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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1 아티스타-36] 지연리 "색으로 표현된 감성 무거워 물감 사용 안해"

입력 2018.06.21. 10:23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지연리, 꿈속의 꿈, 2009, 천에 혼합재료, 125x254㎝

【서울=뉴시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는 시간이나 이곳과 저곳으로 나뉘는 공간 등 대립하는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제 작업을 이루는 주요 모티브입니다.”

연필을 사용해 흑백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 장면을 그리는 지연리 작가는 통합이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삶에서 경험하는 모든 갈등이 대립과 분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그는 삶과 죽음, 빛과 어둠과 같은 극단적인 개념들을 하나로 잇는 시도를 한다.

“세상에는 긍정과 부정으로 양분되는 것들이 많아요. 감정으로 말하자면 좋고 싫음과 같은 경우가 있죠. 하지만 결국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상태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어요. 그런 갈등을 작품으로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다소 철학적인 그의 관심사는 대학 때 접한 강의에서 시작되었다. 신비주의, 동양철학, 물리학, 뉴에이지 등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일원론적 세계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풍경, 사물들은 모두 그가 직접 살고, 여행하고, 머물며 만난 장소와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 속의 이미지들을 캔버스에서 조합해 현실에는 공존하지 않는 풍경을 그리는데, 이는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셈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로 구성되어 있어요. 모두가 동시적으로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죠.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수평적 개념에 맞추어 보면 틈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상반되는 각각의 지점을 수직선 상으로 옮기면 모든 양극 사이의 간극이 사라져요. 하나로 맞물림 되는 것이죠.”

【서울=뉴시스】 지연리, 일 마라(Ile mara), 2012, 캔버스에 연필, 콘테, 162.5x335㎝

대립적 개념에 대한 탐구는 평면 회화와 입체 사물을 연결한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억새와 현무암, 오솔길이 그려진 작품 ‘일 마라(Ile mara)’는 세 개의 캔버스와 샌들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에 놓인 샌들은 배경의 장소를 여행할 때 작가가 실제로 신었던 신발을 광목천으로 재현한 것이다. 그는 복제된 샌들 오브제를 그림에서 분리해 바닥에 설치하거나, 그림을 벽에 걸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기도 하면서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립과 충돌, 긴장, 조화를 작품에 담고자 하였다.

의도적으로 색의 사용을 배제하고 연필과 콩테라는 소재를 사용해 무채색만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색이 감정적이고 감성적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제 그림은 기억을 기반으로 하지만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제가 느낀 감정, 혹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물이 가진 감성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색을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색으로 표현되는 감성이나 감정이 무겁게 느껴졌고 불필요하게 여겨져 물감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지연리, 그 사이, 2017, 캔버스에 연필, 아크릴, 90x90㎝

최근 가장 관심 있는 주제가 ‘삶과 죽음’이라는 그는 기존에 해오던 연필과 콩테 작업을 잠시 접어두고 페인팅 작업에 몰두 중이었다. 산자락으로 이사를 한 뒤 매일 가는 산책길에서 마주한 풀들을 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환의 과정을 작업의 주제로 삼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방법은 조금 달라졌지만 지난 작업의 연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새로 시작한 페인팅 작업은 그리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어요. 지움은 어둠, 소멸과 같은 부정적 의미가 있고, 그리기는 긍정과 생성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의미가 모호해지다가 전복되고, 또 하나로 겹치게 됩니다. 마치 삶과 죽임이 결국 하나이듯요.”

삶이 허락하는 한 보고 느끼며,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그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한참 보고 가는 감상자들을 볼 때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조용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고 전했다. ■글 아트1 전시팀.

【서울=뉴시스】 아트1, 지연리 작가

◆지연리=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 파리 8대학 조형미술 석사 졸업했다. 개인전 6회와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으며, 제1회 정헌메세나 청년작가상 수상하였으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아트1(http://art1.com) 플랫폼 작가로, 작품은 '아트1 온라인 마켓'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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