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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회담,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입력 2018.06.10. 18:18 수정 2018.06.10. 18:21 댓글 0개드디어 내일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만난다. 세계는 두 사람의 ‘예측불허의 담판’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 또한 거리엔 지방선거의 벽보와 현수막이 나붙어 있지만, 눈과 귀는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 쏠릴 수밖에 없다.
과연 1950년 한국전쟁 이래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있을까. 북미관계의 정상화로 남북관계 개선이 근본적으로 가능해지고 한반도가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회담 결과는 한반도의 운명뿐만 아니라 동북아 질서에도 결정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참으로 ‘세기의 회담’이라 할 만하다.
회담이 잘 되길 기대한다. 일본에 있던 손기정이 베를린 대회에 참가할 때 부산으로 와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갔다든가, 근대의 신여성으로 꼽히는 나혜석이 파리에 갈 때 기차를 타고 갔다든가 하는 사실이 최근 새삼 얘기된다. 그것이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는 것은 우리의 시공간 의식이 얼마나 좁아졌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머지않아 우리가 부산에서 런던까지 기차로 여행하는 걸 상상해보면, 한껏 기대가 부푼다.
이런 분위기에 함부로 샴페인을 터뜨리지 말라는 경계의 발언도 들린다. 그 근저에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유보적 비관론도 있다. 두 사람이 그동안 공들인 회담을 망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망치길 원하진 않기 때문에, 1차적 만남은 어떻게든 성공적인 모양으로 끝날 것이지만, 그 다음엔 예전처럼 기대와 배신, 도발과 좌절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을 보면, 결과를 쉽게 낙관만 할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두 지도자가 만나기까지 롤러코스트를 경험했다. 거친 언사가 대화 분위기로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었다. 회담에 임박하여 나오는 뉴스 논평에서도 ‘돌발변수가 없는 한’이란 단서를 붙이기도 한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낙관적 요소는 회담의 두 주역이다. ‘거래의 달인’을 자임하는 트럼프는 어떻게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려 한다. 미국 본토를 향한 핵 위협을 제거하고, 역사적인 평화를 성취하는 것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정권을 유지하려면 경제발전을 이뤄야 한다.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한낱 선택사항에 그칠 수 없다. 그러려면 반드시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회담의 쟁점은 비핵화와 북한 체제 보장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좀더 들어가면, 그 의제의 범위를 어디까지 획정하느냐에 따라 합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또한 이행의 시간을 어느 정도로 설정하느냐, 또는 주고받는 이행의 단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문제다. 상호 검증하고 신뢰를 쌓으면서 항구적인 목표로 나아가는 시간표로서의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의 담판으로 모든 게 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되고 있다. 큰 틀의 합의만 결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희일비할 것은 아니다. 잘 되면 기뻐하되, 호사다마를 경계하며 후속작업으로 실체적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잘 안 되면 너무 낙심 말고, 이제까지를 복기하면서 전보다 나은 시작점을 찾아 다시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운명이란 내가 결정하는 것과 하늘이 결정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넓히고, 그 영역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람의 할 일이다. 그러고 나서 하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반도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우리의 운명을 더 이상 과거에 가둬두지 않으려면, 주어진 변화의 기회를 잘 포착하여 민첩하게 행동해야 한다.
변화의 기회가 항상 오지는 않는다. 분열된 독일의 통일을 완성한 명재상 비스마르크(1815~1898)의 말이 최근 인용되곤 한다. “정치가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기다리면서 잘 듣고 있다가, 사건들 속에 신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뛰쳐나가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한다.”
북미 회담이 잘 되길 기원한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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