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반으로 쪼개질 수 없는 꽃게가 집게발을 흔들며 웃었다 ˝

입력 2018.07.19. 09:05 댓글 0개
장터의 삶, 장터의 맛 (13)녹차골 보성향토시장

보성에서는 돼지고기도 '녹돈'이고,
오리고기도 '녹차 오리'이다.
보성 가는 길에 만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름도
'녹차휴게소'다.
보성 오일장의 이름이
'녹차골 보성향토시장'인 것도

5년전 새로 개장한 시장은 깔끔하면서도 축제장의 열기처럼 북적거리며 전통시장의 한 틀을 보여주었다.

보성에서는 돼지고기도 '녹돈'이고, 오리고기도 '녹차 오리'이다. 목욕탕에서는 '해수 녹차탕'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보성 가는 길에 만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름도 '녹차휴게소'다. 보성 녹차는 전국 녹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벌교가 꼬막이라면, 보성은 녹차다.

보성 오일장의 이름이 '녹차골 보성향토시장'인 것도 그런 이유다.

녹차골 시장은 2013년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으로 새롭게 정비하면서 보성오일장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매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오늘 보성장을 찾은 상인들은 내일은 3일과 8일에 열리는 조성장을 찾고, 모레는 4일과 9일에 열리는 벌교장을 찾아 장터의 삶을 이어간다.

골차골 보성향토시장은 여느 전통시장과 달리 직선으로 이어진 동선이 깔끔하다. 멀리서 보아도 축제장을 연상케 하는 하얀 색의 아케이드 지붕이 산뜻하고, 그 아래 일직선으로 뻗은 세 개의 장옥은 질서정연하다.

장옥과 장옥 사이에는 중앙에 할머니 장터가 자리하고 좌우로 곡물전과 어물전이 펼쳐진다. 정리된 장터에서 일어나는 할머니장터와 어물전의 북적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보드라운 페스추리 빵처럼 조화를 이룬다. 전통시장의 교범을 보는 듯하다.

◆소고기를 만나 하늘로 오르는 키조개

입하를 갓 지난 5월 초의 녹차골 시장에서는 득량만이 키운 키조개와 바지락이 제철을 맞았다.

고흥반도 북서쪽의 만으로 보성군과 고흥군, 장흥군 등에 둘러싸여 있는 득량만은 물이 맑고 수심이 얕아서 각종 조개류가 성장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뿐만아니라 뻘에서는 장어와 낙지가 많이 잡히고 김·미역·매생이 등의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어물전의 아주머니는 손님을 기다리며 키조개 껍질을 부지런히 깠다. 난생 처음 맨살을 드러낸 키조개의 관자가 선명한 유백색으로 빛났다. 싱싱한 키조개는 관자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2만원어치가 5개가 되기도 하고, 7개도 됐다.

관자는 회로 먹어도 되고, 후라이팬에 살짝 구어 먹어도 일품이다. 키조개의 관자와 소고기가 만나면 맛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른다.

어물전의 노점에서는 보성의 옆 동네인 장흥 안양면에서 왔다는 하춘자(79) 할머니가 바지락을 팔았다. 껍질이 가무잡잡한 참바지락의 씨알이 민바지락에 비해 더 작았으나 가격은 더 비쌌다. 1킬로그램의 무게로 민바지락은 6천원에 팔았고, 참바지락은 1만원에 팔았다.

"수문의 내 밭에서 캔 거여. 잡사 봐, 바지락은 요것이 최고여. 비교도 못해부러." 할머니가 참바지락을 가리켰다.

◆민바지락이 있으면 개바지락은?

내가 물었다. "할머니, 요거는 왜 민바지락이라고 해요? 개바지락이라 하지 않고?" 할머니가 '그런 걸 왜 묻냐'는 표정을 짓더니 금새 "그럼 오늘부터 개바지락이라고 하지 뭐!"라고 웃으며 말했다.

'개면 어떻고 민이면 어떤가. 개든 민이든 맛있으면 그만이지'라면서도 나의 눈은 참바지락에 꽂혔다. 오늘 저녁 귀 얇은 나의 식탁에 오르게 될 참바지락 무침의 맛이 벌써 궁금해졌다(하지만 나는 그날 저녁 '참'과 '민'의 맛을 구분 할 수는 없었다. 맛없는 것을 알지 못하는 나의 미각 탓이다).

