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청춘 발산’ 달동네를 걷다

입력 2018.07.09. 16:32 수정 2018.07.09. 16:41 댓글 0개
김동하의 도시풍경 건축가

얼마 전 광주, 전남에서 건축을 전공하는 학생과 건축가, 학계 교수들이 모여 최근 화두인 도시재생을 주제로 디자인 캠프를 했다. 도심 속 의미 있는 풍경을 가진 장소를 찾던 터라 ‘발산마을’ 얘기를 꺼냈더니, 아는 건축가가 이 동네에 마을 역사문화공간을 리모델링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양동에 있는 이 곳은 광주천을 마주하며 야트막한 산비탈에 자리잡은 마을로 도시재생 차원의 우수사례로 꼽힌다.

광주의 달동네는 지난 세기 재개발 사업으로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양동 발산마을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발산은 50년대 후반 전쟁 피난민들이 정착촌을 만들며 시작되었다. 광주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임동에 일제강점기에 세운 대규모 방직공장이 있었다. 한국전쟁 중에 파괴된 것을 재건하면서 60~70년대 면방 수출이 호황을 누리면서 일신·전남방직과 삼학소주 광주공장 등 대규모 공장에 일자리를 찾아서 유입해 온 저임금 공장노동자들이 살기에 적합한 입지조건을 갖추며 마을을 이루었다. 70~80년대 최고로 번성해 주민수가 2만명에 달하며, 각양각색의 상점이 골목 초입에 빼곡히 들어차 북적거렸다고 한다. 마을은 좁고 긴 골목길이 미로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산등성이 위로 채워 나가며 경사지주택을 이루었다. 산업의 유형 변화와 함께 90년대 방직공장이 쇠퇴하면서 주민이 감소하고 고령화 되면서 노후화된 공폐가가 늘어나는 도심공동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었다.

변화의 바람은 2014년 마을미술프로젝트를 계기로 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마을 원형을 유지하며 마을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지속가능한 지역재생 가능성을 선택하였다. 이듬해 마침 모기업에서 사업비를 지원하면서 상하수도 교체, 가스관 도입과 주차장 설치 등 인프라를 구축하며 활기를 띠었다. ‘청춘발산’은 이미 노령화 되어버린 마을의 활력을 불어넣으며 한껏 변모하고픈 신선한 발상의 이름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 …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민태원 수필의 청춘예찬의 구절이 생각난다.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에서 파스텔톤의 화사하고 생기있는 색감으로 바꾸었다. 자투리 공간에는 쉼터와 텃밭을 만들고, 주민들과 어울러 젊은 청년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제법 방문객도 늘어나고 있다. 마을 담벼락과 계단에 여러 문양과 글귀 중에 ‘내가 부족하면서도 베풀고 살아야 혀, 그것이 내가 살아온 경험으로 보고 느낀 것이여’라는 글귀가 유독 눈에 띈다. 달동네의 고?膚堧?걸으며 내려다 보는 아랫집 지붕은 층층이 높이를 낮추며 조망을 공유하며, 시원한 도시 바람을 느낀다. 가장 높은 곳에 이르면 별집전망대에서 광주 도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산업화 시대 베이비붐 세대들이 살아온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발산마을,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뽕뽕다리’는 수년 전 이 곳에 살던 노동자들을 광주천 너머 공장으로 출퇴근하며 두 공간을 연결해 주었을 것이다.

천변 건너편에서 마을을 바라보는 풍경은 산비탈을 따라 하늘이 올려다 보이지만, 조금 떨어진 오래된 고층아파트인 평화맨션에 올라서면 다른 시점이다. 발산마을을 앞에 두고 저 멀리 배경에는 한창 공사중인 높은 콘크리트 주택이 중첩되고 있다. 도시 산자락에 있어 달이 가까이 잘 보인다고 해서 달동네라 했지만, 이제는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고층 아파트의 꼭대기가 달에 더 가까이 느낄런지 의문이다.

김동하 (건축가, 아뜰리에38건축도시연구소장, 광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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