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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신임 당대표 김무성, 그는 누구인가

입력 2014.07.15. 13:17 댓글 0개

14일 새누리당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된 김무성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YS)로부터 정치를 배운 '상도동계'의 막내로 비주류, 비박근혜계의 좌장으로 불린다.

15대부터 19대까지 내리 국회에 입성한 5선의 김 신임대표는 현재 부산 영도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데 '무대(김무성 대장)'라는 별명으로 통할 만큼 강한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갖춘 의원으로 평가된다.

김 신임대표는 본관이 김해(金海)로 1951년 9월20일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화랑초등학교와 경남중학교, 서울 중동고등학교와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전남방직과 신한제분을 운영하며 당대 거부 반열에 올랐던 부친(김용주) 덕분에 그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항상 골목대장 노릇을 해 '무대'라는 별명도 그 때 붙었다.

김 신임대표의 첫걸음은 기업이었다. 동해제강 상무,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성공한 '젊은 리더'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다 정치 스승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자 그는 사업체와 주식 등을 정리하고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에 선임됐고, 후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추대됐다.

YS 정부 청와대와 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그는 1996년 15대 총선(부산 남구을)을 통해 처음 여의도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재선, 3선에 성공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 했다.

그러나 2008년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이명박 정부 초기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낙인찍혀 당시 친이명박계가 친박근혜계를 배제한 소위 '공천 학살'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에반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됐다.

2010년, 그는 세종시 수정안을 내며 박근혜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걸었고 2년 뒤 제19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당시 그는 고심 끝에 '백의종군'을 선택했고 우파 분열을 막아냈다.

김 신임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귀환했다. 당시 캠프 전체에 금주령을 내리고 야전침대에서 생활하며 분투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이후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에 출마해 국회로 돌아왔다.

김 신임대표 특유의 배짱과 추진력은 몇몇 일화에서 드러난다.

18대 국회에서 김 의원이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 한-EU FTA가 지지부진할 때 그는 여당, 야당, 정부 등 모든 관계자들을 원내대표 방으로 불러모아 '문 잠가라. 합의 못하면 아무도 못나간다'는 엄포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말 철도노조 파업이 계속됐을 때도 야당 박기춘 의원과 함께 실마리를 풀어 냄으로써 "정치가 모처럼 제 몫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1년 부산 ▲중동고 ▲한양대 경영학과 ▲고려대 정책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 수료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 ▲동해제강 전무 ▲삼동산업 대표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멤버 ▲통일민주당 창당발기인·총무국장·기획조정실 부실장·국회행정실장 ▲민주자유당 의사국장·의원국장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위 총괄국장 ▲제14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비서관·사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제15대 국회의원(부산 남구을) 원내수석부총무·한나라당 총재비서실장 ▲제 16대 국회의원 ▲제17대 국회의원, 국회 재정경제위원장·한나라당 사무총장·최고위원·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국회운영위원장·비상대책위원장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재19대 국회위원(부산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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