어물전에서 장보러 왔던 할머니 두 분이 서로 만났다. "뭣 살라고?" "갈치 하나 살라고!" "요즘 갈치가 비싸던데…"

애시당초 갈치를 사고자 했던 할머니가 갈치 대신 길쭉한 양태 앞에 섰다. 어물전의 주인 아주머니가 잽싸게 말했다. "녹동 거예요. 거짓말 안해요!"

"얼매요?"라고 묻는 할머니께 주인은 한 마리에 만원이라고 대답했고, 가격을 묻던 할머니가 그냥 지나가려고 하자 주인은 "여섯마리를 오만원에 드릴께"라고 제안 했으나 할머니는 못들은 척 가던 길을 그대로 갔다. 할머니는 대신 다른 가게에 들려 2만원을 주고 손바닥 만한 크기의 병치 10마리를 샀다.

어물전에서 횟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먹물을 뒤집어 쓴 갑오징어는 마리당 1만원에 팔렸고, 꽃게는 킬로그램당 2만원을 불렀는데 보통 4마리가 저울위에 올랐다.

꽃게를 팔던 주인이 "봐라, 키로 넘는다. 이만오천원은 받아야 하는디…"하면서도 2만원을 받고 검정비닐 봉투에 꽃게 4마리를 담았다. 반으로 쪼개질 수 없는 생물 꽃게가 집게발을 흔들며 웃었다.

모종가게에는 희망을 심듯 모종을 심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희망을 파는 모종가게에 에누리는 없다

장터 중앙에는 100여명 남짓의 할머니 노점들이 동선을 따라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았다. 이창호(52) 상인회 회장은 "회천 웅치 노동 득량 보성읍 등에서 농사지은 할머니들을 위해 내어 놓은 공간"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할머니들이 직접 지은 농산물을 가지고 나온 것이라며 '믿음'을 강조했다.

마늘쫑이나 불미나리, 삶은 고사리, 총각무, 상추, 고추, 당근, 쑥, 취 등이 풍성히 쌓였던 할머니 장터의 농산물들은 12시를 지나자 '믿음의 힘'으로 매진 아닌 매진을 이뤘고, 할머니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떳다.

차도와 접한 후문쪽에서는 모종 가게가 성황을 이뤘다. 노점에서도, 점포에서도, 트럭에서도 가지가지의 모종을 팔았다.

장날마다 주민과 상일들을 위해 열리는 문화장터에서 비보이 공연이 한창이다.

모종의 품목마다 종류는 다양했다. 아삭고추, 오이고추, 꽈리고추, 하모니고추, 애호박, 단호박, 쥬키니호박, 맷돌호박, 풋호박, 청오이, 백오이….

희망을 심듯 모종을 심으려는 사람들이 모종 가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성황을 이루는 곳에서 에누리는 성황을 이루지 못했다.

고추모종 3개를 1천원에 샀던 할머니가 "하나만 더 줘"라고 했으나 노점 주인은 "3개에 천원인데 하나를 더 주면 망한다"고 응수했다.

◆찰나의 시간에서 갑이 되는 사람들

장터에서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어깨띠를 두른 후보가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나눠주었고, 장터의 바닥에는 뒹구는 명함이 시간에 비례하여 늘어갔다. 낙엽처럼 깔리는 명함은 권력의 세계에서 갑과 을이 바뀌는 찰나의 시간이 장터를 지나고 있음을 말했다.

"엄니, 커피 한 잔 하실라요?"라고 묻는 며느리에게 "오짐 마려우니 안먹어!"라고 대답하는 시어머니와 철물점에서 작은 칼과 낫을 하나 씩 산 뒤 "아나, 야달개."라고 천원짜리 지폐 8장을 건네는 할아버지, 자신의 키 만한 크기의 삽 한 자루를 들고 가며 "오매, 무가러~"라고 힘들어 하는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가 장터를 지나는 찰나의 시간에서 갑이 되었다.

녹차골 시장에서는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상인들과 주민, 또는 관광객들을 위한 문화장터를 연다. 장이 설 때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각종 공연이 펼쳐진다. 이날도 장터 초입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여가수가 '서울일랑 가지마오. 가지를 마오'라는 '총각선생님'을 불러 박수 갈채를 받고, 광주에서 왔다는 젊은 비보이는 몸을 날리는 브레이크댄스로 흥을 돋았다.

신명을 이기지 못한 중년 사내 한 명이 객석에서 나와 무대에 오르려다 제지를 받았다.

녹차골 시장에서는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시장 옥상에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옥상정원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다향 떡갈비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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