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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핫이슈]'러 대선 개입 없었다'…푸틴 편들다 궁지 몰린 트럼프

입력 2018.07.21. 08:30 댓글 0개
트럼프, 정상회담 기자회견서 러 대선 개입 부정 발언
공화당·보수언론서도 거센 비판 "수치스럽고 반역적"
"동맹 버리고 독재자 편으로…지정학적 자살" 우려도
【헬싱키=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월드컵 축구공을 선물로 받고 있다. 2018.07.17

【서울=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더 밝은 미래로 가는 발걸음을 뗐다고 자평했지만, 그의 발언은 정상회담의 모든 성과를 뒤덮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과 보수 언론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보좌진을 대동하지 않은 채 예정된 시간 90분을 훌쩍 넘는 2시간 동안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눴다.

문제는 두 정상이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설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우리 정보당국에 대단한 신뢰를 갖고 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아주 강력하게 이를 부인했으며, 나도 그런 일을 러시아가 저질렀다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이 수사는 우리 나라에 재앙이다. 우리를 계속 갈라놓고 있다. 결탁은 없었다. 모두가 안다"며 "깨끗한 선거운동이었다. 나는 힐러리 클린턴(민주당 대선 후보)을 쉽게 이겼다. 약간의 의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일파만파 번져나가 거센 비판 여론을 만들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미러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편먹고 미국 사법당국과 국방 관계자, 정보 기관들을 반대하는 건 경솔하고 위험하며 나약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많은 미국인들은 이 위험한 행동을 보고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나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CNN뉴스의 진행자 앤더슨 쿠퍼는 "우리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러시아 지도자와 가진 정상회담들 가운데 가장 수치스러운 것을 봤다"고 혹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공화당과 보수 언론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폴 라이언 미 하원의원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핀란드 헬싱키에서 내놓은 발언들 중 일부는 미 정보기관들의 수사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라이언 의장은 "러시아가 우리 선거에 간섭하고 전세계 민주주의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은 러시아에 책임을 묻는 것을 유지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사악한 공격에 종지부를 찍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스뉴스의 셰퍼드 스미스 앵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중 일부는 창피하고 수치스러우며 반역적"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만에 실수를 인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초청해 미러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한 자리에서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정보당국의 결론을 전적으로 수용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18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개입에 대한 책임이 푸틴 대통령에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그가 나라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백악관 참모들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인정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백악관 참모진은 이번 정상회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을 상대할 때 강경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기 위한 100페이지 분량의 브리핑 자료를 제공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 내용을 대부분 무시했다고 한다.

익명 보도를 요구한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계획에서 매우 벗어났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참모들이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문제에서부터 미국의 선거 개입 문제에 이르는 이슈에 대해 조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기 위해 독단적인 결정(game-time decision)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유럽 순방 기간 동안 동맹국인 유럽연합(EU)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오히려 러시아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그는 15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현재 세계에서 최대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매우 많은 적을 갖고 있다. EU가 무역에서 우리에게 하는 일을 보면 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적이다"라고 답했다.

반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어떤 면에서는 적이다"라며 다소 애매한 표현을 썼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2년차에 들어 기존 외교안보 정책 기조를 뒤엎는 행보가 노골화되면서 미국이 '지정학적 자살'(geopolitical suicide)을 저지르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지타운대학의 댄 넥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정학적 자살 행위'를 실제로 우려해야 할 시점이 됐다며 미국의 동맹 방어 약속에 관한 트럼프 행정부의 극심한 일관성 부재가 오해와 충돌 위험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산하 미국유럽연구소(CUSE)의 토머스 라이트 소장은 "정말로 충격적인 상황"이라며 "그는 민주주의 동맹들보다는 독재를 펼치는 적들을 훨씬 더 편안하게 느끼는 듯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문제 등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는 성과를 냈는데도 언론들이 부정적인 면만 부각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18일 자신의 트위터에 "푸틴 대통령과 나는 많은 중요한 문제를 논의했고 복싱 경기를 기대했던 많은 '헤이터(haters)'들을 괴롭게 했다"며 "러시아와의 정상회담은 장기적으로 큰 성공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일에도 트위터를 통해 "가짜 뉴스 언론들은 러시아와 크게 맞붙는 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전쟁으로 이어져도 괘념치 않을 태세"라며 "그들은 내가 푸틴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다른 나라보다도 '아주'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가을 푸틴 대통령과의 2차 정상회담도 추진 중이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올 가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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