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여성 추함 발자취 쫓아 본질 찾는다

입력 2018.06.18. 10:37 수정 2018.06.18. 14:10 댓글 0개

못생긴 여자의 역사/클로딘느 사게르 지음/도서출판 호밀밭/1만5천800원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의무이고, 추함은 죄악인가? 추한 여성은 용납할 수 없는 존재인가?

최근 ‘미투’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운데 여성 혐오의 발자취를 쫓는 책이 출간돼 관심이다.

이 책은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혐오와 권력관계의 긴 역사를 추적한다. 여성의 존재 자체를 추하다고 본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 그런 여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근대, 마지막으로 여성이 추한 외모의 책임자이자 죄인이 돼 버린 현대까지 크게 3시기로 나눠 살피고 있다.

사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해 온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는 수천 년의 시간을 걸쳐 우리의 일상 속에서 켜켜이 쌓아온 결과로 오래된 여성 혐오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긴 논의의 결론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가톨릭 사제들, 철학자들, 작가들, 의사 등 사회 주류의 남성들이 특히 여성 혐오에 기여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여성의 본성을 본질적으로 추하다고 주장해 왔고, 여성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출산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생물학적 사명에 충실하지 않을 때 여성을 추한 존재로 치부했다.

근대에 이르러 철학은 해방을 부르짖었지만 여성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빛의 세기’의 어떤 위대한 철학자도 평등에 여성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평등 실현을 공언한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화장품 산업이 발전하고 점점 더 많은 젊은 여서잉 성형수술을 하고 있다.

그리스 시대에 아름다움이라는 어휘는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차원을 아우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의 글을 보면 여성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에 그친다. 그들은 여성이 생리와 출산 등으로 불편한 상태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삶에 온전히 열중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가진 고유한 생리적 조건을 도덕적 한계로 열결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이같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긴다면 여성은 끊임없이 아름다워지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추해지고 싶지 않다는 긴장감 때문에 여성은 오늘도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추함의 역사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이야기를 담아야 할 텐데도 이상하게 추함에 관한 철학, 의학, 사회, 문학 텍스트는 온통 여성에 대한 얘기 뿐이다.

결론적으로 남성의 ??함과 여성의 추함 사이에는 심각한 불균형이 있다. 여성이라는 성 자체에 그 같은 낙인을 찍은 것도 모자라 ‘못생긴 여자’를 만들어내고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남성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여성은 정상적이지 않은 존재로 취급당한다. 무례하고 비열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마치 추한 외모가 모든 행동의 면죄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20세기 서구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남성과 동등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몇 개의 권리를 여성들이 쟁취해 낸 덕분이다. 그러나 외모의 영역에서만큼은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추하다고 비하하며 얼굴에 이어 가슴, 엉덩이를 바꾸고, 지방을 제거하며, 노화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각종 미용 수술을 받는다.

역자인 김미진 박사는 후기에서 “아름다움은 결코 억압과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평화가 전쟁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며 “이 책이 아름다움과 추함의 치열한 전쟁터가 된 여성의 몸, 이미 내면화돼 ‘나’의 일부가 돼버린 아름다움과 추함의 도그마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옥경기자 uglykid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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