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황청심원의 허와 실

입력 2001.06.12. 13:59 댓글 0개
노인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비상약으로 우황청심원을 구비해 놓지 않은 가정은 없으리라. 심지어 중풍환자를 문병 오는 문병객의 손에도 우황청심원이 들려져 있다. 그 만큼 우황청심원의 본래의 의미는 퇴색해 버리고 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만병통치약처럼 복용하는 것 같다. 원래 우황청심원은 산약, 인삼, 사향 등 30여 종의 한약으로 만든 중풍 구급약이다. 중풍에 걸려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거나 입이 삐뚤어지고 손발에 마비가 오거나 혀가 굳어 말을 못하는 경우 등에 응급처치를 목적으로 투여하는 약물이다. 일반적으로 우황청심원은 뇌신경의 흥분을 풀어 내리면서 막힌 기(氣)가 시원하게 소통되도록 뚫어주는 작용을 한다. 구급상태에서 일단 환자가 벗어나게 되면 각 증상에 따라 처방은 바뀌게 되고 환자의 허실한열(虛實寒熱)에 따라 치료방법은 다시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시종일관 우황청심원만 복용하는 환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청심원은 가장 중요한 중풍약이다. 또한 하루에 몇 개씩 먹어도 좋은 것이며, 혈압이 높든 낮든 상관없다. 마치 비타민이나 소화제를 먹듯 간단히 복용한다. 이는 지나친 오용과 남용에 속한다. 중기(中氣)라는 병이 있는데 중풍과 마찬가지로 졸지에 혼수상태에 빠져들며 구금이 되어 쓰러진다.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당황하여 우황청심원을 복용시키는데 자칫하면 커다란 불행을 일으킬 수도 있다. 「동의보감」에는 ‘중풍에는 중기약을 써도 해가 없지만, 중기에 중풍약을 쓰면 해가 크다’라고 하였으니, 중기환자를 중풍환자로 그릇 판단하고 우황청심원을 복용시키면 위험하다. 그러면 중풍과 중기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중기증은 기가 막힘인데 갑작스러운 정신적 충격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일시적인 의식상실, 마비, 떨림 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서양의학에서 설명하는 히스테리와 매우 유사하다. 중풍과 중기는 그 원인에 있어서는 서로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증상은 모두 분노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젊고 건강한 사람은 기혈이 허하지 않고 몸의 수기(水氣)를 잃지 않으므로 분노의 감정에 휩쓸리더라도 화의 상승을 어느 정도 억제하기 때문에 중풍으로 발전하지 않고 중기에 머무른다. 반면 노쇠한 사람은 화에 대한 억제 능력이 떨어져서 갑작스러운 화기의 폭발로 말미암아 중풍에 걸리게 된다. 중기증일 경우 맥은 가라앉으며 몸이 차지만, 중풍은 맥이 위로 뜨고 몸이 더워진다. 또 중기증은 입에서 담이나 가래가 나오지 않지만, 중풍은 이런 것이 나오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차이는 중기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경과되면 회복되지만, 중풍은 뇌 손상을 가져오므로 치료를 해도 회복이 무척 더디다. 따라서 약을 복용할 때는 이런 차이를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우황청심원도 독소나 기형아 발생 유도 등의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약상이 강하고 단기간 사용하는 약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복용하면 좋지 않다. 그리고 복용할 때는 씹어서 먹거나 따뜻한 물에 개어서 먹는 것이 좋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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