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학운위원장과 사립고 행정실장의 검은 커넥션

입력 2018.07.18. 17:24 수정 2018.07.31. 10:57 댓글 0개

“과연 사립학교 행정실장 혼자 통째로 시험지를 빼내 학교운영위원장에게 건냈을까요. 다른건 다 제쳐두더라도 나머지 학생들은 무슨 죄입니까. 수능이 120일 앞인데다 수시가 두달도 채 안남았는데, 분통이 터져 잠도 오지 않아요.”

광주지역 사립 고등학교 행정실장이 시험지를 유출, 고3 아들을 둔 학운위원장인 ‘의사 엄마’에게 건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학생, 학부모는 물론 시민들이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사립학교라지만, 어떻게 사상 초유의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냐며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불과 2년전 광주 한 여고에서 터진 학생부 성적 조작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이어서 충격이 더하다. 가장 엄격해야 할 학사 관리가 어찌다 이 지경이 됐는지 하는 분노감마저 치솟는다.

의대를 보내고 싶은 ‘의사 엄마’는 아들의 성적이 좋지 않자 해서는 안될 위험한 거래를 했다. 그리고 행정실장으로부터 치밀하게 시험지를 건네받아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 ‘재구성’해 아들에게 기출 또는 예상문제를 정리한 속칭 ‘족보’라며 건넸다.

‘의사 엄마’는 학교법인 이사장 부인과 고교 동문이라는 점과 학운위원장이라는 직위를 이용, 행정실장에게

시험지를 빼내줄 것을 요구했다. 이사장 부인에게 ‘의사 엄마’를 소개받았던 행정실장은 기막힌 사연을 듣고 중간고에 이어 기말고사까지 착실하게 실천에 옮겼다.

학운위원장의 아들은 내신 2등급에서 중간고사 이후부터 1등급으로 둔갑했다. 빼돌린 시험문제를 공부한 것이 주효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가 이렇다.

어떻게 상상에서나 생겨날 수 있는 일이 현실이 됐을까.

학교 이사장의 ‘복심’으로 알려진 행정실장은 이사장 부인과 동문인, 그것도 막강한 권력을 가진 학운위원장의 ‘은밀한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사태를 행정실장 개인의 일탈로 보기에는 석여찮은 구석이 많다.

그동안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을 받아온 학운위 운영 폐해도 그대로 드러났다.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 모두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학부모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학운위원장은 학교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교장이나 행정실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유대관계를 맺는다. 식사 자리는 기본이고 골프 등 개인적인 부적절한 만남 자리도 잦은 게 현실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운위원장이나 운영위원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사례도 적잖아 이를 지켜본 학생들이 의아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립학교 측과 학운위의 ‘사적 관계’를 감시하거나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여러 정황상, 시험지 유출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댓가성으로 금품이나 다른 거래가 오가는 등 ‘부당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나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한다.

현재까지는 ‘공모자’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수사 결과를 통해 행정실장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성적 및 학생부 조작 사건보다 시험지 유출 사태를 더 심각한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험에서 한두 문제라도 더 맞아 성적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은 마음에 밤을 꼬박 새가며 공부를 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들,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도 자식의 앞날을 생각해 어렵사리 학원을 보내고 있는 우리주변의 학부모들은 이번 사태를 보면서 분노와 허탈감이 클 것이다.

시험지 유출로 면학 분위기가 엉망이 된 해당학교 또한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말고사를 다시 치르기로 하면서 쑥대밭이 됐다.

가장 걱정되는 문제는 수능을 코앞에 둔 다른 고3 학생들의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잘못한 학생은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해당 학교는 물론 광주 전체 고3 이미지가 먹칠이 돼 남아있는 애꿎은 수험생만 피해를 볼수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시험지 유출 사고의 근본적인 이유는 내신 성적이 대학 입학에서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196개 대학의 2019학년도 수시 비중은 76.2%로, 전년도 73.7%보다 높은 역대 최고치다. 반면 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래서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내신에 목숨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학운위원장과 행정실장의 검은 커넥션이 가동했던 것이다. 시험지 보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사립학교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광주 고3 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이 처음인지, 다른 학교에서는 문제가 없는지 학사 관리 전반의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당장 오늘이라도 교육감이 직접 나서 무너져버린 광주 공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학비리가 만연해 있는데, 재수 없이 걸린 케이스”라는 시중의 쓴소리를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류성훈 사회부장 ytt77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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