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언어의 힘이 상실된 곳

입력 2018.07.02. 18:10 수정 2018.07.02. 18:18 댓글 0개
김현옥의 음악이 있는 아침 작곡가/달빛오디세이 대표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19세기 후반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전역에서 유행하던 예술 사조이다.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들라크루아 등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눈에 보이는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하려 하였다. 그래서 이 시기의 그림들은 주로 몽롱하며 빛과 색이 혼합되어 윤곽이 모호하다. 순간을 잡으려 빠르게 그려서일까, 인상주의 그림은 선명한 사물의 형상보다는 빛을 통한 아련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미술에서 시작된 이 사조는 사실주의와 신인상주의를 더불어 진보적 성향을 띠고 문학. 음악 등 예술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반발로 시작된 상징주의(Symbolism)는 관념에 감각을 입히는 작업을 시도한다.

‘사물의 이름을 말해 버리는 것은 시가 주는 즐거움을 앗아가게 된다’는 상징주의 대표 시인이었던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가 했던 유명한 말이다. 여기에서 ‘상징’은 언어의 해방과 같이, 사물에 이름을 붙여 의미가 한정되는, 언어의 의미를 벗어나는 것. 그 너머의 것. 내면의 것. 보이지 않는 것. 현실 속 상상의 세계 등, 말라르메는 모든 것을 표현하려는 듯 추상적이면서 모호한 언어를 추구한다.

인상주의의 음악은 타 예술에 비해 매우 독립된 입장에서 분위기를 이끌어 갔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클로드 드뷔시(1862-1918)이다. 음악은 본래 자연의 소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추상적인데다가, 자유롭게 조합할 수 있는 화음이 곧 색채이기 때문이었을까.

극단적인 민족 우월론자 바그너의 음악이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당시, 한때 그는 바그너음악에 심취도 하였으나, 상징주의를 만나면서 ‘반 바그너주의자’가 되어 인상주의 음악을 창시하게 된다. 그는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에 크게 감명을 받고, 그 인상을 음악화하여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악풍은 현대음악의 시초라고 할 만큼 이전의 작품들과는 구분되는 특징들로 가득하다.

그는 ‘바그너음악에는 언어가 너무 많다’라고 지적하면서, ‘언어가 표현할 힘을 상실한 곳, 내 음악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라고 말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독일 낭만파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미어터질 듯 빵빵한 오케스트라에, ‘이곳은 슬퍼하는 곳이야’, ‘이곳은 흥분하는 곳이야’, ‘이제 곧 끝나려 해’,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등, 음악 안에 자유로움을 주지 않고 내용에 많은 요구가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 더욱이 며칠을 두고 감상해야 하는 곡의 방대함에 에너지조차 많이 필요했으니,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하며, 이미지를 상상하는데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전통 클래식 음악의 작곡법은 보통 맨 처음 부스러기 같은 짧은 동기가 등장한다. 이를 연결하여 주제를 만들고, 전개, 발전을 통하여 건축물을 쌓듯 논리적인 구성을 구축해 나간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주제를 전개해 나가는 것보다 새로운 요소들을 등장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자유로운 형식에 모호해진 조성과 자유로운 리듬을 쓰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구사해 나간다. 보수위에 진보를 얹었다고나 할까. 전통의 기능적인 재료에 기반을 둔 채, 방법을 달리하여 새로움을 추구했으니 말이다. 또한 선율보다는 화성이 갖는 음색에 비중을 두어 화려한 음향과 신비로운 색채를 만들었고, 문장의 윤곽을 흐리는 구성법을 구사하여 암시와 상징을 표현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음향은 자연과 인간을 융합하는 것을 의미하며, 곧 회화적 영상미를 표현하는데 쓰여 졌다. 방대한 오케스트라를 쓰기 보다는 악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음색을 고려하여 전면에 독주악기를 배치하였다. 이것은 전통적 관현악법에서는 볼 수 없는 시도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부분이다.

비단 예술뿐이랴. 해 아래 새 것은 없을 것이다. 보통은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버리는 방법, 전통을 고수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을 것인데, 드뷔시는 전통에 기반을 두고 탈색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

빌헬름 부쉬가 말했던가. 친구는 애써서 얻는 게 아니라 알아보는 것이다라고. 자연을 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던 드뷔시. 그는 결코 자연과 대립하지 않았다. 인위적이지 않고 궁극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그의 음악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껴보자. 알아보는 친구처럼. 사소한 것을 사소하지 않게,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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