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입력 2018.07.23. 14:34 수정 2018.07.23. 16:33 댓글 0개
김현옥의 음악이 있는 아침 작곡가/달빛오디세이 대표
Robert Schumann(1810-1856)

여름이다. 성장의 계절. 열정의 계절. 만물이 결실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시기. 이 빛나는 햇살 없이는 어떤 열매도 불가능할 터, 자연의 이치를 어찌 거스를 수 있나, 하지만 아무리 여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어디 산뜻하고 쾌적함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노곤해진 태양계의 행성들이 공전을 하다 잠시 멈추었나 보다.

음악역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정치적, 경제적면에서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겪었던 시대, 그 변화가 예술세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때는 낭만주의가 아닐 런지. 머리로 아는 이성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감성이 더 다가왔던 때, 내 감정을 내 목소리로 말하고 살았던 때, 그 낭만 속에서 지극히 낭만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 문득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이 떠오른다.

어찌 슈만을 빼고 낭만파 음악을 이야기할 수 있으랴. 그는 독일출생으로 출판업자였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일찍이 철학과 문학을 사랑했고 음악에 재능을 보였으나, 현실적 감각이 뛰어났던 어머니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하였다. 법률가는 안정된 직업이 보장되었고 예술가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불안을 겪어야 했다. 법률가로 불행히 살기보다는 음악가의 행복을 선택했던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했고 법률공부와 피아노 공부를 병행하면서 음악인생을 시작하였다.

피아노를 늦게 시작한 탓일까. 혹독한 연습으로 손가락에 무리가 오고, 다친 손가락으로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슈만. 위기가 기회였을까. 작곡가 하인리히 도른을 만나면서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문필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만들어 글을 쓰면서 평론과 편집으로 인정을 받았다. 당시 무명이었던 쇼팽과 브람스를 ‘음악신보’를 통해 등용시켰고, 슈베르트의 유작들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피아노 지도를 받았던 스승 프리드리히 비크와 법적소송을 통해 이뤄낸 클라라와의 사랑은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클라라는 그보다 9살이나 연하였고, 아름다웠으며, 이미 부와 명예를 갖추고 있었던, 명성 있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슈만은 평론에서 인정을 받고는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뛰어난 클라라에 열등감이 있었다. 피아노 연주자로서는 실패했고, 뒤늦게 시작한 작곡에, 브람스를 비롯, 그녀는 늘 인기가 많았다. 클라라를 사랑하면서도 음악가로서 질투가 있었던 슈만. 이러한 복잡한 정신적 고통은 1853년, 지휘를 하는 동안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갈등을 더해 증상이 심해지고, 라인강에 투신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지나가는 어부에게 구출되지만 이후 귓병과 불안, 환청과 환각 같은 증상으로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 정신병원에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클라라가 손가락에 와인을 찍어 입에 적셨을 때 그녀를 껴안고 ‘나도 알아..’라고 한 말이 그가 한 마지막 말이다.

슈만은 교향곡, 피아노협주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등 기악곡을 더불어 수많은 낭만적 성악곡을 우리에게 남겼다. 가곡집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 ‘시인의 사랑’ 등은 시에 의한 가곡 중 최고위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는 인생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했던 자신의 말처럼, 그의 음악에는 혹독했던 삶이 나비되어 꿈처럼 녹아 있다. 문학은 한 편의 시로서 음악과 한 몸이 되어있고, 그 자체로 불멸의 삶이 되었다.

슈만의 손가락이 다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조건일까. 아이러닉하게도 많은 작곡가들은 역경에 처했을 때 숭고한 작품을 탄생시킨다. 여기에 슈만은 사랑의 행복감속에서 건진 내면의 소리를 더한 것이다. 영혼을 흔드는 내밀한 언어이다.

이 활동적이고 역동적인 계절. 무더위에는 어떤 음악이 가장 시원할까. 분수와 함께 들려오는 음악도, 소리가 포장되어 들려오는 공포물 영화음악도 있겠지만, 죽은 나무속에서 들려오는 살아있는 소리 이상은 없을 것이다. 피아노!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죽음에 대한 총체적 저항’이라고 했다. 피아노에서 나오는 저 마른나무의 소리가, 저 깊은 울림이, 그 감동이 우리의 삶을 대변한다. 여름나기에 이보다 적절한 악기가 또 있을까.

추천음악 : 슈만의 피아노5중주 Op.44 / 구성 : 피아노+현악4중주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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