다.

당태종은 645년 이세적 등 고구려 정벌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넜다.

당군은 요동성과 백암성 등 요동벌판에 즐비한 고구려 성들을 점령하며 승승장구한다.

이때 당태종은 평양 진격을 놓고 참모들과 격론을 거듭했다.

당군은 등 뒤에 적을 남겨놓을 수 없고 퇴로 확보를 위해 고구려의 전략적 요충인 안시성 전투에 나섰다.

안시성은 현재 중국 요령성 동부에 있는 해성(海城)의 영성자산성(英城子山城)으로 추정된다.

안시성 전투는 645년 6월 20일 시작돼 9월 18일까지 88일 동안 이어졌다.

당군의 규모는 50만명이 넘었고 안시성은 양만춘을 수장으로 한 주둔군과 백성을 합쳐도 10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당군은 우세한 병력과 공성무기를 앞세워 밤낮으로 공격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당태종은 양만춘의 화살을 맞아 눈에 부상을 입고 당군은 3개월에 걸친 공격에도 성문을 열지 못한 채 퇴각했다.

승리는 오롯이 고구려의 것이었다.

안시성 전투는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꼽힌다.

고구려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부터 668년 멸망할 때까지 56년간 중국과 전쟁을 치렀다.

안시성 승리는 명장 양만춘의 지략과 병사들의 투혼, 조국과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백성 등 외세에 맞서 물러섬이 없었던 고구려인들의 개가로 평가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가 외세에 맞서 하나된 민관군임을 보여줬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자신의 한 저서에서 “고구려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고 적었다.

영화 ‘안시성’이 내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안시성’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안시성에서 뼈를 묻은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강변한다. 주어진 하루하루를 삶과 역사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 우리들의 책무다.

최민석 문화체육부 부장backdoor2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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