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새롭게 조성된 사직 통기타 거리와 가수 김정호

입력 2018.07.12. 14:28 수정 2018.07.13. 17:40 댓글 0개
한희원 아침시평 한희원미술관 관장/화가

음악은 모든 예술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예술 중 하나이다. 인간이 하나의 생명으로 자리를 잡아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우주 속에서 듣는 수많은 소리들. 작은 씨앗에서 점점 생명의 형상으로 변화하면서 듣는 어머니의 심장소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기도의 찬가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터뜨리는 첫 울음은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환희의 노래이다. 이렇듯 음악은 우리 인간들에게 삶의 기쁨과 회환, 그리고 위로를 주는 가장 가깝고도 친숙한 예술이다.

음악의 장르 중에서 클래식은 ‘고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클래식은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며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쉽게 접하고 흥얼거리며 즐기는 것은 아마 대중음악일 것이다. 우리는 슬플 때 노래를 듣고 기쁠 때 노래를 부른다. 사랑에 빠졌을 때와 이별을 할 때도 노래가 곁에 있게 된다. 치열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 또한 노래이다. 노래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으며, 세상은 침묵의 늪에 잠길 것이다.

얼마 전 사직공원을 오르는 언덕에 광주의 뮤지션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조성된 사직 통기타거리가 새로운 모습으로 개장했다. 사직 통기타 거리는 80년대 ‘사직골’이라는 작은 음악 홀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 시절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모여 술 한 잔에 노래를 부르며 울분을 토하고, 마음을 달래던 곳이었다. 이후 정용주, 박문옥, 이장순을 거치면서 수많은 뮤지션들이 자리를 잡고 활동하였다. 지금은 열군데 이상이 자리를 잡아 통기타를 치며 술과 음악으로 서로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장소가 되었다.

사직 통기타 거리는 사직공원을 오르는 언덕으로 아름드리 숲이 우거져 있다. 공원 벽에는 광주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새겨져 있어 광주 대중음악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간판들은 예술인들의 손을 거치며 통기타거리를 한층 낭만적인 거리로 만들었다. 필자는 개장식 날 광주 통기타 뮤지션 1세대인 故 이장순이 노래했던 ‘올댄뉴’에서 광주 태생인 김정호에 대한 토크쇼를 진행했다.

김정호는 광주가 낳은 천재적인 싱어 송 라이터이다. 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가을날 교정의 플라타너스 잎이 우수수 떨어질 때 그의 노래 ‘날이 갈수록’을 들으며 청춘의 아픔을 달랬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들 꽃이 지네….’

김정호(1952~1985)는 광주에서 태어나 수창초등학교를 다니다 서울로 올라갔다. 1974년 발표된 ‘이름 모를 소녀’는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선배의 사촌동생 이영희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원래는 양희은에게 곡을 주려고 했으나 자신이 불렀다. 나중에 김정호가 ‘쉘부르’에서 노래할 때 이영희가 찾아와 둘은 결혼을 했다. 김정호의 외조부인 박동신과 어머니 박숙자는 판소리 명창이었다. 김정호 또한 판소리 명창 혈통을 타고났다. 그래서 김정호의 노래에는 심금을 울리며 쥐어짜는 듯한 애절함이 들어있다. 김정호가 작곡한 곡들은 어니언스를 통해 알려졌다. 1976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1979년까지 가수활동이 금지 됐다. 1983년 폐결핵으로 결핵 요양원에서 지내다 음악이 하고 싶어 요양원을 뛰쳐나왔다가 1985년 한 많은 세월을 뒤로한 채 33살이라는 안타까운 나이로 요절한다.

김정호는 광주 출신의 가수인데 그를 추억하는 음악적 장소가 없다. 대구에는 가수 김광석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곳에 ‘김광석 거리’가 조성돼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광주의 김정호는 광주 시민에게조차 잊혀 진 존재이다.

사직통기타거리는 숲이 우거진 언덕길에 십여 곳 이상의 카페에서 뮤지션들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전국 유일한 곳이다. 양림동을 옆에 두고 천을 건너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명동, 대인시장이 지근에 있어 광주를 찾는 외지인이 밤에 이곳을 찾는다면 광주의 대중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이 제2·3의 김정호가 탄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음이 울적할 때 사직공원을 오르는 길의 통기타거리를 찾아 음악 속에서 낭만에 취해보기를 권해본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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