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참정권

입력 2018.06.12. 17:26 수정 2018.06.12. 17:31 댓글 0개
도철의 무등데스크 무등일보 지역사회부 부장

지난달 15일 거제지역 청소년들이 ‘만 18세 이상 참정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급 고교에 재학 중인 20여 명은 시청 브리핑룸에서 ‘6·13 지방선거 청소년모의투표 거제지역 청소년 선거관리위원회 발대식’을 갖고 ‘만18세 참정권’을 주장했다.

투표할 권리를 현행 19세에서 18세로 낮춰달라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이날 참정권을 줘야하는 이유로 ▲OECD 국가 대부분 만18세 투표권 부여 ▲청소년 정책 실종 ▲본인 삶에 대해 스스로 참여할 권리 ▲군 입대와 결혼 등 책임만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공동체의 공적인 결정에 참여할 권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이다”며 “참정권 없이는 청소년권리 증진도 없기에 참정권을 보장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들의 참정권 행사도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도 있다.”

1791년 ‘여성인권선언’을 발표한 극작가 올랭프 드 구즈는 결국 프랑스 대혁명 중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뒤 프랑스에서 여성들이 실제 의정 단상에 오를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1944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의회 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영국도 정치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1900년 대 초부터 끊임없이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버렸지만 여성들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여성들은 전장에 나간 남성들을 대신해 군수물자를 제조했고 이후 국가 위기 극복에 헌신한 보상 문제가 논의된다.

이 과정에서 1918년 제한적으로 30세 이상의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고 마침내 1928년 5월 여성도 남성과 같이 21세 이상이면 누구나 선거권을 갖는 법안이 통과된다.

미국도 1920년 투표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돼 여성 참정권이 이뤄졌다. 역시 제1차 세계대전 중 여성들의 기여에 힘입어 당시 윌슨 대통령의 반대를 뚫고 얻어낸 성과였다.

흑인들의 참정권은 이보다 한참 뒤에 결정된다.

노예 해방 100주년인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터 킹은 워싱턴 D. C.의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 모인 20만 명 군중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백한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조 안에 깃든 참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꿈입니다.”

민권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갔고, 마침내 백인 기득권은 무너졌다. 1964년 7월 2일 존슨 대통령이 흑인들에게 참정권 부여한 민권법에 서명했다.

13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얻기 위해 100여 년 전 그들은 목숨을 내놓았다. 도철 지역사회부장 douls18309@hanmail.net

최근 무등칼럼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