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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험지 유출은 구조적 비리…공교육 신뢰회복 방안은
입력 2018.07.17. 14:17 수정 2018.07.17. 14:32 댓글 0개사립 공공성·시험관리·상피제·학운위 자정 강화
【광주=뉴시스】맹대환 기자 =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의 기말·중간고사 시험지 유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학벌·성적지상주의와 입시제도의 폐해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립학교 공공성 확대, 시험출제·평가 관리 보완과 교사·자녀 상피제 제도화, 학교운영위원회 자정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인의 일탈인가, 구조적인 비리인가
17일 광주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사립학교인 광주 모 고교에서 행정실장 A(58)씨가 학교운영위원장인 학부모 B(52·여)씨에게 올해 1학기 중간고사에 이어 기말고사에서도 이과 9개 전 과목 시험지를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립학교에서 행정실장이 차지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기보다는 구조적인 비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립학교 행정실장은 학교법인 이사장의 의중을 가장 깊게 파악하고 이행하는 직위로 학교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행정실장이 학교운영위원장과 공모해 장기간에 걸쳐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광주지역 학생·학부모는 물론 일반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그동안 발생했던 학사비리 중 역대급이다.
부부의사인 B씨의 비뚫어진 자식사랑도 시사점이 있다. 학벌주의에 따른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한 세태에 자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부모는 물론 자식까지 파국으로 치닫게 했기 때문이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찾는 사립학교
광주지역 156개 중·고등학교 중 사립학교 법인은 67개로 사학 점유율이 43%에 달해 44%인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가장 높다. 고등학교만 놓고 보면 전체 고교 67곳 중 사립이 42곳으로 63%에 달한다.
하지만 사립학교법인들이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6년 광주지역 사립학교 법정전입금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11.3%, 중학교 6.9%, 고등학교 16.9%로 평균 14.3%에 그쳤다. 연도별 납부율은 2013년 18.15%, 2014년 17.37%, 2015년 16.0%로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법정전입금은 사학법인이 의무적으로 교사와 직원들의 연금, 의료보험 비용으로 내야하는 돈이지만 국민의 혈세로 충당하고 있다.
사학법인들은 광주시교육청이 공공성 확대 차원에서 교사 위탁채용을 제안하고 있지만 인사권 침해라며 이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사학법인들이 제왕적 권한을 누리면서 교사 채용비리와 교비 횡령, 성적조작, 시험지 유출 등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허술한 시험관리 시스템, 불신 만연한 학사 관리
광주시교육청 학업성적 관리 매뉴얼은 일선 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 담당 교사가 출제한 문제를 교감·교장이 결제를 한 뒤 인쇄실에 보관하고 인쇄 후에는 포장·봉인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쇄실은 통제구역으로 관리하고 행정실장과 학교장이 보안책임을 맡는다.
하지만 시험문제가 유출된 학교는 포장·봉인 등 보안 매뉴얼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광주지역 다른 사립학교에서도 이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행정실장이나 인쇄실 직원 등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시험지를 유출할 수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그동안 사립학교의 시험 관리를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이지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철저한 전수조사를 통해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선 고등학교의 학사 관리에도 학부모들의 불신이 깊다.
대표적으로 교사와 자녀가 한 학교에 배치된 사례다. 동료 교사 자녀의 생활기록부와 내신에 신경쓰지 않을 교사가 어디있겠느냐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목소리다.
일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교사 자녀와 경쟁해야 하는 것 자체가 출발선이 다르다보니 내신과 생활기록부 관리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교육계 내에서도 수년 전부터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사와 자녀를 분리 배치하는 상피제(相避制)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으나 인권침해 문제로 미뤄지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학교운영위원회
학교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구성하는 학교운영위원회는 규정에 따라 학교장과 교사, 지역 인사, 학부모들이 참여한다.
운영위원장은 위원 중 학교 측을 제외한 뒤 호선하고 있으나 대부분 학부모가 맡고 있다.
운영위원과 운영위원장 모두 경제적 여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로 변호사, 의사, 교수, 고위 공무원, 기업가 등 지역 오피니언리더 가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영위원장은 학교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다보니 학교 측 관계자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을 수 있다. 일부 운영위원장은 친목도모를 명분으로 학교장, 행정실장 등 학교 관계자들과 식사와 골프 등 사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문제는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동기가 자녀에 대한 관심이라는 목적이 분명하다보니 학교 측 관계자들이 해당 자녀를 특별 관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반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위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이번에 시험문제가 유출된 고등학교에서 영향력이 큰 행정실장과 학교운영위원장 간에 범행공모가 이뤄진 것도 학교운영위원회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주지역 한 사립고등학교 교장은 "재력과 지역 영향력을 뒷배경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 학교운영위원장이 되면 자녀에 대한 특별 관리를 암묵적으로 또는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학교운영위원장과 학교 측이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mdhnew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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